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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06 쑤저우 한국학교의 기적은 ‘눈물의 서사’ - - 이상철 쑤저우 한국학교 이사장 인터뷰 - - 5만원의 기적, 156억 모금...한국학교 성공모델 - - 6년 간의 눈물과 헌신, ‘벽돌 한 장’으로 쌓아 올린 꿈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5-11-02 1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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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쑤저우 한국학교 이사장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쑤저우에 한국학교가 설립되기까지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쑤저우 한국학교를 지으면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계속 눈물만 납니다.지난 6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으면 합니다.”

지난 10월 15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이상철 쑤저우 한국학교 이사장은 목이 메인 듯 기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두 세 차례에 걸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00년 쑤저우에 진출한 뒤 11년간 쑤저우 한국인(상)회장을 맡으면서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는 상해와 무석에서 한국학교를 짓는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인(상)회 회장으로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쑤저우 교민들을 상대로 모금을 전개하고 학생들도 보내줬다. 하지만 무석의 한국학교 학생들이 400여명을 채우면서 더 이상 쑤저우 등 외지 학생들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즉 쑤저우에도 한국학교가 필요했던 것.

마침 삼성전자가 쑤저우에 4조2000억원을 투자하면서 한국인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쑤저우를 비롯, 상해에 한인들이 대략 2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쑤저우 교민들이 회사로 몰려와서 쑤저우 한국학교를 지어달라고 아우성을 쳤어요. 상해와 무석의 한국학교를 지을 때 회장님을 믿고 쑤저우 교민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난리법석이었어요.”

이 이사장은 난감했다. 11년간 한국인(상) 회장을 하다 보니 비즈니스 등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는 데다가 심신도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1년만 더 한국인(상)회장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해 총영사관 교육 영사가 쑤저우를 방문, 교민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학교를 짓는데 3만 달러 정도만 있으면 학교 인허가를 낼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3만 달러 정도면 내 회사를 팔아서라도 학교를 지을 수 있다고 판단, 쑤저우 한국학교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날이 2011년 4.29일. 저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당시 건립추진위원회 발기인 참가자는 학부모 등 약 25명. 회의할 장소가 없어 교회를 빌려 사용하다가 여의치 않아 결국, 이 이사장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사무실을 얻고 직원 한 명을 고용해 본격적인 학교 건립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내부 규정을 만들고 홍보 및 모금 등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6개월이 지날 즈음, 건축위원장을 불러 학교 건립 비용 견적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건축위원장은 건축비, 인‧허가비 등 총 120억원이라는 견적서를 이상철 이사장에게 내밀었다.

“아니, 3만 달러면 된다고 했잖아요. 이거 잘못 계산한 거 아닙니까”

그는 “1~2억원도 아니고...못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건축위원장은 “우리가 5년 후에나 10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계획이나  잡아놓고 보자”고 설득하면서 본격화된다.

모금통에 1천 원 넣고 간 '한국인'

그는 다음 날 입금은 가능하지만 출금이 불가능한 한국의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중국의 공상은행 통장 3개를 만들어 재정위원장에게 내밀었다. 그 통장에는 각각 100위안(한화 2만원), 총 300위안의 돈이 들어있었다. 이때부터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제가 섹소폰을 연주할 줄 모릅니다. 동호회를 찾아가 섹소폰 연주를 배운 것은 동호회원들과 함께 길거리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길거리 모금을 위한 공연은 쑤저우 곳곳에서 진행했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모금 통에 돈을 넣어줬다. 이것도 모자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 “아주머니 도와주십시오”라고 사정을 했다.

“어느 날은 한참 섹소폰 연주를 하는데 한 분이 둥둥 말은 검정 비닐봉지를 모금 통에 넣고 사라졌어요. 연주를 마치고 봉지를 뜯어보니 중국 돈 5만 위안, 한국 돈 1000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이날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최소한의 사례를 하고 싶어서였다. 끈질긴 수소문 끝에 찾은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은 ‘절대 비밀’을 요청, 오늘까지 이 이사장의 가슴속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9월 29일 소주 크라운 호텔에서 진행된 '소주한국학교 학생 400명 돌파 기념 연회'에서 김정호 교장 및 이상철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 및 교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 북경 총괄 법인장을 찾아가 지금 120억원이 필요한데, 30억원만 도와달라고 했더니 ‘책상을 탁 치면서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왜 화를 내냐’며 ‘내 친구는 개인이지만 2억원을 냈어요’. 제가 내 회사 일도 바쁜데 다 때려치우고 그냥 가겠다고 나와버렸지요. 이날 삼성 본부장이 ‘현금 5억원, 현물 5억원 등 총 10억원을 줄테니 더 이상 요구하지 말라’고 하자, ‘나는 모르겠습니다’하고 버티다가 결국 삼성의 제안을 수용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깡패’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는 모금 운동을 할 때 자신이 먼저 익명으로 2천만원의 돈을 모금 통장에 입금하고, 이를 근거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모금 하루 만에 5000만원이 들어왔다. 그러니 사장님은 1~2억원은 내야 체면이 서지 않겠노”라고 공갈을 치기도 했다. 결국 이날 이 이사장은 한 친구에게 2억원을 후원받았다. 자선 골프대회를 열 때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목표금액은 늘 간당간당했다.

공사가 마무리 될 시점, 인테리어 비용 등 20억원이 부족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걸어가고 사람이 많이 다니게 되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는 루쉰의 ‘희망...’이라는 글을 수없이 되새기면서 KBS 상해 특파원을 불렀다.

“중국의 주재원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주재원 혼자서 결정할 힘이 없어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취재해 보도해주십시오. 제가 최근 교육부에 찾아가서는 한국학교 설립 인‧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한강 물에 빠져 죽겠다고 협박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KBS도 감동...외상으로라도 학교를 짓겠다

그의 간절함은 KBS를 감동시켰고, 결국 한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안 되면 외상으로라도 지어야 된다”며 “학생들이 9월 1일 이사를 못 오면 거리에 나 앉아야 된다”라고 호소했다. 본지는 사실확인을 위해 KBS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2016년 7월4일 ‘더부살이’ 한국학교...‘사랑의 벽돌 쌓기 운동’ 등 무려 4회에 걸쳐 쑤저우 한국학교 실태가 방송을 탔다.

‘벽돌쌓기’캠페인은 상해에서 한인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학교건축에 벽돌 한 장을 기부하면 쑤저우학교 현관에 간판을 달아 역사에 남기겠습니다.”

벽돌 한 장에 한국 돈 40만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한 교포들만 무려 300여명. 기업체들도 70~-80여 개사가 동참했다. 이런 땀과 눈물겨운 사연들이 연달아 KBS 방송을 탄 것이다.

2011년 4월 29일 쑤저우 한국학교설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된 뒤 2017년 공사를 완공할 때까지 6년간의 사연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울림이 컷다. 300위안의 기적은 이상철의 손과 머리끝에서 이렇게 시작됐다. 이 이사장이 모금한 금액은 156억원(정부 지원금 70여억원 포함), 공사비 154억원을 공제하고 2억원이 남자 교장선생님께 학교 운영비로 보태라고 전달했다.

“학교건립 추진위원회가 25명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도중에 많은 분들이 떨어져 나갔어요. 최종 5~6명만 남아 외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는 한국인(상)회 회장 11년 외에도 민주평통 상해 지회장에 이어 자문위원, 여기에 재중한인회총연합회 고문 등 20여 년을 한인 사회와 함께 했다. “쑤저우한국학교를 설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는 그의 고백이다.

쑤저우 한국학교는 2011년 중국의 한 학교를 임시로 빌려 시작, 1년 6개월만인 2014년 3월 3일 정식 개교했다. 이 이사장은 자신의 비서를 설득, 그의 아들을 1호로 입학시켰다. 하지만 당시 입학생은 총 26명이 전부였다. 학부모들이 한국학교가 제대로 건립될지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9일 저녁, 쑤저우 크라운 호텔에서 '소주한국학교 학생 400명 돌파 기념 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쑤저우한국학교 1호 졸업생도 참석했다. 그는 현재 성균관대학 AI학과에 재학중이라고 했다.

현재 기준 쑤저우 한국학교 재학생은 413명. 이 이사장을 비롯 교직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교민들이 만든 기적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500명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그가 쑤저우 한국학교를 설립하면서 흘린 눈물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육부에 특별하게 부탁을 해서, 이원재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왔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밤부터 공사를 해야 하는데,. 중국 건설 노동자들 다루기가 쉽지 않아요. 밤새 작업을 하면서 욕하고 싸우고...정말로 말로 형언할 수 없어요. 낮에는 따뜻한 교장 선생님이었지만 밤에는 ‘깡패’나 다름없었어요. 그 분에게 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재외한국학교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정부 지원이 30%밖에 안 됩니다. 학비로 70%를 충당해야 하니 늘 버겁죠. 학생이 최소 450명은 돼야 안정됩니다.” 그는 정부에 50%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건 교민의 학교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학교입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쑤저우한국학교


이상철 이사장은 1976년 ㈜한국음향에 입사했다. 1973년 구로공단에 둥지를 튼 이 회사의 대표는 재일동포기업인이었다. 당시 롯데그룹, 아남전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 쏘니, 도시바 등 외국계 기업에 음향기기를 납품했다. 그냥 앉아서 돈을 쓸어 담는 회사였다. 하지만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재일동포 기업인은 2010년 두 손 을 들고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결국 노조원이 우리사주 형태로 회사를 인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이사장이 중국으로 간 이유는 한국의 과도한 인건비 인상과 노사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그는 소주, 연태, 인도, 세종 등지에 공장을 둔 한국음향의 최대 주주로 현역에 있다.

그가 중국에서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사업’이 아닌 ‘학교’였다. 그럼에도 그는 늘 “학교 짓고 나면 내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다. “이사장, 회장… 이런 거 다 필요 없습니다. 학교가 완성됐으니 이제 내 역할은 끝난 거죠.”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미 소주 교민 사회에 새겨졌다. 그가 세운 학교, 그가 흘린 눈물, 그가 만든 연대가 지금도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에게 중국에서의 25년의 삶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봉사’와 ‘헌신’,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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