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안경, 신발, 의류처럼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섬유컴퓨터 등 테크놀로지가 결합해 생체 데이터를 읽고 외부 정보를 분석해 실시간 피드백을 주는 ‘입는 기기’의 시대가 본격화됐다. 감도 높은 스타일과 최첨단 기술력을 융합한 패션테크는 이제 스마트폰을 뛰어넘을 차세대 핵심 인터페이스 자리를 노리고 있다.
AI·IoT·섬유컴퓨터 등이 결합한 패션테크가 각광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경계 허무는 패션테크, 전망은 밝다
글로벌 패션테크 시장은 AI, IoT, AR·VR, 블록체인, 로봇, 신소재 등을 중심으로 디자인·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다층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분야는 ‘웨어러블’ 패션테크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소비자가 기기를 ‘착용한다’는 개념에 익숙해지면서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메타, 애플,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웨어러블 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앞으로 10년 내에 안정적인 생태계가 구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웨어러블 AI 시장 규모는 약 388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CAGR 약 27%로 성장해 올해 약 488억 2000만 달러, 2032년에는 약 2602억 2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스마트의류·전자섬유 등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의류제조분야의 발전도 눈부시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스마트의류 시장은 2024년 51억 달러에서 2030년 21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여기에 전자섬유(e-Textile) 시장까지 포함하면 2034년 2700억 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들이 연달아 AI 기반 스마트글래스를 출시하고 있다. 사진=메타
스마트글래스가 개척한 AI웨어러블 시장
AI웨어러블 시장의 선두 주자는 안경이다. 메타,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스마트글래스를 지목하며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기술, 매력적인 스타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며 스마트글래스가 새로운 럭셔리 액세서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스마트글래스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메타다. 올해 2분기 확장현실(XR)헤드셋·스마트글래스 시장점유율 60.6%를 차지한 메타는 지난 달 말 신형 모델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 글래스’의 소비자 판매를 시작했다. 최초로 내장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이 기기는 카메라, 스피커, 마이크, AI어시스턴트 기능을 통합해 앱 알림, 메시지 수신, 실시간 자막, 번역, 내비게이션, 비주얼 검색, 사진 촬영 등을 지원한다. 함께 제공되는 뉴럴밴드를 손목에 착용해 손동작으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스마트글래스 개발에 있어 기술력만큼 중요한 것은 ‘디자인’과 ‘착용감’이다. 기존의 실패 사례를 분석해보면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스타일의 일부로 녹아들 때 비로소 소비자의 거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메타는 글로벌 아이웨어기업 에실로룩소티카의 지분 3%를 인수하고 오클리, 레이밴 등 전통적인 브랜드들과 공동으로 스마트글래스를 선보이고 있다.
구글 또한 최근 다양한 제조사 및 패션기업과 손잡고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2013년 ‘구글 글래스’ 실패 전력이 있는 구글은 작년 말 스마트글래스 전용 OS ‘안드로이드XR’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삼성과 협업한 스마트글래스 ‘해안’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올해 케링아이웨어, 젠틀몬스터와 협업을 공식화하며 첨단기술에 럭셔리 브랜드의 디자인 역량과 실험적 감성을 더한다는 전략이다.
XR헤드셋 ‘비전 프로’에 주력하던 애플도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 2일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애플은 비전 프로 2세대 출시를 잠정 중단하고, AI 기반 경량형 스마트글래스 2종을 개발하는데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 제품은 디스플레이 없는 음성·카메라·AI 인식 중심 ‘아이폰 연동형’으로 내년 출시 예정이고, 두 번째는 디스플레이 탑재형 모델로 2028년 출시가 거론된다.
이밖에 아마존은 ‘제이호크’란 이름의 스마트글래스를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고, 샤오미, 레이네오, 엑스리얼, 썬더로봇, 알리바바 등 중국계 제조사들이 AI 채팅, 실시간 번역, 게임, 쇼핑 등에 특화된 ‘경량·저가·실용형 AR글래스’ 영역을 공략하며 시장 저변을 넓히고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의류와 스마트신발이 개발되고 있다. 사진=나이키
섬유패션,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다.
섬유패션업계에 도입된 테크놀로지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컴퓨터’다. 전도성 실, 센서 삽입 원단, 발열·발광 가능한 직물 등 디지털 요소가 결합된 전자섬유는 패션업계뿐 아니라 군수품, 자동차 내장재, 침구, 헬스케어 제품에도 활용된다. 전자섬유로 제작된 스마트의류 및 신발은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생체신호를 추적해 건강 모니터링, 운동 데이터 추적, 발열 기능, 자세 교정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페이스로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의류가 가장 빨리 도입된 분야는 스포츠·의료 영역이다. 심전도, 호흡, 수면을 연속적으로 측정하는 헥소스킨 셔츠는 운동선수·우주비행사 등의 의류로 활용되고 있으며, 아토스가 출시한 스마트의류는 내장된 근전도 센서를 통해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고 부상 예방을 돕는다. 센소리아가 개발한 스마트 양말은 발 압력과 걸음걸이를 추적하는 센서가 내장돼 달리기 기술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당뇨병 환자의 족부 궤양 조기 징후를 감지한다.
스마트신발은 보행 데이터를 수집해 건강과 안전을 관리하는 새로운 웨어러블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테크노파크의 IoT 스마트신발 실증사업이 대표적이다. 부산TP는 지난 8월부터 고령자와 경증 치매환자 500여 명에게 센서 내장 신발을 보급해 낙상 위험·배회 위치를 감지하고, 보호자 앱으로 실시간 알림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솔파워는 걸을 때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해 자체 구동하며, GPS·가속도 센서로 작업자의 활동 데이터를 추적해 해 착용자의 안전을 모니터링하는 산업·군방용 안전화를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의 스마트신발 경쟁도 치열하다. 나이키는 자동 끈 조절과 앱 연동 기능을 갖춘 어댑트 시리즈와 온열 및 에어마사지를 제공하는 하이퍼아이스 부츠를 발매했고, 아디다스는 퓨처크래프트에 스마트 소재를 적용했으며, 언더아머는 움직임을 추적하는 센서가 내장돼 운동 코치나 맞춤형 피트니스 플랜이 가능한 호버 스마트슈즈를 선보였다.
MIT에서 개발한 섬유컴퓨터 의류를 착용한 미국 군인. 사진=미 육군 한랭 지역 연구 및 엔지니어링 연구소
인간 중심 디자인·착용 경험 중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은 기술적·산업적·사회적으로 다양한 제약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AI웨어러블의 프라이버시 침해 및 보안 취약성은 심각한 문제다. 음성·위치·생체 정보를 수집하면서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커지고, 녹음·촬영 기능이 있는 기기들은 ‘공공장소에서의 동의’라는 새로운 윤리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배터리 지속시간, 경량화, 발열, 앱·서비스 부족은 초기 확산의 걸림돌로 꼽힌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술의 ‘투명성’과 ‘비가시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사용자가 데이터 수집 범위를 직접 설정할 수 있고, 기술이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전자섬유의 가장 큰 약점은 배터리와 세탁이다. 센서와 회로가 내장된 의류는 반복 세탁에 취약하며, 충전 방식 또한 비효율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도성 섬유·방수 코팅 등 소재를 혁신하고 배터리리스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스마트의류가 헬스케어·의료 영역으로 진출하려면 FDA, CE 등 규제기관의 인증이 필요하다. 연구기관·병원과 협업해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고, 국제 인증을 조기 확보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패션테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 산업이다. AI웨어러블부터 스마트의류·신발까지 활용 분야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동시에 패션테크가 책임감 있고 안전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려면 끊임없는 기술 혁신은 물론 윤리적 문제 및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수다. 무엇보다 패션테크의 경쟁력은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인간을 이해하는 디자인과 스타일에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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