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9월 26일 본지는 중국 톈진 소재 경성전자부품유한공사 황명주 부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국 북부의 대표적인 산업의 도시 톈진(天津). LG전자 톈진공장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경성전자부품유한공사(이하 경성전자)를 지난 9월 26일 찾아갔다. 현장 입구에 들어서자 “작은 일에 정성을, 모든 일에 최선을, 결과에 책임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띄었다.
경성전자의 모 회사는 경남 김해에 있는 경성정밀이다. 1997년 사출·금형 전문기업으로 출발한 경성정밀은 현재 중국의 톈진과 태주, 베트남에 각각 현지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이 회사는 2001년 LG전자 창원공장 리빙사업부와 인연을 맺으면서 24년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황명주 경성전자 부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의 금형 기술 수준에 그는 “삼성, LG, 현대차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한국의 금형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경성정밀은 2011년 5월 톈진법인에 이어 당해 8월 태주법인 설립으로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부도기업 인수, 기술로 회생시킨 ‘리빌드 스토리’
13년 전, 황 부사장은 중국 태주 땅을 처음 밟았다. 2011년 설립된 태주 공장에서 1년을 보낸 뒤 톈진으로 향했다. 그간 기술지원은 물론, 5억원을 투자했던 협력회사가 부도 직전으로 몰리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현장은 절망적이었어요. 기술지원에 따른 대가는 고사하고 5억원을 날려야 하는 상황에서 채권자들은 아우성이고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도 없고...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채권자들을 만나 “한꺼번에 돈을 줄 수 없으니 할부로 상환하겠다”고 설득하는 등 지독한 인내력을 발휘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채권자들도 황 부사장의 진심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정상화는 불가능했습니다. 벌어가며 빚을 갚으면서 아예 이 회사를 인수한 겁니다.”
그는 당시를 “생존보다 신뢰의 싸움”이라 표현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LG전자와의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이 회생의 결정적 동력이 됐다. 현재 천진 공장은 전자레인지, 에어컨 등 LG 가전의 핵심 사출 부품을 전량 생산, 미국과 유럽 등 해외로 수출한다.
“중국 내수시장은 가격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특히 하이얼이나 샤오미 등 현지 브랜드는 인건비와 원자재 비용이 20~30% 저렴합니다. 공정개선을 통한 품질로 승부를 걸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황명주 부사장이 직원들과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중국 기술, 이미 한국과 거의 대등 수준”
황명주 부사장은 올해로 34년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금형과 사출 전문가로 “중국의 금형 기술 수준은 이미 한국의 턱밑까지 왔다”고 단언한다.
“10년 전만 해도 독일이나 한국이 앞섰지만 지금은 일부 금형기술은 중국이 앞질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다만 고부가가치 제품을 창출할 수 있는 사출 기술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설비와 장비 기술이 무섭게 발전했어요.”
경성전자는 과거 독일과 한국산 사출기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전 설비를 중국산으로 교체했다. 그는 “같은 사양의 설비를 기준으로 가격이 30% 가량 싸진 반면 성능은 거의 비슷해졌다”며 “다만 중국은 여전히 세밀함과 정밀함, 문제 해결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경성전자 톈진 공장의 현지 직원은 550여명, 한국인 관리자는 단 2~3명에 불과하다. 황 대표는 “경성전자의 경쟁력은 ‘사람’에서 출발하지만 현지인들의 근로의식이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톈진 공장의 근로자들은 1년 살이 같아요. 명절이나 휴가 때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직원들이 어떤 때는 30~40%가 빠질 때도 있어요. 그러면 새로 직원 채용해서 교육을 시킨 뒤 현장에 투입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요. 3D 업종의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성과급을 비롯해 보너스, 그리고 각종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외국계 기업이라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 이 회사에 조선족 출신의 근로자가 있느냐”는 질의에 그는 “서너명에 불과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 당시 조선족이 기여한 공로는 적지 않다"고 했다.
“초창기에는 통역과 생산현장에서 큰 역할을 했죠. 한국과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이해하다보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을 했어요. 한 발 앞선 조선족들은 기업현장에서 배운 실무를 바탕으로 창업을 해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이들이야말로 현지 산업의 숨은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경성전자 본사는 기술연구소에서 20여명의 연구진이 포진하고 있고, 현재 30여 건의 금형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황 대표는 “기술력은 한국이 뿌리, 현장은 세계로 넓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금형·사출 기술은 본사에서 개발하고, 톈진·태주·베트남 등 각 공장에서 생산합니다. 내년에는 LG와 함께 인도 진출도 추진 중입니다. 관세 부담을 줄이고, 인도 내수시장도 공략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환경규제,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기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으로 황 부사장은 환경규제와 정책변화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날씨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근무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 즉 황색경보가 뜨면 50%만 공장을 가동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수년 전 10억 원가량을 투자해 공기정화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환경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체 공장 내부를 밀폐하고 먼지를 흡입하는 시스템입니다. 투자비는 크지만, 당국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황 대표는 중국 산업의 빠른 성장을 ‘위협’이 아닌 ‘자극’으로 분석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달라졌습니다. 자동화 설비, 인프라, 공장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했어요. 한국이 배워야 할 건 ‘싸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빠르게 바꾸는 구조’입니다.”
경성전자 내부 공장 전경.
그는 동시에 한국 제조업의 본질적 강점은 여전히 ‘품질에 대한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정밀함, 신뢰, 서비스 마인드는 아직 한국이 우위입니다. 기술력의 차이는 줄었지만 철학의 깊이는 다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경쟁력입니다.”
황 부사장은 중국 생활 13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7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출근은 새벽 5시였다. 24시간 공장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눈을 팔 수 없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의 오른쪽 팔뚝은 상처투성이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경영철학은 단순 명쾌하다.
“내 회사가 아니어도 내 회사처럼 일해야 합니다. 주인 의식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회사를 살립니다.”
톈진 경성전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설비를 개선하고 있다. 사출 라인을 모두 자동화하고, 품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스마트팩토리화도 추진 중이다. 황 부사장은 “기술과 사람,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공장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부도 위기에서 시작된 작은 공장이 세계 수출용 부품의 생산거점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중심에는 ‘기술로 일어서고, 사람으로 버틴’ 경성전자의 철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