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화웨이 관계자가 '화웨이 커넥트' 행사에서 자사가 개발한 칩 '어센드'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중국이 최근 엔비디아 등 서방기업들을 배제하며, ‘AI 칩 자립’을 위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섰다. 이는 미국과 한국, 대만 등에게 반도체 분야를 의존해오거나,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에 연연해했던 태도와는 전혀 다른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대신 화웨이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이란 목표를 세우고, 자국 중심의 AI칩 공급망을 계획하고 있다. 만약 중국의 뜻대로 이뤄진다면, 이는 세계 반도체 시장 사상 유례가 없는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물론 메모리 분야를 비롯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 대열인 한국에도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中 뜻대로 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각변동’
지난 달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H20 등 구 버전의 칩에 대해 “수익금 15% 정부 납입” 조건으로 대중 수출을 허용했다. 또 미국은 H200 등 한층 고사양의 칩에 대해서도 대중 수출규제를 완화할 뜻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정부는 이달 들어 자국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칩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등 사실상의 수입 규제에 나섰다.
중국은 본격적으로 엔비디아에 단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동시에 자국 기업들의 엔비디아 칩 구매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중국에 대한 칩 판매를 조건부로 승인 받기 위해 백악관에 찾아가 읍소했던 CEO 젠슨 황의 노력이 빛을 잃게 된 것이다. 엔비디아로서도 달리 대책이 없다보니, 이같은 중국 시장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반면에 화웨이는 비록 성능이 뒤처지긴 하지만, 자체 생산한 ‘어센드 칩’ 기반의 AI 인프라를 공개하며 “향후 3년간 신형 칩 출시 로드맵”을 발표했다. 화웨이는 앞서 ‘어센드’가 엔비디아 ‘호퍼’(H계열)수준을 뛰어넘는다고 장담하기도 했으나, 아직 실증된 바는 없다.
엔비디아의 구 버전 호퍼 아키텍처 이미지. [출처=엔비디아]
SMIC 등 중국 파운드리 기업들도 정부의 ‘칩 굴기’ 드라이브에 동참하고 있다. SMIC는 심(深)자외선(DUV) 노광기 개발을 성공한데 이어, EUV(극자외선) 노광 기술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웨이퍼에 회로를 극단적으로 정밀하게 새겨 성능을 고도화하는데엔 13나노 수준까지 가능한 EUV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도 최근에야 이를 실현했을 정도다. 그 동안 DUV 수준에 성공, 한국에서 해당 부품을 수입했던 중국 SMIC가 이젠 EUV에도 적극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엔비디아와의 기술 격차 줄일 시간 확보 노력
이런 칩 국산화 노력과 함께 중국 정부는 화웨이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에 단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캐서린 소르베케는 이를 두고 “화웨이를 위한 시간 벌기 전략”으로 분석하며, “중국이 여전히 엔비디아 칩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국 기업이 기술 격차를 줄일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CSF(중국전문가포럼)에 따르면 이미 바이트댄스(ByteDance)부터 알리바바(Alibaba)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주요 기업들은 정부의 칩 수입 규제 강화 이전부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칩을 사전 확보해 둔 상태다.
이같은 중국 정부의 전략 변경은 올해 초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H20 칩의 보안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관영 언론들은 해당 칩에 ‘백도어’가 숨겨져 있어 ‘악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엔비디아나 AMD, 퀄컴 등 서방 기업들의 칩엔 일종의 ‘위치추적장치’가 심어져 있다는 뜻이다. 중국이 군사용으로 이를 사용하는가를 감시하기 위해 백악관 주도하에 이런 칩을 은밀히 내장하도록 엔비디아 등에게 의무화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중국정부는 모든 공공기관과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칩 사용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사실상의 구매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주요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블랙웰 기반의 RTX 프로 6000D(RTX Pro 6000D) 칩 구매를 중단하고 기존 주문을 취소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H20 칩 수입 제한보다 훨씬 강경한 조치로,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 기반 AI 칩을 대량 주문했던 기업들이 정부 지시에 따라 테스트와 주문을 일괄 중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AI 산업 전반에 걸쳐 엔비디아 대신 화웨이 칩을 사용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산 대체재는 성능과 생산 규모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화웨이 기반의 완전한 대체 체계’가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며, 국면 전환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엔비디아는 결국 중국 시장의 대안 시장을 개척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CEO 젠슨 황은 지난 17일 “미·중 간에는 더 큰 지정학적 이슈가 있다”고 현실을 인정하면서 모든 금융 애널리스트들에게 “중국 사업을 재무 전망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 사업을 리스크 요인에서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의사다. 엔비디아는 동시에 트럼프의 영국 방문에 맞춰 영국 내 AI 인프라에 150억 달러(약 20조 9,265억 원) 투자를 발표했다. 새로운 선택지로 우선 영국을 지목, 손실 보전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화웨이의 기술혁신을 시사하는 이미지. [출처=화웨이]
‘화웨이 커넥티드 2025’, 자체 AI 칩 기술 대거 공개
그런 가운데 화웨이는 이달 열린 자체 이벤트 ‘화웨이 커넥티드(HUAWEI CONNECT)’에서 최신 AI 컴퓨팅 인프라를 공개했다. CSF에 따르면 화웨이 쉬즈쥔 부회장이 발표한 ‘아틀라스 950’과 ‘960’ 슈퍼포드(Atlas 950/960 SuperPoD)는 각각 8,192개와 15,488개의 ‘어센드’ 칩을 탑재한 것이다. 이는 “칩 규모, 연산능력, 메모리 용량, 상호연결 대역폭 등 핵심 지표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보다 사양이 높은 ‘아틀라스 950’, ‘960’ 슈퍼클러스터(Atlas 950/960 SuperCluster)는 50만 개와 100만 개 칩 규모로 구성되어있다. 말 그대로 “세계 최대 AI 컴퓨팅 클러스터”라는 화웨이측 얘기다.
또한 화웨이는 고성능 통신이나 연산을 위한 ‘슈퍼노드’ 기술을 범용 컴퓨팅 분야에 도입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범용 컴퓨팅 슈퍼노드인 ‘타이산 950 슈퍼포드’(TaiShan 950 SuperPoD)를 ‘가우스DB(GaussDB)’ 분산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해 이번 행사에서 발표했다.
화웨이는 ‘어센드’ 칩 로드맵을 통해 중국의 장기적인 ‘칩 기술 자립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향후 3년간 950PR, 950DT, 어센드 960, 970 등의 신형 칩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2026년 1분기 출시될 950PR은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핵심 기술에서도 자립화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엔비디아는 물론,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에 대한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줄일 기술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시사한다. 딥시크(DeepSeek)의 경우 이미 모델 훈련에는 엔비디아를, 추론에는 화웨이를 사용하는 절충안을 채택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동지구의 야경. [출처=펙셀]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도 부지런히 ‘자립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DUV 노광기를 자체 개발한데 이어, EUV 기술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우선 DUV의 경우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가 상하이 스타트업 ‘위량성’의 28나노(nm) DUV 노광기를 성공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이는 ‘다중 패터닝’ 기술을 통해 7nm 칩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해당 장비는 네덜란드 ASML과 유사한 ‘침윤식’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엔 “스타트업 ‘위량성’의 주주 기업 중 한곳인 ‘사이캐리어’(SiCarrier)가 EUV 노광기 개발에 착수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아직 그 진위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이같은 중국의 움직임은 미·중 AI 칩 경쟁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엔비디아 구매 금지와 화웨이 육성을 통해 ‘AI 칩 자립’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AI칩 굴기’를 꿈꾸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는 젠슨 황 CEO의 ‘중국 사업 배제 권고’ 발언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런 현실적 상황을 감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CSF는 “딥시크가 아직은 화웨이로 완전히 노선을 바꾸지 않고, 엔비디아-화웨이 절충안(양사의 칩 사용)을 채택한 것은 중국의 기술 자립화가 아직 과도기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