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재해 예방은 노사 모두의 이익" 이라며 사고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 뉴시스
정부가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강력한 제재책을 내놓았다. 앞으로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는 법인 기준 영업이익의 5% 이내,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건설업에는 영업정지 기간 확대, 공공입찰 제한, 등록말소 등 규제가 대폭 강화된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는 분명한 책임을 묻고, 고위험 현장에는 행정력과 자원을 집중해 예방 효과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노동자를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산업재해 예방의 주체로 참여시키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대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즉시 시행 가능한 과제는 신속히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법·건설산업기본법 등 12개 법률 개정을 연내 추진한다. 또한 국회와 재정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종합대책은 ▲안전 사각지대 예방 지원 강화 ▲노사 역할·책무 확립 ▲노동안전 인프라 확대 ▲안전 예방을 촉진하는 제재 수단 도입 등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산재예방대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 위원회는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마련해 현장 모니터링과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한 일터 조성은 노사 모두의 이익이자 상생의 길”이라며 “올해를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예방TF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뉴시스
◇연간 3명 이상 사망 발생 시 ‘법인’에 과징금 부과
이번 대책의 핵심은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경제적 제재다. 법을 지키는 것보다 위반이 이익이 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법인에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는 개별 사업장이 아닌 법인 전체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과징금 부과 수준은 영업이익의 5% 이내, 하한액 30억 원이다. 영업이익이 불분명하거나 적자인 경우에도 하한액이 적용된다. 과징금은 사망자 수와 발생 횟수에 따라 과징금 심사위원회가 차등 산정하며, 부과된 금액은 ‘산업재해예방보상보험기금’에 편입돼 산재 예방 사업에 재투자된다.
아울러 금융권 여신 심사와 보증, 자본시장 평가에도 중대재해 리스크가 반영된다. 특히 반복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은 정책자금 지원에서 배제되고 산재보험기금 투자도 제한된다. 상장사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이나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판결이 내려지면 즉시 공시해야 하며, 해당 정보는 ESG 평가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돼 기관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했다.
◇건설업 영업정지 요건 강화‧적정공사비 도입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건설업’에 대한 규제도 한층 강화된다. 영업정지 요건이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되고, 전기·정보통신·소방시설 공사업체 등으로 넓혀진다.
사망자 수에 따라 영업정지 기간이 늘어나며, 최근 3년간 영업정지 2회 이상 기업이 다시 사고를 일으킬 경우 등록말소까지 가능하다. 중대재해 발생을 인허가 취소나 영업정지 사유에 포함할 수 있는 업종도 건설업 외 업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건설업의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준도 강화된다. 제한 요건이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3명 이상 사망하는 경우’로, 입찰 제한 기간 역시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된다.
아울러 공공조달 전 분야(시설공사·물품·용역)에서 낙찰자 선정 시 중대재해 발생 이력 평가를 강화하고, 민자 사업에서도 ‘건설안전 평가’ 배점을 상향한다. 사고를 낸 건설사에 대해서는 감점 기준을 명확히 해 제재의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다.
◇‘위험의 외주화’ 근절…원청의 안전예방 의무 강화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안전관리 공백을 차단하기 위해 원청의 안전예방 의무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다단계·불법 하도급으로 안전 비용이 축소되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도급 계약 단계에서부터 적정 공사비와 충분한 공사 기간을 보장해 안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공공·민간 발주자에게 공사 규모와 특성을 고려한 적정 공사비 산정을 의무화하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또한 하도급사의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해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를 발주자에서 원청까지 확대한다.
안전 확보를 위한 충분한 공사 기간도 부여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민간공사 설계서에 기간 산정 기준을 반영하고, 발주자가 산정한 공기를 전문기관·인허가기관이 심의·검토하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폭염 등 기상재해를 공사 기간 연장 사유에 포함시켜 노동자 보호를 강화한다.
아울러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 단속도 정례화된다. 적발 시 벌점 부과와 형사처벌 등 엄정 조치가 내려지며,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불법 하도급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등록말소 기준 강화, 원·하수급인 간 책무 확대, 행정처분·벌칙 수준 상향 등 제재도 강화된다.
또한, 산재 예방 역량을 갖춘 수급인을 선정·계약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사업주뿐만 아니라 발주자·설계자·감리자까지 건설현장 중대재해 예방 책임을 신설·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노동부·대검찰청 협의로 수사 강화…중처법법 양형기준 신설 논의
정부는 관계기관 협업을 통해 중대재해 수사 체계도 대폭 강화한다. 노동부와 대검찰청은 협의체를 구성해 중대재해 발생 기업을 신속히 송치·기소하고, 정기적인 수사 상황 점검회의와 대형사고 발생 시 합동 수사협의회를 운영한다. 필요 시에는 노동부·경찰 합동 압수수색도 검찰 조율 아래 진행된다.
특히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재해가 반복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에서 불법파견 여부까지 병행 점검해 엄정히 처리할 방침이다.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노동부 전담 수사조직을 확충하고, 본부와 지방관서 간 전담팀을 운영한다. 검찰은 중대재해 사건에 부장검사 책임 수사제를 도입하고, 경찰은 전국 17개 시·도 경찰청에 산업재해 전담 수사팀을 신설한다. 정부는 이 같은 체계를 통해 초동수사부터 공판까지 일관된 엄정 대응 기조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이 적발될 경우 시정 기회 없이 즉시 법에 따라 집행하고, 과태료 위반행위도 법정 기준에 따라 엄격히 부과한다. 노동부는 “위법 사항이 적발돼도 시정조치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현장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겠다”며 “실제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점검·감독 과정에서 적발된 의무 위반의 99.6%가 평균 130만 원 수준의 벌금형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의식불명 등 중대한 재해가 발생했거나, 사업장 안팎에서 중대사고 우려가 있는 경우,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재해 위험이 급박한 경우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을 상향하고, 현재 부재한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협의해 새로 마련할 방침이다.
◇자치단체에 근로감독권한 부여…2028년까지 61만개소 점검
정부는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이 협력하는 산재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 2028년까지 총 61만 개 사업장을 점검·감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앙정부는 고위험 사업장 점검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신속 대응을 위해 불시 패트롤 점검을 도입한다. 특히 불법파견과 중대재해가 동시에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합동 감독을 통해 현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까지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에는 근로감독 권한이 부여된다. 이에 따라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예방적 감독을 수행하고, 사법경찰권을 포함한 감독·사후조치 권한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근로감독관 직무 및 사무 위임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고, 통일된 매뉴얼과 집행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8년까지 중앙과 지방에 산업안전감독관 3,000명을 충원해 감독·수사 역량을 강화한다. 기술직군 채용을 확대하고, 현장 중심의 실습형 교육과정을 도입해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병행한다.
아울러 영세 축사, 공장 지붕 유지보수 등 추락 사고 다발 현장은 민간 재해예방기관(2,124개소)을 통해 33만 개소를 집중 관리한다. 이와 함께 지방노동관서·대한산업안전협회·대한산업보건협회 간 핫라인 협조 체계를 구축해 영세사업장에 대한 종합 기술지원을 강화하고, 중대한 법 위반은 즉시 감독으로 연계한다. 필요 시 재정지원과 안전·보건 기술지원을 병행해 현장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