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카 코리아타운 끝트머리에 일직선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히라노강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의 땀과 눈물로 조성됐다.

코리아타운 입구에 있는 미유키모리 신사. 신사 한켠에 왕인박사의 시비가 있다.
지난 7월10일 오후 2시 기자는 오사카 한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코리아타운을 방문했다. 초행길이었다. 전흥배 토메이(東明)엔지니어링 사장과 이철우 오사카 한인회 이사가 가이드를 자처했다. 이날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츠루하시(鶴橋)역 앞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도보로 300m 거리에 있는 츠루하시(鶴橋)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폭이 불과 2~3미터 정도인 골목길로 들어서자 과거 종로 피맛골과 남대문 시장이 오버랩 됐다. 옷가게‧식당‧정육점‧식료품 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곱창, 순두부, 된장, 김치 등 한식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음식 가격은 대략 1000엔(원화 9300원)대로 한국보다 10%가량 비싸거나 엇비슷했다. 그럼에도 상점 주인들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게 보이지는 않았다.
상가 벽면에는 대중가수 조항조와 조총련계인 금강산가극단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평일이지만 가게 셋에 하나꼴로 문이 닫혀 있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 경기침체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해남식당’으로 들어갔다. 충북 괴산이 고향이라는 임선영 사장은 “번거롭지만 밑반찬 등 식자재를 한국에서 직수입해 공급하다보니 단골손님들이 적지 않다”며 “오늘 저녁에도 20여명의 단체 예약이 있다”고 말했다.
이철우 이사는 “오늘 같은 평일에는 한가하지만 주말이 되면 여지없이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다”며 “한류가 츠루하시 시장을 포함해 코리아타운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츠루하시 시장은 한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시장이다”며 “한복을 비롯해 명절 음식이나 제사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한인들은 오사카는 물론 고베나 효고, 나라 등지에서 자동차로 네다섯 시간씩 달려와 장을 보고 돌아간다고 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아직도 츠루하시 시장을 '조센이찌바(朝鮮市場)'로 부른다고 했다.
쓰루하시 시장을 빠져 나와 10분쯤 걸어 들어가자 ‘오사카 코리아타운’간판이 보였다. 코리아타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미유키모리 신사(御幸森神社)가 보였다.
오사카코리아타운 입구.
신사 입구에서부터 한국인들이 기부한 내역으로 보이는 돌로 만든 팻말이 신사를 감싸고 있었다. 한 켠에 왕인 박사가 지은 ‘난바나루터’라는 노래비가 눈에 띄었다. 고대 일본에서 활동하며 논어(論語)와 한자를 전해준 백제인 왕인 박사의 시비다.
왕인 박사가 일본 16대 왕인 인덕천황(仁德天皇ㆍ4~5세기 추정)의 즉위를 축하하며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10월 31일, 왕인(王仁) 박사를 기리기 위해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힘을 모아 코리아타운 입구에 있는 미유키모리 신사(御幸森神社) 안에 노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신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코리아타운을 탐방했다.
쓰루하시 시장의 칙칙한 분위기와는 달리 상가는 대부분 밝고 화려한 색깔의 인테리어로 마치 서울 홍대 근처를 연상시켰다. MZ세대들로 보이는 젊은층들이 서너명씩 짝을 이루어 다소 한산한 거리를 채웠다. 입구에서 300~400미터 가량 이어지는 거리에는 BTS, 블랙핑크 등 각종 K-POP이 흘러나왔다.
한류백화점, 김치랜드, 굽네치킨,커피숍 등이 거리를 채웠다. 상점 입구에 돌하루방이 손님을 안내하는 듯 허리를 숙이고 있는 민속주점도 코리아타운을 지키고 있다. 코리아타운 상가에서 올리는 매출의 약 70%는 한류의 영향이라는 이철우 이사의 분석이다. 그는 코리아타운과 츠루하시 시장을 합해서 상가수는 대략 1500여개라고 했다.
그는 근방에서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김치랜드’로 안내했다. 마치 한국의 대형 슈퍼마켓 같았다. 김치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료수와 스팸, 스넥 등 K-푸드가 가지런하게 진열돼 있었다. 요즘 가장 핫한 K-라면의 진열대가 전체 매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근 한국 라면은 종주국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수출국으로 등극하지 않았는가. 덩달아 한국 식품 조리기도 세계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박 총괄 매니저는 “진열된 제품의 수가 수천 종이 넘을 것”이라며 “하루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도 수백여 명에 이른다”고 말해 K-푸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류백화점에서는 한국산 뷰티 관련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귀뜸했다.
츠루하시 역 인근 재래시장인 츠루하시 시장. 한인들은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때 이 시장에서 각종 음식과 제수용품 등을 구매한다.
코리아타운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강물이 흘렀다. 히라노강(옛이름은 백제강)이다. 매우 탁해 보였지만 금붕어 떼가 유유자적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보니 녹조현상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이철우 이사의 이야기다.
“본래 이 지역은 히라노(平野)라는 늪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매년 우기 때는 강물이 범람해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버려진 땅이었죠.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이 땅을 곡괭이와 삽으로 물길을 내고 정비한 것이 바로 이 히라노강입니다. 조선인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한많은 강이 아닐까 싶네요.”
이 일대는 천여 년 전 백제인들이 몰려 살던 곳으로 강 이름이 백제천(百濟川)이었고, 주변에는 백제신사(百濟神社),백제사(百濟寺)는 물론이고, 1945년 해방전까지는 백제역(百濟驛)까지 있었던 그야말로 백제의 향기가 물씬 풍긴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한국을 연상케 하는 지명이 사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젊은 청년들은 전쟁터로 끌려 나가야 했다. 이에 일본 내 군수공장은 물론 방직·주물,고무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궁리 끝에 일제는 부족한 노동력을 조선인으로 메우기 위해 1922년 오사카~제주를 잇는 정기여객선 ‘기미가요마루’(군대환)를 띄웠다. 당시 조선인들의 삶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제주도민들은 ‘기미가요마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군대환을 탄 이들도 있지만 강제로 끌려온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
오사카 쓰루하시경지정비조합은 제주 등지에서 떠밀려서 온 조선인들을 히라노강 개간 사업에 투입했다. 콘크리트 벽을 치고 너비 16m, 길이 2144m 규모의 물길을 만든 게 지금의 히라노강이다. 해방 후에는 또 다시 제주도 사람들이 대거 오사카로 유입되는 일이 벌어졌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에 있는 오사카코리아타운역사관
바로 현대사의 비극인 4.3사건이 터지자 도민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면서 그야말로 오사카는 제주도민들이 넘쳐났다. 부모 형제를 잃고 갈 곳 없는 이들을 받아준 이들이 바로 백제의 후손들이며 기미가요마루를 타고 들어온 제주도민들이었다.
오사카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에 들렀다. 입구에 세워진 ‘공생의 비’를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일본인 안내원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20여 평 쯤 보이는 공간에는 일본어로 된 자료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역사자료관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한국말이 서툴러 불가하다는 답변이다. 아쉬움이 남았다. 한글로 된 안내서는 A3 한 장짜리 리플릿이 전부였다. 이 리플릿에는 “코리아타운은 한때 이카이노(猪飼野)라는 지명으로 불리던 지역의 한가운데 있다”며 “이카이노라는 지명은 항구임을 나타내는 ‘이카이노쓰’에서 유래됐다”고 기술돼 있다.
1920년대에는 받는 이의 주소에 ‘일본국 이카이노’만 적어도 한반도, 특히 제주도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할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사카에 제주도민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카이노는 '돼지 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재일조선인의 삶을 그린 ‘파친코’에서도 당시 판잣집 안에 돼지를 키우는 모습이 등장한다.
현재 코리아타운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연간 200만명. 그 끝자락에 말없이 흐르는 히라노 강물은 조선인들의 아픔을 품고 지금도 현해탄 어디론가 향해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