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프롬사원으로 들어가는 길. 멀리 키큰 스뻥나무가 버티고 선 사원 입구가 보인다. 오랜기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지금도 저 나무들로 인해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자연의 순리에 운명을 맡긴 듯한 모습이다. [황복희 기자]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유적, 타프롬(Ta Prohm)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열대림이 이어져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쭉쭉 뻗어있어,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아팠다. 도중에 한눈에 사지가 성치않은 장애인들이 정자 아래서 캄보디아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킬링필드’에서 부상을 당해 장애를 입은 전직 군인들이라고 가이드 ‘지아’가 말했다. 캄보디아의 홀로코스트, 20세기 대학살의 상흔은 이 나라 여기저기,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옹이처럼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듯 했다.
멀리 오래된 석조사원으로 보이는 낡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특이한 것이 키큰 나무가 외벽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저게 무슨 나무 인가요?”
“스뻥 나무라고 합니다. 습기를 좋아해 돌 속 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저렇게 휘감고 있는 거에요.”
무너져내리는 사원을 나무가 지탱하고 있는 까닭에 이제는 베어버릴 수도 없다고 했다. 거대한 뿌리로 사원 외벽을 집어삼킬듯이 휘감고 있는 스뻥나무들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을 정도로 이곳 ‘타프롬’의 명물이자 주연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뿌리와 돌무더기 유적이 주연이 되어 다이내믹한 영화를 찍고 있는 듯한 타프롬사원.
그랬다. 나무가 성성할 수록 사원은 원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여기저기 돌무더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뿌리와, 초록 이끼가 덮힌 돌무더기 유적. 그 둘의 조합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다운 폐허’라고나 할까. 수백년 간 밀림에 갇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타프롬 사원은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리야바르만 2세 이후 이어진 혼란기를 수습하고 크메르제국의 최전성기를 꽃피운 자야 바르만 7세가 12세기 후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불교사원이다. 이 시기에 힌두국가에서 본격적인 불교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어머니를 위해 타프롬을 건설했고 아버지를 위해 프레아 칸을, 그리고 자신을 위해 바이욘사원을 세웠다.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수많은 건축물을 남겨 건축왕으로 불리운다. 씨엠립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있을 정도로 크메르 제국 왕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타프롬 사원은 일명 ‘안젤리나 사원’으로도 불린다. 안젤리나 졸리 출연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다. 보수공사를 통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듯한 사원 내부를 돌아보는 느낌이 조금 전 앙코르와트 때와는 사뭇 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 분)’가 캄보디아의 정글을 찾아 탐험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퍼즐을 풀어나가듯이, 시간의 태엽을 감아 감춰졌던 이야기 속을 거닐 듯, 비현실적이고도 아득한 느낌을 주었다.
천년 사원을 압도하고 있는, 타프롬사원의 사실상 왕(王)은 스뻥나무다. 어마어마했다.

타프롬사원 내부. 나무의 성성한 기운에 밀려 무너지는 사원이라 불안불안했으나, 보수공사를 통해 안전하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한 번 쳐보세요.”
자야 바르만 7세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는 ‘통곡의 방’은 그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설계됐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면 공명에 의해 방 전체가 “텅, 텅” 소리를 내며 울렸다. 가이드가 주먹을 쥐고 한번 쳐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울렸다. “가슴 속에 아픔이 있으면 주먹으로 쳐도 울린다고 합니다.” 가이드 지아 또한 울렸다. 가슴에 아픔 하나 없는 사람이 뉘가 있을까.
낡고 빛바랜 고서 한 권을 들여다본 듯, 멀고 아득한 이야기 하나를 얻어 ‘스뻥나무의 왕국’ 타프롬을 떠났다.
툭툭이가 열대숲길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 유리창에 뭔가 우박처럼 투두둑 떨어진다 싶더니, 순식간에 비가 쏟아졌다. 다음 행선지인 바이욘 사원으로 가던 도중, 사잇길에 위치한 인근 사찰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마침 경내에 한국식과 다를바 없는 정자가 있어 비를 피할 겸 마루에 올랐다. 쪼그리고 앉아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오리 몇 마리가 마치 조각품처럼 마당에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정자 안까지 비가 들이치는 통에 우산까지 쓴채 그러고 있기를 30분. 가이드 지아가 결단을 내린 듯 벌떡 일어났다. 바이욘 사원은 툭툭이를 타고 지나면서 보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현지 지인이 ‘앙코르와트’, ‘타프롬’과 함께 추천한 바이욘 사원은 사람 키보다 큰 사면상으로 유명하다. 자야 바르만 7세의 모습이라고도 하고, 관세음보살로도 추정되는 ‘큰 바위 얼굴’ 바이욘의 미소를 못보고 온 것이 아깝다. 하지만 다시 그곳을 찾아야할 이유가 생겼으니,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바이욘 사원으로 향하던 중, 밀림에서 폭우를 만나 인근 사찰 경내에서 툭툭이를 세워두고 비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