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 국제총장
중소기업, 벤처와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학회 교수님들과 오사카 엑스포에 다녀왔습니다.
기업가정신은 ‘인간·공간·시간’을 바꾸어 기회를 포착하고 혁신과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하는 정신입니다. ‘시간·공간·인간’이 바뀌면 세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바쁜 교수님들과 함께 여행하다 보면 많이 배우기도 하고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이번 여행은 일본 교토식 경영의 중심지 오사카를 방문하여 엑스포 방문과 일본 사례 연구 기회에 저도 참여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본 오사카에서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을 곁에서 연구한 교토대학 쓰에마스 지히로 교수와 토론도 하고, 엑스포 방문도 함께 하면서 지낸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158개국, 7개 국제기구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 국제박람회입니다. 총 6개월간 진행되는 이 공간에서 매일 평균 15~20여 만 명이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800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 한국관의 누적 방문객 수도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158개국 중 가장 많은 인기가 있는 곳 중 하나가 ‘한국관’이었습니다.
다음은 지난 6월 27일 금요일, 오사카 엑스포 방문기입니다.
오사카 엑스포장 한국관 입구에 관람객들이 줄을 선 모습.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금요일, 오사카 유메시마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인파들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대기가 많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며칠을 다니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저는 사전에 예약한 덕분에 학회 교수님들과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열띤 논의를 하면서 더 많은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미국, 프랑스, 호주, 아일랜드, 한국관을 하루 종일 다녔습니다. 저는 각국의 공간에 입장하면서 기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습니다.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엑스포는 기술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문명의 방향을 제안하고, 서로 공감하며 공동의 가치를 재구성하려는 세계의 노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각국이 보는 문명의 제안 방향은 그야말로 환경과 사회, 그리고 그 나라의 차별적인 기업들의 기술 문명을 보여주고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엑스포는 더 이상 기계와 기술을 자랑하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문명과 문화 체험의 시간과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각국은 자기 나라의 주제를 놓고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엑스포의 대주제가 ‘생명과 인간’이었습니다. 세부 주제가 ‘삶과 생명 지키기’, ‘삶의 힘을 키우기’, ‘삶을 연결하기’ 였습니다.
그만큼 모두 비교도 되고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각국들의 콘셉트와 관점을 중심으로 느끼려고 했습니다.
각국의 공간에는 기술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생명, 생활, 문화, 그리고 ‘연결’이 중심이 된 문화 체험이었습니다. 엑스포는 기술의 공간에서 인간의 공간으로, 즉 기술에서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단지 전시가 아니라 ‘사람과 생명을 위한 스토리텔링 공간’이 만들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중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한국관’과 '프랑스관'을 소개하려 합니다. 두 나라는 문화 체험의 관점에서 엑스포 진화의 중심에서 돋보인 곳입니다. ‘한국관’과 ‘프랑스관’은 국가 브랜드의 서사적 무대였습니다.
세계를 많이 다녀보면서 한국은 이제 기술이 아니라 문화 선진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오사카 한국관에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한국의 공통점이 떠올랐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프랑스와 파리는 사람들의 불평이 많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불평자가 많지만, 불평의 대왕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명은 불평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프랑스와 한국은 특유의 불만과 비평을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키는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엑스포에 로댕의 손을 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로댕의 손 시리즈를 만들어낸 창조의 손, 보호의 손, 제작의 손 등을 보여주면서 콘셉트별 감성적 전시와 체험 공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국관은 “마음을 모아”를 주제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문화 체험을 재현했습니다.
한국관은 관람객으로 들어선 순간, 내가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한국관 입장 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한 말은 1관에서 음악이 되었고, 2관에서는 "나의 숨결이 물방울이 되었다."
한국관에 들어서면 우리 눈에 들어온 건, 한국관 정면을 장식한 거대한 스크린이었습니다. 이 앞에서 각자의 포즈로 사진 찍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국관 건물의 정면은 대형 미디어 스크린의 파사드로 만들었습니다. 폭 27미터, 높이 10미터의 대형 미디어 파사드 스크린에서는 물결치는 한복의 곡선, 바람 속의 소나무, 꽃이 피어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관람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에게 제1관보다 앞선 제0관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한국관 내부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간은 어둡고 조용했습니다. 직원이 안내한 마이크 앞에 서서 제 목소리를 속삭이듯 이야기하자, 그 소리가 바로 음악으로 변해 천장에 설치된 143개의 조명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빛이 흐르고, 멜로디가 퍼지고, 공간 전체가 마치 제 감정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공간을 물들일 수 있다는 것, 이곳은 기술의 시연장이 아니라 감정을 중심으로 설계된 예술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이 공간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흐름이 너무 밋밋해 피날레 같은 결론의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장 한국관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현대차의 수소 엔진이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을 오랫동안 연구한 저로서는 가장 관심이 많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한 번 불어보시겠어요?”
직원의 말에 숨을 불어넣자, 제 호흡이 스크린 위에서 작은 수소 반응으로 반짝이며 물방울로 환원되더니, 그 물방울이 나비가 되고, 꽃이 되고,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사람의 숨 하나가 생명이 되고, 이야기로 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단지 수소 기술을 설명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숨 하나가 기술과 만나 시각적 예술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과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까지 이끌어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공간은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공간에 들어서자, 피아노 소리가 조용히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2040년의 미래를 살아가는 소녀가 등장하고, 그 소녀는 과거의 할아버지가 남긴 미완성 곡을 완성해 나가는 이야기 영상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에 맞춰 실제 피아노가 자동으로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화면에 뜬 질문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관람객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는 장치였습니다. 그 순간, 이 전시는 단순한 체험이 아닌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대화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엑스포는 기술의 무대가 아닌, 감정과 생명의 공명장이었습니다.
“나의 숨결이 물방울이 되고, 나의 목소리가 음악이 되다.”
엑스포에서 기술이 감정을 읽고, 감정이 생명의 공간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엑스포는 단순한 시연이 아니라 내 감정이 전시의 일부가 되는 참여형 문화 공간이 되고자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나온 뒤에도, 제 감정은 한동안 가슴속에서 머물렀습니다.
엑스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숨을 한 번 불어넣는 일.
속삭이는 한마디 말.
그 안에서 한국의 문화 체험과 경험을 담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류는 이렇게 오사카 엑스포에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숨을 한 번 불어넣는 일, 속삭이는 한마디 말—그 안에 한국의 문화가, 생명이 있었습니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s://www.dongp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