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자 전 더니든 한인회장(왼쪽에서 두번쨰)이 지난 2월17일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2025 설날행사(‘Lunar New Year Celebration’)에 참석해 한인동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김의자 전 더니든(Dunedin) 한인회장. 도전과 성취로 가득한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낯선 땅에서도 꺾이지 않는 도전 정신, 그리고 한국과 동포사회를 위한 헌신, 그의 이야기는 누구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여정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84년 7월, 김의자 전 더니든 한인회장은 한 손에 여행 가방을, 또 한 손엔 가슴 뛰는 설렘을 안고 뉴질랜드 최남단에 위치한 더니든을 밟았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것들은 어느덧 과거의 흔적이 되었고, 새로운 시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41년 전 7월, 한여름의 서울을 뒤로하고 한겨울의 뉴질랜드로 향하던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숙소를 구할 때까지 머물렀던 작은 모텔방,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언어,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 등록까지,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그가 도착한 더니든은 남섬의 한적한 도시였다. 그러나 그곳은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배움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임을 느꼈다. 특히 뉴질랜드 최초의 대학이자 세계적인 명문으로 손꼽히는 오타고대학교(University of Otago, 1869년 설립)가 있다. 이 대학은 뉴질랜드 유일의 치과대학이 위치해 있어, 높은 수준의 교육을 위해 이곳을 찾는 학생들과 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적 환경 덕분에 한국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더니든을 선택한다. 넓고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키워나간다. 많은 가족들이 잠시 이곳에 머물며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고, 교육이 끝나면 다시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농업과 어업을 관장하는 뉴질랜드 MAF(Ministry of Agriculture and Fisheries)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며 그는 점차 현지 사회에 녹아들었다. 다행히도 MAF 직원들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고. 아이들 역시 무사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오타고지역의 한국전 참전용사(K-Force)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해 해마다 기념행사를 열어온 김의자 전 더니든 한인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1994년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기 시작하면서, 1995년 더니든에도 약 20여 가정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더니든한인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서로 도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한인회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주요 사업의 하나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참전용사들과의 모임을 갖는 것으로 정했다.
이 모임은 동포 및 참전용사들의 의견을 토대로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K-Force)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두 분만 생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녀와 손자, 그리고 한인들이 모여 해마다 기념행사를 진행하며 연말에도 모여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임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 역사와 감사를 기리며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김 전 회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에 오타고지역 참전용사회로부터 명예회원증을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다.
뉴질랜드 더니든에 조성된 ‘코리안가든(Korean Garden)’에 목련이 만발한 모습.
낯선 땅의 ‘코리아가든’, 그리고 ‘한국의 봄’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s://www.dongponews.net)
2000년, 더니든에 한 조각의 한국이 새겨졌다. 세인트 클레어(St. Clair) 골프장 7번 홀 근처, 낯선 땅에 ‘코리안가든(Korean Garden)’이 조성된 것이다. 이 정원에는 한국의 봄이 깃들어 있다. 철쭉, 목련,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고향의 봄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속에서 그리운 한국의 봄날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코리안가든이다.
그리고 2022년, 이 정원에 새로운 생명이 심어졌다. 무궁화 세 그루가 남반구 최남단, 남위 46도의 땅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의 국화가 머나먼 이국의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운다는 것, 그 의미는 특별했다. 남반구의 푸른 하늘 아래, 무궁화가 피어나듯 한국인들의 삶도 더욱 깊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코리안가든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소중한 장소로 자리 잡았다.
뉴질랜드 더니든에 조성된 ‘코리안가든(Korean Garden)’에 한국의 봄을 느낄 수 있는 철쭉이 만발하다.
그는 12년 동안 더니든 한인회장으로 활동했다. 가장 가슴 뜨거웠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것은 뉴질랜드 한인 사회가 하나로 묶이는 역사적인 통합의 순간이었다. 2010년 명칭 변경 전만 해도 뉴질랜드에는 전국적으로 7개의 한인회가 존재했지만, 각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기 달랐다. 오클랜드에서는 ‘재뉴교민회’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웰링턴은 ‘재뉴한인회’라 불렀다. 하나의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치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다른 성(姓)을 쓰는 가족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자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인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명칭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인 사회가 하나로 단결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부터 통일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변화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불러온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각 지역 한인회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걸린 문제였다. 각 지역의 한인회마다 저마다의 역사와 뜻이 있었기에, 하나로 모아 새로운 명칭을 만들자는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속적인 설득과 대화를 이어갔다.
마침내 2010년, 웰링턴한인회를 필두로 오클랜드한인회도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고, 결국 전국 7개의 한인회 중 4개의 한인회가 크라이스트처치에 모여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2010년 10월 11일 ‘재뉴질랜드한인회총연합회’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뉴질랜드 어느 지역에서든 새로운 한인회가 설립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이름을 앞에 붙여 ‘OO한인회’라 부르게 되었다. 이름이 통일되자 비로소 한인사회는 더 강한 정체성과 단합된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지난 2월17일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2025 설날행사(‘Lunar New Year Celebration’)에 참석한 김의자 전 더니든 한인회장.
남반구의 ‘설날’ 초청장
지난 2월 17일, 그는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Lunar New Year Celebration’ 초청을 받아 웰링턴을 찾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행사는 그에게 단순한 공식 초청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사실 2023년 2월에도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받은 초청장에는 ‘Chinese New Year Celebration’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물론 중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일 테지만, 뉴질랜드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떠올릴 때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그 초청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오클랜드에서 웰링턴행 비행이 예상치 못한 태풍으로 인해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행사 주최측에 이메일을 보냈다. 참석이 불가능했던 사연과 함께 한 가지 요청을 조심스레 전했다. “다음 초청장에서는 ‘Lunar New Year Celebration’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작은 요청이었다. 마치 작은 물결이 퍼져나가 파도를 만들 듯, 그가 던진 작은 요청이 문화적 변화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뉴질랜드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시아계 공동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뉴질랜드 곳곳에서는 ‘Lunar New Year Celebration’이라는 이름으로 광고가 나가고 있었고, 마오리 공동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음력 설을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Lunar New Year Celebrat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적힌 초청장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실감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모아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지금도 한인 사회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변화와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은 차이를 넘어 큰 뜻을 함께 할 때, 진정한 공동체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새로운 땅에서 삶을 시작하며 길을 찾고 있을 것이다. 김의자 전 회장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용기있는 한 걸음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s://www.dongp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