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골 국물에 해산물과 소고기를 넣어 끓이는 베트남 스타일 쌀국수 후띠에우.
베트남 쌀국수는 서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외국 면 요리 중 하나다.쌀국수 외에도 베트남 음식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 국토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채롭다. 식욕 돋는 가을, 다양한 식재료와 복합적인 문화가 담긴 베트남 음식을 알아보고 맛본다.
‘서울은 세계 음식의 용광로’라는 말이 요즘 더욱 실감된다. 외국 음식은 두 가지 경로로 한국에 전해진다. 하나는 해당 국가의 이주민을 통해, 다른 하나는 현지의 음식 기술을 익힌 한국인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다. 중국 음식은 아시다시피 구한말 개항과 화교의 유입으로 인기를 끈 지 벌써 120년이 넘었다. 일식은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가 해방 이후 한국인 요리사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베트남 음식의 유행은? 뜻밖에도 한국인이 먼저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90년대 미국·호주·프랑스 유학생들은 현지에서 쌀국수를 많이 먹었지만, 한국에는 파는 곳이 없었다. 이때 한 유학생 출신 사업가가 강남에 식당을 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베트남 이주민들이 전국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우리가 만난 이주미 사장(베트남 이름 하우짱)은 결혼 이민을 와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호찌민에서 4시간 떨어진 남부 출신입니다. 아이가 둘 있고, 남편도 있어요.(웃음)” 베트남 식당 특유의 냄새가 가게에 가득하다. 베트남은 향초와 스파이스를 잘 사용하고, 볶음과 튀김 요리도 많다. “우리 가게는 여러 가지 쌀국수가 유명해요. 보통 한국인 손님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만들기도 하고, 고향식도 선보이고 있어요.”
그중 메뉴에 있는 ‘후띠에우’라는 쌀국수는 고향식이라고 한다. 사골로 국물을 내고, 면이 부드럽고 가늘다. 원래는 선지와 족발 등이 들어가지만, 요즘은 넣지 않는다. 매운맛 쌀국수도 있다. ‘후에’라는 중부 지방식이다. 우리가 먹어보면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데, 이들은 정확하게 구분한다. 그럴 만도 하다. 외국인이 전라도·경상도·서울 김치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베트남에는 하루 세끼를 쌀국수만 먹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쌀국수는 정말 베트남의 국민 음식이다. 우선 값이 싸고, 간단하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맛있다. 쌀국수의 역사는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인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두 노동자들이 처음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국수는 아주 오래전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은 쌀농사가 잘되어 밀국수가 아닌 쌀국수를 주로 먹는다.
쌀국수를 뜻하는 ‘퍼(Pho)’는 프랑스 대중 음식인 ‘포토푀(Pot-au-feu)’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소뼈 등을 오래 고아 만드는 포토푀의 조리법이 쌀국수 요리에 도입됐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은 포토푀에 빵을 적셔 먹지만, 베트남인은 흔한 국수로 이를 대체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쌀국수는 베트남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닭·소·돼지고기를 모두 사용하며, 그 내장이나 특수 부위도 고루 쓴다.
우리나라에도 베트남 이주민이나 농사를 짓기 위해 오는 계절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는 토속적인 베트남 음식을 파는 식당이 꽤 많다. 한국은 이제 쌀국수를 넘어 베트남 본격 요리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군데군데 구멍이 보일 만큼 얇고 과자처럼 바삭한 반죽이 포옹싸 바인쌔오의 특징이다.

포옹싸의 바인쌔오는 반죽을 얇게 부치고 채소와 해산물을 넣어 완성한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아주 길고, 땅도 넓어요. 남쪽과 북쪽은 요리 문화도 많이 달라요. 북쪽은 허브 같은 것을 많이 쓰지 않는데, 남쪽은 허브도 많이 넣어요.” 특이하게도 쌀국수의 상징 같은 고수는 남쪽에선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가게 이름이 특이하다. ‘포옹싸’. ‘포옹’이라는 한국어가 연상된다. ‘포’는 쌀국수를, ‘옹싸’는 남부 사투리로 친근하게 부르는 ‘아저씨’ 정도의 의미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이 사장은 2008년 결혼 이민으로 한국에 왔다. 우리말이 아주 유창하다. 통역사로도 일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 2019년 가게를 열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고생했지만, 지금은 서울의 맛집으로 유명하다. 근처 종합병원 직원이 많이 찾고,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단골집이 되었다. 주말에는 근처에 사는 베트남 현지인이 몰려온다. 가게 벽에는 “해장에는 쌀국수가 딱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재치가 반짝이는 가게다.

포옹싸의 이주미 사장(왼쪽)과 박찬일 셰프

포옹싸의 바인쌔오(왼)와 바인미
이 집은 가족 경영을 하고 있다. 베트남 친정어머니가 와서 요리를 도와준다. 원래 솜씨가 좋은 분이다. 바인쌔오를 부쳐 내왔는데, 내가 서울에서 본 최고의 바인쌔오였다. 베트남에서 잘한다는 식당에서 먹어본 바인쌔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것도 남부식과 북부식이 다르다고 한다. “남부는 얇고 크게, 중부와 북부는 조금 두툼하고 작게 부칩니다.”
바인쌔오는 쌀가루에 노란색 강황을 넣어(달걀은 들어가지 않는다) 색을 내고, 코코넛 가루로 맛을 낸다. 그걸 얇게 부치고 가운데에 여러 가지 고명을 넣어 속을 채운다. 베트남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위치에 있다. 북부를 통하지 않으면 중국으로 가기 힘들다. 지도를 보면 인도차이나반도의 북쪽은 대부분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베트남은 중국과 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고, 그로 인해 중국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짜조도 중국 요리인 춘권 계열이다. 볶음밥, 볶음국수 같은 중국 남부식 요리도 많이 먹는다.
베트남 음식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인미(Bánh Mì)’다. 원래는 떡이나 면 요리를 뜻하는 이름이었지만, 프랑스의 유산인 바게트 빵을 의미하면서 빵 샌드위치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쌀국수만큼 많이 먹는다. 프랑스 바게트가 현지화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햄 등을 가볍게 끼워 먹지만, 베트남에서는 느억맘(액젓)으로 양념한 돼지고기와 채소 등을 넣어 먹는다. “북쪽은 바인미에 속을 많이 넣는 편이고, 남부는 단순해요. 그런 차이가 있어요.”
고수는 쌀국수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바인미에는 거의 항상 고수를 넣는다. 그것이 베트남식이다. 베트남 식당들이 한국에서 요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료의 가격 차이다. 요즘은 재료 수입이 늘고, 신선한 채소나 허브는 농사를 많이 지어서 시중에 풍부하다. 고수는 원래 한국에서 나는 채소라 구하기 쉽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와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크다. 겨울이나 한여름에는 고수 가격이 매우 비싸서 부담스럽다고 한다. 베트남은 한국과 수교한 후 관광, 기업 교류, 이민 등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특히 음식이 널리 퍼지면서 더욱 친밀해진 경우다. 서울에서도 맛있는 베트남 식당을 흔히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양국은 1992년에 수교했으며, 현재 31년이 넘었다.

베트남 음식 중 하나인 껌떰(Com Tam)
# 베트남 가족이 운영하는 정통 남부식 전문점 ‘포옹싸’
# 진한 사골 육수와 신선한 재료의 남부식 요리 ‘씬머이’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글 배효은 | 사진 최현석
출처 서울사랑 (☞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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