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의 재외동포신문 편집국장
지난 7월31일 재외동포청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3세가 한국인으로서자긍심을 갖고 한국 국가대표로서 올림픽 무대에서 멋진 경기를 펼친 모습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700만 재외동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며 허미미 선수를 격려했다. 허미미 선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받아 대한민국 유도 대표선수로 파리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비록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알려지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024파리올림픽이 8월 11일(현지시간) 폐막됐다.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은메달 10개로 세계 8위를 기록하며 스포츠 강국으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포츠는 대체로 경제력과 비례한다. 인재 발굴에서부터 유능한 코치 및 감독 영입은 물론 첨단 장비까지 갖추어야 하는 스포츠 과학시대인 만큼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때 까지 재일동포들의 값진 희생과 헌신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재일동포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교과서에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매번 물거품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머지 않아 재일동포가 잊혀진 동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1948년 6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한국은 정부 수립 직전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터라 온 국민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연명했다. 참가비용을 마련하고자 올림픽 복권을 발행하고 정부 곳간을 털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터에 한국 선수단에게 손을 내 민 이가 있었다. 바로 재일본조선체육회 소속 재일동포들이었다. 당시 재일동포들의 삶 또한 팍팍했지만 조국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것. 1948년 6월21일 마침내 한국 선수단 67명은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다시 배를 타고 후쿠오카를 거쳐 요코하마항에 도착했다. 당시 채수인 재일본조선체육회장과 이희원 상임고문 등 재일동포들은 한국 선수단에게 유니폼과 트레이닝복, 각종 스포츠 장비들을 지원했다. 아울러 재일동포들로부터 십시일반 모금한 후원금 64만9500엔과 함께, 한국팀과 맞붙을 외국선수에게 줄 기념품도 전달했다. 가슴에 태극기가 달린 유니폼도 건넸는데, 재일동포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만든 유니폼이었다. 1936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했던 손기정의 한(恨)을 담지 않았을까.
당시 한국 선수단은 요코하마항에서 상하이로 건너가 홍콩에서 비로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무려 20박 21일 동안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배를 곪던 시절은 면했지만 이때도 재일동포들은 모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외면하지 않았다.
재일동포들은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자 이듬해 1982년 재일한국인후원회를 결성했다. 당시 재일동포가 모금한 금액은 총 541억원. 재일동포를 뺀 나머지 지역에서 답지한 재외동포들의 성금은 고작 16억원 정도였다. 서울 송파구 소재 올림픽공원 체조‧수영‧테니스경기장과 미사리조정경기장, 그리고 올림픽회관이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건설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부인회원들은 7년 동안 매일 동전 10엔씩을 모아 경주 불국사‧강릉 경포대‧제주 천지연폭포‧부여 부소산성‧양산통도사 등 전국 명승지에 수세식 화장실을 지어줬다. 한국의 화장실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데도 재일동포들의 후원이 있었던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때는 한국의 국민소득이 3만1000달러를 넘기면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재일동포들의 모국사랑은 식지 않았다. 당시 2억엔(한화 19억4000여만원)을 기부했다. 재일동포의 모국사랑은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IMF 등 국난이 닥칠 때는 늘 재일동포들의 따뜻한 손길이 보태졌다. 이런 재일동포들의 헌신과 모국사랑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하는데 밀알이 됐음은 물론이다. 중국이 G2국가로 부상한데는 전 세계 흩어져 있는 화교들을 포용한 결과라는데 이견이 없다.
현재 710만 재외동포 가운데 미주동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는다. 이에 비해 재일동포는 해방전후 230만명에 육박했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50만명 정도로 쪼그라 들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에 구멍이 뚫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가운데 재미동포는 재외동포사회의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재일동포와 비교해 재미동포는 한국사회를 위해 무엇을 남겼는가. 안타깝지만 이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이 대목에서 정부를 향해 당부하고 싶다. 중국처럼, 재미동포를 비롯한 재외동포를 품는 포용정책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모국에 기여할 수 있는 물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역할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