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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4-07-02 13:09:29
  • 수정 2024-07-02 13: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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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장 정관채 장인과 아들 정찬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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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쪽의 부활

전라남도 나주는 영산강이 굽이치는 지형으로 인해 여름 장마철이면 빈번히 범람해 홍수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었다. 나주 사람들이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물이 많은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와 쪽을 주로 재배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나주가 쪽 재배지로서 한창 번성한 1900년대 초반에는 전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쪽 염료를 구하러 오는 이들로 붐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나 흥했던 나주 쪽이 한동안 그 땅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6·25전쟁 이후 20~30년 정도는 쪽을 보기 힘들었어요. 국내에 화학 염료가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천연 염색의 수요가 확 줄어 들었거든요. 수요가 없으니 쪽 농사도 짓지 않았지요. 한해 살이풀인 쪽은 한 해만 농사를 걸러도 자연발생적으로는 잘 자라지 못해요.” 


정관채 장인의 설명과는 다르게 어찌 된 일인지 지금 나주에는 수천 평의 쪽밭이 펼쳐져 있고 내리쬐는 여름 볕 아래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이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장인과 쪽의 묘한 인연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목포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는데, 당시 염색을 가르치던 박복규 교수가 전통 공예와 문화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던 예용해 선생으로부터 받은 쪽씨를 그에게 건넸다. 우리나라 고유의 쪽빛을 되살리고 싶었던 예선생이 일본에서 어렵사리 구해 온 씨앗이었는데 그것을 제자 이던 박복규 교수에게 맡겼고, 박 교수가 자신의 제자 중에서 나주 출신의 학생을 운명처럼 발견한 것이었다. 나주 지방의 전통 공예로는 무명길쌈인 샛골나이도 유명한데 이러한 직조 문화와 쪽 염색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발달 해왔다. 마침 정관채 장인은 무명길쌈과 쪽 염색으로 유명 한 샛골 마을 출신이기도 했으니, 일본에서 건너온 쪽씨가 꼭 맞는 적임자를 찾은 셈이다. 


뜻밖의 우연은 한 사람이 나아갈 생의 길목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터주었다. 더군다나 여러 사람의 마음이 보태어져 어렵게 자신에게 당도한 기회란 것을 알아서였을까. 청년 정관채 장인은 ‘농사꾼의 아들이자 미술학도, 샛골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까?’ 하는 생각으로 쪽씨를 받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향 땅에 쪽씨를 심고 대학을 다니는 와중에 들러 틈틈이 돌봐 일구었고 시행착 오를 겪은 뒤 몇 년 만에 첫 수확을 했다. 작은 땅으로 출발한 쪽밭은 이제 약 1만m2(3000평)에 이르렀고, 쪽을 수확해 염료를 만들고 천을 염색하는 쪽 염색장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42년째가 됐다. 200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출처] [공예+디자인 38호] 푸른 손으로 더 푸르게 물들이다 염색장 정관채, 정찬희 부자|작성자 공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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