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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4-05-26 09: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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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앞에 두고

 

도쿄도

일본 도쿄도

신 오쿠보

1 Chome Hyakunincho, Shinjuku City, Tokyo 169-0073 일본

도착 첫날 밤이 길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짧은 일본 여행길에 무슨 여독이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추억의 거리와 로컬 횟집에서 긴 밤을, 분위기에 취하여 술에 취하여 ‘다변의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는 멍한데, 얼큰 시원한 국물이 생각났다. 자동으로 메뉴는 우동으로 결정됐고, 숙소 가까운 곳에 ‘텐소야’ 라는 상호를 보고 쑥 들어갔다. 우동의 맛은 굵직한 면발에서 나오는 쫄깃한 식감과 목넘김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간장으로 맛을 조절한 간토식 우동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는 게 급선무였다 ㅎㅎ~. 물론 입맛에 익숙한 뜨거운 국물맛으로 먹는 한국 휴게소 스타일의 가케우동이 더 땡겼지만...

신오쿠보역 인근 동네 우동집 ‘텐소야’에서

일본은 우동의 나라다. 우동 소비 부동의 일본 전체 1위 카가와현 타카마츠시에는 공항에 우동 국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고, 타카마츠 대학에는 우동학이라는 과목이 있을 정도다. 이 카가와 현의 사누키 우동과 아키타현의 이나니와 우동에 더하여 군마현의 미즈사와 우동, 이렇게 셋을 일본 3대 우동이라 일컫는다.


이날 도쿄 신오쿠보역 인근 길거리의 평범한 우동집에서 맛본 것은 간토 우동이다. 도쿄 중심의 관동과 오사카 중심의 관서 지방의 우동은 각자 특색이 있다. 통상 관서의 국물은 맑고 관동의 것은 진한 편이다. 또 관서 지방은 다시마를 맛의 축으로 하는 반면, 관동 지방은 가다랑어를 찐 다음 훈제하여 발효시켜 말린 가쓰오부시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특히, 관서 사람들은 관동의 우동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지적질 하기 일쑤다. ‘거무죽죽해서 보기 싫다.’ 혹은 ‘간장을 넣어서 국물 본연의 맛이 사라져버렸다.’는 식이다. 이에 대해서 관동 사람들은 관서의 우동을 보고, ‘허여멀건한게 싱거워서 맛이 제대로 나겠느냐?’며 응수한다. 여기에는 물산이 풍부했던 관서 지방 사람들이 국물 재료에 엄청난 공을 들인 데 따른 자부심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역사적 앙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주요 8개 지방

1600년 9월, 일본사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변방의 관동지방을 근거로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함으로써 향후 265년간 일본을 지배하게 되었다. 패자인 서군에게 남은 것은 죽음과 가문의 몰락이었다. 특히 이어진 오사카 전투가 끝나면서 서군의 중심축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족은 멸문지경이 되었고, 히데요시의 가신들은 가문이 문을 닫거나 처절하게 댓가를 치뤘다.


도쿄가 오늘날 관동지방의 중심이면서 일본의 수도이지만 긴 역사를 보면 관서지방의 교토와 상업도시 오사카가 관동지방보다 훨씬 오랜기간 일본열도의 문화적 경제적 중심이었다. 이것이 17세기에 이르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에 따라 정치의 중심지는 교토와 오사카에서 현재의 도쿄인 에도로 완전히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은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1000년 수도인 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 사람들의 역사적 정통성에 기인한 자부심 속에 과거 오랑캐의 땅이었던 에도 땅 사람들에 대한 뿌리깊은 멸시가 자리잡고 있고, 이것이 우동의 격을 따지는 데도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우동은 20세기에 등장한 라멘과는 달리 아주 옛날부터 먹어오던 전통적인 음식이다. 중국의 화북지방에서는 밀이 흔한 작물이어서 쉽게 우동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토양은 밀 재배가 쉽지 않아 소량으로 재배한 밀로 만든 우동은 아주 고급스런 음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는 메밀이 주 재료인 소바에 비해 월등 고급 음식이었다가, 2차 대전 이후가 되면서 미국의 원조 등으로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라멘, 교자 등과 함께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우동 한 그릇 하고 나니 숙취가 서서히 풀리는 듯..:

아무튼 동네 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 하니, 어젯밤의 숙취가 좀 개운해졌다. 우동 국물을 쳐다보며, 잠시 세키가하라 전투도 떠올려보고, 역사의 부침에 따라 휘둘리는 운명을 맞게 된 갖가지 군상들의 뒤안길도 잠시 떠올려 봤다. 이런 게 철부지 시절을 좀 벗어난 이후에 맞게 되는 여행의 맛이겠지...


(to be continued)


#도쿄구석구석 #간토우동 #세키가하라전투

#가케우동 #카가와현타카마츠 #일본3대우동

#다시마 #가쓰오부시 #오사카전투

#도쿠가와이에야스 #우동의격

#신오쿠보역

#도쿄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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