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2) 마카오(澳門, Macau)
마카오 하면 일반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도박, 유흥, 관광, 쇼핑이다. 2007년에 이미 라스베이거스 도박 매출을 추월한 이후로도 계속 폭발적으로 매출이 늘어나고 있으니 마카오는 가히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라 할 수 있겠다.
카지노에 돈이 몰리니 유흥과 쇼핑은 자연히 따라서 붐을 일으키는 것이고, 여기에 16세기 이래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온 남유럽풍 고건축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다가 독특한 퓨전 음식이 더해지니 관광도 활성화된 듯하다.
마카오의 현황을 좀 더 이해하려면 포르투갈과 얽힌 지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은 지중해 패권을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후, 이탈리아반도의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공화국에게 마저 밀려버리자 그 타개책으로 서쪽으로 대항해를 시작했다.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을 석권하고 동남아시아를 차례차례 정복해나갔지만, 당시 세계 최강대국 명나라에게 1521년 1522년 연달아 타마오 전투와 시사오완 전투에서 대패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거점이 필요했던 포르투갈은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막대한 양의 세금을 명나라 조정에 바치고 자국 상인들의 거주지로 마카오 반도 일대를 임차해서 사용한 것이 오늘날 마카오가 있게 된 유래다.
그래서 수 백년의 역사가 묻어있는 마카오 구시가지에는 이베리아반도의 유럽풍 체취를 느낄 수 있고, 아기자기한 먹자골목도 많아 가족이나 연인끼리의 짧은 여행지로서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포르투갈과 마카오의 음식문화가 버무려진 퓨전 음식도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아무튼 선전을 출발하여 새벽 2시에 마카오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여 숙소에서 단잠을 잔 후 늦은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마카오 시내를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나섰다. 황금색 빌딩을 비롯 돈이 묻어나는 듯한 무수한 빌딩 숲을 헤쳐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건 절반이 보석이고 시계였다. 사방에서 “Money talks.”라고 외치는 듯 했다.
라스베가스의 베네시안호텔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마카오의 베네시안 호텔은 실내에 설치된 대규모(?) 운하에 곤돌라가 떠다니고, 실제 하늘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인공 하늘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유럽풍의 격조 높은 호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각종 매장에는 국내보다 저가의 고급제품들이 많아 쇼핑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 같았다. 엄청난 관광객 인파의 물결 속에 별천지와 같은 호텔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배에서 기별이 왔다. ㅎㅎ~ 바로 푸드코트로 직진하여 간단한 요기꺼리를 주문하고 일행과 담소를 나누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재미 삼아 둘러보았다.
그러고 있는데, 저쪽 너머 일군의 젊은 여자분들이 우리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차림새가 직업여성(?) 느낌이 약간 비쳤다. 큰 부담 갖지 않고 돌아가는 사정을 알 겸 해서 미소로 응대했더니 우리 테이블로 왔고,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햄버그&스낵으로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는데, 5-6명이 다 출신국이 달랐다. 러시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태국 등이었던 것 같다. 마카오의 눈먼 돈을 찾아서 출장길에 나선 프로페셔널들이었다. 더 이상의 관심을 나타내지 않자 감사 인사를 남기며 쿨하게 떠나갔다.
마카오는 명실상부한 도박의 도시다. 중국 본토의 도박 매니아들이 비행기 타고 라스베이거스까지 갈 필요 없이 마카오에서 하는 것이 시간, 비용면에서 효율적이고, 화려함에서도 별로 밀리지 않으니까 마카오에 마구마구 몰려드는 것이다. 여기에다 라스베이거스의 도박 산업 자본들까지 대거 몰려들고 있어 카지노의 모회사가 대부분 미국기업들이라고 보면 될 정도다.
이러한 도박의 도시에 왔지만, 나는 도박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굳이 이유를 댄다면 두 가지 정도 떠오른다. 하나는 20대 때, 청춘을 담보 잡히고 행정고시에 승부를 걸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대부분 다 붙는 3차 면접에서 탈락했던 경험이 매사를 신중 모드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파란만장했던 30대 때, 과천경마장에서 경마예상지사업을 1년간 했을 때 도박하는 사람들의 말로를 너무나 가까이서 생생하게 접해봤던 경험 때문이다.
도박에서 유일하게 승리하는 길은 땄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것이 미치도록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은 잠시 딸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탈탈 다 털리게 되어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경마장에 007가방을 들고 와서 크게 베팅하던 일군의 깍두기 스타일의 사람들... 대략 얼굴표정에 그 날의 승패가 나타나는데, 오후 2-3시까지는 표정이 밝은 사람 수가 꽤 되지만, 파장 무렵이 되면 얼굴이 대부분 흙빛으로 변해버린다. 몇 천 만원 벌었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이고, 집 한 채 마련하겠다고 덤볐다가 다 털리고, 빚까지 지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도박은 딴 것은 오래 기억하고 잃은 것은 자꾸 잘 잊어버린다.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1년간 함께 일하던 경마 경력 30년이 넘는(어릴 때 아버지 등에 업혀서도 다녔다는 ㅎㅎ~) 동료가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베팅하지 말라고. 일년중 4-5번만 자기가 소스를 줄 때 소액만 재미로 하라고. 다행이 나는 그 말을 지켜서 베팅으로 인해 피해는 보지 않고 소액을 땄던 그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만큼 도박으로 돈을 장기적으로 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건설 시행으로 큰 돈을 버는 길도 큰 프로젝트 한 두 건 성공하면 바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오죽하면 말하겠는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만 그 기회가 평범한 사람에게는, 운이 닿으면 한 두 번 오는 것이지 자주 오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성바울 성당, 세나도 광장, 육포거리
세나도 광장, 성바울 성당 등 주요 랜드마크를 비롯하여 육포거리, 뒷골목의 맛집들, 구시가지 구석구석의 아기자기한 길들을 걷다가, 구시가지를 벗어나 신시가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초현대식 대형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건물들 뒤에는 미국 자본과 화교자본의 희미한 그림자가 여울져 있었다.
한번은 도로가 길을 걷다가 한국의 분식집처럼 생긴 식당으로 요기도 할겸, 더위도 식힐 겸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볶음밥으로 통일해서 시키고 시원한 물 좀 달라고 했다. 시원한 물은 없다는 답변이 금방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몹시 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거듭 요청했더니, ‘정그러시면 얼음을 좀 띄워 드리겠다’ 고 한다.
중국 남방이나 동남아 지역에서는 사실 좀처럼 여름에도 찬물을 들이키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도 찬 체질이라 여름에도 항상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있다. 우리 할머니처럼 어릴 때 자라 피를 많이 드셔서 몸이 뜨거워 여름에도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시고도 98세까지 장수하신 분도 계시지만 몸이 뜨거운 체질이 아닌 사람은 여름에도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다. 만국의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수 있도록 글로벌한 입맛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관광객이 붐비는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간혹 불심검문 당하는 경우도 보였다. 마카오가 워낙 카지노 관련해서 오버스테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꼭 여권과 체류증을 잘 챙겨 불필요한 일로 시간을 뺏기는 낭패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해외에 왔는데, 엉뚱한 일로 감정 에너지를 쏟지 말아야 하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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