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비치
브리즈번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주 브리즈번
골드코스트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주 골드코스트
시드니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
생츄리 코브의 백색의 향연을 뒤로 하고, 이제 황금빛 백사장과 굽이치는 파도,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자랑하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비치를 향했다. 야외 식당, 야시장, 하늘 높이 솟은 해변가 숙박시설 등 관광과 유흥의 중심지인 곳이기도 하다.
해변 주위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수영복을 꺼내입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도로가의 간이 샤워시설에는 호주 여학생들이 편안하게 노닥거리며 즐거운 표정으로 씻고 있었다. 호주에 온 게 실감났다.

스카이포인트 전망대에서
먼저 스카이포인트 전망대로 올라갔다. 골드코스트 최고층 빌딩인 Q1 호텔&리조트 건물 77층에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다. 맑은 날씨에 전망대에서 보이는 골드코스트 해변은 정말 일품이었다. 짙은 청록색빛 바다에 푸른 하늘, 그 위의 하얀 뭉게구름, 끝없이 펼쳐지다 약간 휘어진 해안선,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해변가로 내려가서
해변가로 내려갔다. 멀리서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의 의미에 걸맞게 많은 젊은이들이 서핑하고 있었다. 갑자기 수영하고 싶어져 바닷물에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시골 동네에서 어릴 때 배운 수영실력을 믿고 너무 깊은 데까지 들어갔다가 죽을 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동해안처럼 조금만 들어갔다고 생각했을 때, 벌써 수심이 사람 키보다 훨씬 깊었다. 파도 또한 서퍼들에겐 파라다이스였지만 일반 수영하는 사람들에겐 지옥(?)이었다 ㅋ~. 동네수영 실력으로 마구 덤볐다가 황천길로 갈뻔했다 ㅎㅎ~

바닷가 안쪽의 도시풍경
이젠 떠나야 할 시간.... 강이 굽이치는 바닷가 안쪽의 도시풍경과 고층건물이 군데 군데 즐비한 해변의 모습이 묘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골드코스트를 뒤로 하고 시드니를 향했다.
저녁 무렵 시드니에 도착하니, 한국음식이 무척 땡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삼겹살과 소주를 파는 식당이 눈에 대문짝만하게 들어왔다. 오랜만에 일행들과 회포를 풀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분명 한국보다 맛이 떨어질텐데, 시공간의 차이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너무나 맛있었다. ^^ 덕분에 회포의 만찬에 과부하 걸린 속을 달래느라 휘황찬란한 시드니의 밤을 이리저리 산책했다.



‘시드니의 거대한 존재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다음날 시드니에 왔으니 파리의 에펠탑처럼 반드시 발 도장 찍어야 하는 곳, ‘시드니의 거대한 존재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방문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현대 건축물로서의 외관상 아름다움은 당연 압권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부의 구성요소들을 찬찬히 훑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건축 디자인, 인간의 상상력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설계로 시드니 해얀경관의 아름다움의 격을 드높인 ‘오페라하우스’. 이로 인해 시드니는 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스카이라인을 가진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 같다.
시드니 여행에서는 한국인 가이드 한 분이 함께 했다 .중년의 미남이셨는데, 한국에서 직장생활과 사업을 잘 운영하시다가 1997년말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무너지게 되었고, 이 여파로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신 분이었다. 사람의 운명이 시대의 파도 앞에 한 순간에 떠밀려버릴 수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삶이란 지금 잘 된다고 내일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고, 지금 어렵다고 내일도 당연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항상 깨어있으면서 현재에 충일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시드니 주재 현대자동차 부장 자택에서
그날 저녁 땐 시드니 주재 현대자동차 부장 자택에서 저녁식사와 와인을 곁들인 만남을 가졌다. 대기업 직원의 해외근무, 특히 선진국에서의 파견근무는 엄청난 기회이고 혜택으로 보였다. 선진국에 걸맞는 복지혜택, 자식들의 교육혜택 등은 치열한 기업문화 속에 촌각을 다투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에서는 누리기 힘든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파견될 자격을 갖추기 위한 본인의 숨은 노력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블루마운틴 케이블카에서
다음날 아침엔 일어나기 바쁘게 시드니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 ‘블루마운틴’을 향했다. 그때까지 날씨가 청명하기 그지없었는데, 하늘이 이 날은 우리 일행을 버린 것 같았다 ㅎㅎ~. 산 정상을 오를 때 안개가 자욱해서 케이블카 밖 풍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음에 보면 되겠지 했는데, 아직 두 번째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ㅠ~
이날 시드니 시내에서 출발하는 여행사의 단체투어 버스에 합류해서 움직였는데, 가는 길에 누구나 가게 되는 페더데일 시드니 야생동물공원(Featherdale Sydney Wildlife Park)에 들렀다. 단체투어의 동지들은 신혼부부, 고딩동창, 일가족, 혼자오신 분 등 정말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귀여운 캥거루, 코알라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잔뜩 봤다. 이 와중에 가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블루마운틴의 일정에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청명한 ‘블루마운틴’이 ‘안개 속의’ 블루마운틴이 되어버렸다. 에코 포인트에서 세자매봉과 함께 사진찍는 것은 의미를 잃어버렸고, 그냥 기분 좋게 안개 낀 저편을 바라보며 일행과 함께 함을 즐거워했다.


워터프론트 그릴(waterfront gril)에서
돌아온 저녁 때, 워터프론트 그릴(waterfront gril)을 찾아갔다. 호주산 스테이크나 캥그루 고기를 맛보기 위해서. 정장차림의 가족들이 격식있게 식사하는 모습이 은은한 조명이 곁들여져 무척 멋있는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블루마운틴 다녀오느라 노동강도도 좀 있고 해서 캥거루 시식은 조금만 하고 호주산 스테이크에 집중했다. 조금 경계하면서 먹긴 했지만 캥그루 고기도 먹을만 했다 ㅎㅎ~. 식사하기 전에 피곤하고 굳어진 몸과 눈이 식사 후에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오페라하우스와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형 다리, 하버브리지의 야경은 이 도시의 매력을 가슴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 같았다. 저녁시간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호주요트협회 사무국장님의 회사 접견실에서
다음날은 호주요트협회 사무국장님의 회사를 방문해서 한국의 요트사업 등 해양관련 이슈를 서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무실에 방문해 보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하고 있는 한국청년 두 명이 있었다. 사무국장 통해 얘기를 들어보니 무척 일도 속도감 있게 잘하고, 붙임성도 좋다고 했다. 젊은 시절 해외 알바로 돈도 벌어가면서 어학 실력도 연마하고 타국에서의 경험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많아보였다. 호주는 단순노동 관련 임금수준이 꽤 높아서 식당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도 한달 월급이 당시에 5~6백 이상은 기본이었다.


맨리 비치(Manly Beach) 쪽에서 요트사업을 하시는
사장님 회사를 둘러보며
이어서 사무국장으로부터 맨리 비치(Manly Beach) 쪽에서 요트사업을 하시는 사장님 한 분을 소개받아 그 분 사업장을 방문했다. 그 분 사무실에서 기본적인 설명과 다과를 나눈 후 각종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정박장을 둘러봤다. 거센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몰아쳤고, 여름 햇볕은 뜨거웠다. 호주에는 요트사업자들이 포도농장을 크게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자체 브랜드를 가진 포도주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날 저녁 헤어지면서 저녁 자리에서 본인 농장 브랜드의 포도주를 선물로 주셨다.
5박 6일 여행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기간 동안 호주의 광활하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요트업계와 관련된 현안, 현지의 한국기업 및 주민들의 삶을 짧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시공간의 틀이 갑자기 확 바뀌어져야 평소의 생각의 틀을 바꿀 기회를 갖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여행이 갖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그 기회를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열정적 끈기가 동반될 때에 한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면서도 정작 요트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과거 중국이나 한국은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했기에, 굳이 관리가 어려운 섬이나 바다까지 신경 쓸 필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에서 이뤄지던 지중해무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대항해시대를 연 것도 그들이 유난히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먹고살고자 하는 필요성이 더 컸다고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다가,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식의 근대사의 흐름이 이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유럽은 신대륙에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형성해서, 그 곳으로부터 새로운 품종의 식물을 받아들여 반복되던 식량위기를 극복했고 자국과 식민지에 세계의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주도권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해양산업은 발달했고, 그 일환으로 요트산업의 선진국이 된 것이다.
최근 세계 각국이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적 블록을 형성하는 한편, 다른 국가의 시장을 열기 위해 여전히 포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지상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오염이 심해지면 바다에서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질 것이다. 여전히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제는 유효하다. 요트산업은 해양산업의 일환으로서의 의미도 가지면서 취미로서의 요트가 사람들에게 원초의 바다 앞에서 도전하는 진취적인 정신과 망망한 대해 앞에서 항로를 주도적으로 결정해나가는 리더십을 길러준다는 측면에서 의미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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