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개념 의료기기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국내에서 차세대 의료기기 기술을 잇따라 개발해 상용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2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국내 연구진이 접착력 높지만 쉽게 떨어지는 의료용 패치, 정형외과 임플란트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항균 겔 코팅, 접착·초친수성 동시 구현 다기능 바이오소재 등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기계공학과 김진태·김석 교수팀은 최근 미국 텍사스텍대 손창희 교수, 노스웨스턴대 존 로저스 교수팀과 함께 '형상 기억 고분자(SMP)' 소재를 통해 잘 붙고 잘 떨어지는 의료용 접착 패치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활용한 소재는 원래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가 특정 온도가 되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성질을 지녔다.
연구팀은 접착 패치 표면에 아주 작은 피라미드 모양 돌기를 촘촘히 새겼다. 평소에는 이 피라미드가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피부와 넓게 맞닿아 단단히 붙어 있다가 떼어 내야 할 때 열을 가하면 납작했던 피라미드가 원래의 뾰족한 모습으로 되살아나 피부와 닿는 면적이 확 줄어든다.
마치 손바닥 전체로 벽을 밀다가 손가락 끝만 대는 것처럼, 접촉면이 작아지니 훨씬 적은 힘으로 떼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실험 결과 열을 가한 후 접착 에너지가 최대 99%까지 줄었고 사용 중에 안정적으로 잘 붙어 있었다. 3차원 영상 분석을 통해 접착 패치를 뗄 때 피부에 일어나는 변형을 들여다본 결과 형상이 되살아난 상태에 피부에 가해지는 힘과 변형이 크게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에 종이접기(키리가미) 구조를 도입해 팔꿈치나 관절처럼 굴곡진 부위에도 잘 붙도록 했고 땀이 잘 배출되도록 통기성도 높이고 무선 센서와 결합해 실제 신호를 안정적으로 측정하면서 열을 가하면 손쉽게 떼어낼 수 있음을 검증했다.
이 기술은 병원 현장에서 특히 빛을 발할 전망이다. 매일 센서를 붙였다가 떼야 하는 신생아 중환자실이나 어르신 병동에 피부 손상 걱정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형외과 장우영·최지혜 교수팀은 최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나노표지자의학연구소 황장선 연구교수와 함께 기존 정형외과 임플란트에 수술 중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PHMB 항균 하이드로겔을 개발하고 세균 감염 억제와 골절 치유 보호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하이드로겔은 항균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 바이구아나이드(PHMB)에 온도에 반응하는 고분자를 결합한 것이다. 임플란트에 바르거나 담구어 코팅할 수 있으며, 체온에서 점도가 높아져 금속 표면에 안정적으로 밀착한다. 별도의 항균 임플란트를 새로 제작하지 않고 기존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팀은 황색포도상구균과 녹농균을 이용해 항균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PHMB 겔을 처리한 티타늄 표면에서는 세균 증식과 부착이 크게 줄었으며, 바이오필름 형성도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PHMB의 항균 작용과 함께 젤이 임플란트 표면을 덮어 세균 부착을 막는 물리적 장벽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토끼 대퇴골 골절 모델을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도 효과가 나타났다. PHMB 겔을 적용하지 않은 감염군에서는 염증과 골절 치유 지연이 나타난 반면, 겔을 적용한 군에서는 감염이 억제되고 골절 부위 회복이 개선됐다. 조직검사에서도 염증 반응 감소와 골조직 성숙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향후 추가적인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통해 실제 정형외과 수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감염 예방 기술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이해신 교수팀은 최근 갑각류 껍데기에서 얻는 천연 고분자 물질인 키토산(chitosan, CHI)과 식물 등 생물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매스 기반 원료인 1,2,4-벤젠트리올(1,2,4-benzenetriol, BTO)을 이용해 접착과 초친수성 표면처리 기능을 동시에 갖는 폴리페놀 바이오접착 소재 'CHI-B'를 개발했다.
CHI-B의 특징은 하나의 소재로 강한 접착성과 물이 잘 퍼지는 표면 특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처에서는 빠르게 달라붙어 출혈 부위를 막고 유리나 플라스틱 등에 코팅하면 물이 닿는 즉시 넓게 퍼지는 '초친수성(superhydrophilic)' 표면을 만든다.
연구팀은 CHI-B를 유리뿐 아니라 테플론으로 잘 알려진 불소계 고분자 소재인 PTFE, 음료병 등에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인 PET, 포장재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인 PS, 광촉매와 기능성 코팅 등에 활용되는 이산화티타늄(TiO₂) 등 성질이 서로 다른 다양한 소재에 균일하게 코팅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극미량인 10 ppm(100만 분의 10 수준)의 요소(urea)를 함께 사용하면 CHI-B 코팅 표면을 초친수성으로 만들 수 있었다. 요소는 우리 몸에서도 만들어지는 질소화합물로, 이번 연구에서는 매우 적은 양만으로 코팅 표면에서 물이 빠르게 퍼지는 특성을 구현하는 데 사용됐다.
코팅의 안정성도 확인했다. CHI-B로 처리한 표면은 한 달 이상 세척한 뒤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됐으며, 1년이 지난 코팅에서도 물이 잘 퍼지는 우수한 젖음 특성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소재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기능성 코팅이나 바이오센서·의료기기 등의 표면처리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CHI-B의 강한 접착력을 이용해 의료용 지혈 소재로서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세포 독성 평가에서 CHI-B는 높은 생체적합성, 즉 생체 조직이나 세포와 접촉했을 때 유해한 영향을 적게 나타내는 특성을 보였다. 생쥐의 간 출혈 부위에 CHI-B 스펀지를 적용한 결과 출혈량이 대조군보다 크게 감소했다. CHI-B가 출혈 부위에 빠르게 달라붙어 상처를 물리적으로 막으면서 지혈을 도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강점은 제조 과정을 크게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기존 키토산 기반 바이오접착제를 만들 때는 키토산과 다른 물질을 화학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EDC/NHS와 같은 별도의 화학 결합제가 주로 사용됐다. 이 방식은 고가의 시약뿐 아니라 반응 후 남은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 단계의 정제와 긴 투석 과정이 필요해 생산 규모를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BTO가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자연스럽게 산화되는 성질에 주목했다. 산화된 BTO는 다른 물질과 쉽게 결합할 수 있는 ‘파라-퀴논(para-quinone)’이라는 반응성이 높은 구조로 바뀌고, 키토산에 있는 ‘아민기(amine group, –NH₂)’와 빠르게 반응한다. 아민기는 질소와 수소를 포함한 화학 구조로, 이번 반응에서는 두 물질이 결합하는 연결 부위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공기 중 산소가 BTO를 키토산과 쉽게 결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꿔줘, 기존 화학 결합제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한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별도의 화학 결합제나 가열 과정 없이 상온에서 30분 이내에 CHI-B를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실험실 환경에서 수십 리터 규모까지 생산 규모를 확대해 대량생산 가능성도 확인했다.
CHI-B는 물에 잘 녹는 특성도 보였다. 일반적인 키토산은 물에 잘 녹지 않아 활용에 제약이 있지만, 물을 얼린 뒤 수분을 제거하는 동결건조 방식으로 만든 CHI-B 스펀지는 물에 닿은 뒤 약 15초 만에 완전히 녹았다. 산성 환경뿐 아니라 우리 몸과 비슷한 중성 환경에서도 높은 용해도를 유지했다.
연구팀은 천연·바이오매스 기반 소재 하나로 접착과 초친수성 표면처리라는 서로 다른 기능을 구현하면서 실제 산업 적용을 고려한 간단한 제조법과 생산 확장 가능성까지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향후 출혈 부위에 사용하는 지혈 소재를 비롯해 바이오센서·의료기기, 물의 젖음 특성을 조절해야 하는 다양한 기능성 표면처리 소재 등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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