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외동포 신문 발행인 박철의 대표
9월부터 10월까지 전 세계 재외동포와 동포사회 지도자들이 대거 인천을 찾는다. 9월 1일부터 4일까지 인천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 열리는 제22기 미주지역회의에 민주평통 미주지역 자문위원 750여 명이 참석한다.
이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세계한인총연합회 및 한인회장대회와 세계한상대회 등이 잇따라 열린다.
이 시점에서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던진 외교의 화두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06년 10월 11일 전남대학교 강당.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현실과 4대국’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대화와 설득을 통한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강연회에서 "외교는 외교관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한)전 국민이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외교력이 정부와 외교부, 대사관의 힘만으로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인과 언론인, 유학생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해외에 뿌리내린 재외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이들이 현지 사회에서 어떤 신뢰를 쌓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이 달라진다.
특히 재외동포는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소중한 자산이다.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회를 연결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가교다.
하지만 우리의 공공외교가 지나치게 행사 중심으로 흘러온 것은 되돌아봐야 한다. 한식행사를 열고 K팝 공연과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외교는 보여주는 행사를 넘어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오랜 시간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동포사회의 뼈아픈 자기반성도 필요하다.
세계 곳곳의 일부 동포사회에서는 한인회와 단체를 둘러싼 자리다툼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단체가 쪼개지고 서로를 비방하면서 현지사회에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의 민간외교관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운다면 공공외교는커녕 국가 이미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공공외교를 명분으로 정부 예산부터 바라보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일회성 행사를 개최하고 사진을 찍은 뒤 끝나는 사업이라면 지속가능한 공공외교라고 하기 어렵다. 정부 지원은 마중물이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외교는 결국 대화와 설득, 신뢰였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외교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며 공통의 이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동포사회 내부에서도 먼저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미국의 한인 기업인이 지역사회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중국의 한인회가 현지 주민과 환경정화 활동을 벌이며, 베트남의 한국 기업이 청년 취업교육을 지원하는 것 모두가 공공외교다. 현지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한인사회가 된다면 그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외교다.
이제 ‘행사하는 공공외교’에서 ‘실천하는 공공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한인사회와 기업, 언론, 유학생, 차세대 인재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된다. 각국 한인회와 한상기업이 1년에 단 하나라도 지역사회를 위한 장학·의료·교육·환경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한다면 그 힘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차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태어나 성장한 한인 2세·3세들이 대학과 언론, 기업, 정치권, 시민사회에 진출하면 대한민국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야 할 외교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세계는 이미 국가 대 국가의 외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도시와 도시가 교류하고 기업과 기업이 연결되며 시민과 시민이 국가 이미지를 만든다. SNS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한 청년의 영상 하나가 정부 홍보물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는 세계 곳곳에 살아가는 700만 재외동포가 있다. 이들을 단순히 ‘해외에 사는 동포’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글로벌 공공외교 네트워크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포사회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현지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이름보다 개인과 단체의 이해관계를 앞세우지는 않았는가. 공공외교라는 이름으로 정부 지원에만 기대지는 않았는가.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동포사회를 물려주고 있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년 전 강조했던 대화와 설득, 신뢰는 지금 더욱 중요한 외교 자산이 됐다. 정부의 외교에 국민의 외교가 더해지고, 세계 한인사회의 생활 속 실천이 이어질 때 대한민국의 외교 영토는 훨씬 넓어진다.
700만 재외동포가 살아가는 곳이 대한민국 외교의 최전선이다.
전 국민이 외교관이 되고 세계의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의 민간대사가 되는 것. 그러나 그 출발점은 거창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동포사회 스스로의 성찰과 신뢰 회복이어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외교철학을 오늘의 공공외교로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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