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럭셔리 명품을 구현하는 '르모던블락' 이진화 디자이너
가방을 열면 ‘복(福)’이 보인다.
과시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가방을 사용하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안감 깊숙한 곳에 ‘福’을 담았다. 매일의 삶에 좋은 기운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방 브랜드 ‘르모던블락(LE MODERN BLOC)’을 전개하는 이진화 디자이너가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2026 S/S 두 번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테마는 ‘길상: LUCK 福(복을 담다)’이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 옷감과 생활용품의 무늬에 건강과 장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아름다운 무늬에 깃든 상서로운 기운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었다.
이진화는 그 따뜻한 마음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객의 매일이 근사한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福’자를 직접 디자인하고 이를 현대적인 패턴으로 재구성해 가방 안감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이번 시즌 대표작 ‘럭키 소프트 백(Lucky Soft Bag)’이다.
복주머니의 곡선을 현대적 가방으로
럭키 소프트 백의 외관은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이 특징이다.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은 우리 전통의 복주머니를 연상시키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한국적 기억을 간결하고 세련된 현대적 선으로 풀어냈다.
이 곡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최상급 이탈리아 가죽을 엄선했다. 자연스러운 질감과 부드러운 촉감, 높은 내구성을 갖춘 가죽을 사용해 형태와 볼륨을 살렸다.
‘福’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안감 역시 환경 윤리를 고려했다. 생활방수 기능을 갖춘 리사이클 원단을 사용했으며 실과 지퍼, 금속장식 등 부자재도 디자인에 따라 이탈리아·독일·프랑스·일본 및 국내의 고품질 제품을 선별한다.
제품을 담는 패키지까지 별도로 제작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서나 볼 법한 가방 전용 상자를 만들어 고객이 제품을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완성했다.
이진화는 말한다. “르모던블락의 모든 제품은 엄선된 자재와 사려 깊은 장인정신으로 완성됩니다”라고.
청담 매장 內 공방…가죽을 다루는 디자이너
르모던블락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는 이진화의 공방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가죽을 재단하며 샘플까지 제작한다. 종이에 그린 선이 실제 가죽에서 어떤 형태로 살아나는지 확인하고, 원하는 곡선과 균형이 나올 때까지 수차례 수정한다. 대량생산과 빠른 회전이 일반화된 패션시장에서 르모던블락은 다른 길을 택한다.
많이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만드는 것. 샘플제작 후 장안에 소문난 최고의 장인을 통해 한정생산한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소재와 봉제, 형태와 마감의 완성도를 최우선에 둔다. 이런 태도가 청담의 명품 마니아들을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를 오랫동안 경험한 고객들이 로고보다 가죽의 질과 비례, 봉제와 완성도를 알아보고 ‘르모던블락’의 애호가가 되고 있다.
'르모던블락'의 두번째 컬렉션. 이진화 디자이너는 가방뿐만 아니라 의상도 직접 제작한다.
서양화에서 파슨스, 다시 프랑스 가죽학교로
오늘의 르모던블락은 오랜 준비 끝에 만들어졌다.
이진화는 성신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뉴욕 파슨스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뉴욕 패션브랜드에서 인턴십을 거쳐 글로벌 패션 현장을 경험했고, 귀국 후에는 오트쿠튀르 디자이너인 부친 이림의 곁에서 옷을 만드는 기본을 익혔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숄레의 패션전문교육기관 리세 드 라 모드(Lycee de la Mode)에서 핸드백과 가죽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로키네리 과정을 수료했다. 가죽의 특성부터 재단과 봉제, 제작 전 과정을 직접 배우며 장인기술을 체득했다.
한국섬유신문은 이미 2015년 프랑스에서 가죽을 배우던 이진화를 소개했고, 이듬해에는 그를 ‘신진의 대발견’으로 조명한 바 있다. 이처럼 화려한 데뷔보다 기본기를 쌓는 데 긴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한국 정서에 서양의 모던함 입혀
이진화의 디자인에는 한국의 전통미가 흐른다.
민화와 단청, 한국적인 선과 색,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서를 바라보되 이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서양화에서 익힌 미적 감각과 뉴욕에서 배운 모던함, 프랑스에서 체득한 장인기술을 더해 새로운 언어로 재해석한다.
이번 ‘길상: LUCK 福’ 역시 같은 맥락이다.
‘福’을 가방 겉면에 크게 드러내는 대신 안감에 조용히 담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알고 보면 더 깊은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이다.
이는 최근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주목하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와도 맞닿는다. 큰 로고와 과시적 장식 대신 좋은 소재와 절제된 디자인, 장인정신과 희소성으로 가치를 말한다.
‘르모던블락’은 얄팍한 마케팅이나 단기적인 유행을 좇기보다 청담의 작은 공방에서 제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하우스들도 처음에는 한 사람의 장인과 작은 공방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전통미와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서양에서 탐구한 세련된 미적 감각과 오랜 장인 수련. 그 모든 시간이 이제 ‘르모던블락’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다.
2026년, 이진화는 가방 안에 조용히 ‘福’을 담았다.
잘 팔리는 가방보다 오래 사랑받는 가방, 지금의 유명세보다 백년 뒤에도 남을 브랜드.
르모던블락이 지향하는 K-럭셔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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