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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4 "이제 조선동포는 한국을 쇼핑하기 시작했다" - - '이주,경계의 꿈' 저자 권준희 교수의 강연을 듣고 - - 월드옥타 상해지회 주최 강연서 조선동포 이주자의 삶과 변화하는 정체성 설파 - - 조선동포의 역사를 시대마다 불어온 ‘바람’으로 구분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8-17 1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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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옥타 상해지회 초청으로 강연하는 권준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류제영 재외기자]


지난해 11월, 기자가 찾았던 옌볜(延邊)은 조선동포 공동체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때마침 내린 눈으로 인해 백두산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도백하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국어가 유창한 젊은 한족 청년의 한국생활, 한국으로 떠난 사람들이 남긴 빈집들로 마을을 이루는 룽징(龍井)시 사이에서 한 시대의 이동이 남긴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옌지(延吉)의 모습은 달랐다. 잘 정비된 도로와 고층빌딩들 사이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작은 도시에서 모여 든 학생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젊은 세대, 24시간 불야성을 이루는 상업 공간이 공존하며 또 다른 옌볜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옌볜은 사라지고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이동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공간이었다.[편집자주]


조선동포 사회의 변화와 그 안에 담긴 삶의 의미를 조명한 문화특강이 지난 8월 3일 상하이에서 열렸다.

월드옥타 상해지회(지회장 이춘화)가 개최한 제3차 문화특강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새크라멘토 아시안학과 권준희 문화인류학 박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이주, 경계, 꿈'을 바탕으로 조선동포 이주자의 삶과 변화하는 정체성에 대해 강연했다.

‘조선동포 이주자의 떠남과 머묾, 교차하는 열망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권 교수가 옌볜을 오가며 기록한 현장 연구의 결과물이다.

권 교수는 강연에서 조선동포의 이동을 단순히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떠난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안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끊임없는 선택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권준희 교수 강연들은 월드옥타 상해지회 회원들.[류제영 재외기자]
 
조선동포의 역사는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권 교수는 조선동포의 역사를 시대마다 불어온 ‘바람’으로 구분했다.

1980년대 북조선 바람, 한.중 수교 이전의 소련 바람, 수교이후의 한국 바람, 그리고 차이나 바람.

궁극의 목적은 결국 ‘돈’과 직결되는 것이었으며 그에 따른 각 시대의 바람은 조선동포에게 새로운 선택과 새로운 생존 방식을 요구했다.

그중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본격화된 한국 바람은 가장 강력한 변화였다. 많은 조선동포에게 한국은 꿈의 공간이었다. 한국으로 떠난 이들은 자신의 몸과 시간을 노동으로 바꾸며 가족을 부양했고, 고향으로 보낸 송금은 옌볜 사회 변화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하지만 한국 바람이 남긴 것은 경제적 성취만이 아니었다. ‘보토리’로 불리는 부부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생존하는 문제, 성장기 자녀의 교육 문제, 귀국 이후 변화한 고향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도 함께 남았다.

권 교수는 '몸', '돈', '시간'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조선동포들의 이동과 비이동에 따른 삶을 분석했다.

한국은 ‘가야 하는 곳’에서 ‘선택하는 곳’으로

권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족과 한국의 관계 역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한국은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조선동포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한국은 더 이상 유일한 성공의 공간이 아니었다.

책 말미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조선동포가 한국을 ‘쇼핑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의 상품과 문화, 교육, 의료, 생활 방식 등 다양한 자원을 자신의 삶 속에서 선택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의 목적지가 아니라, 경험과 가치의 기준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차이나 바람, 새로운 기회의 시대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조선족 사회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으로 향하던 이동은 중국 내부 대도시로 확대됐다. 상하이, 베이징, 선전 등 중국 경제 중심지에서 사업과 새로운 기반을 만든 조선동포들이 등장했다.

강연 현장에서도 상하이에 약 3만 명의 조선동포가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중국 대도시에 정착해 경제적 기반을 만든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보더랜드 드림’,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권 교수는 책에서 ‘보더랜드 드림'(Borderland Dream)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이는 한 국가와 하나의 공간에만 삶의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국경 사이에서 서로 다른 기회를 활용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또 조선동포 공동체를 이어 온 가장 중요한 자산인 언어에 대한 애정을 보였는데, 2세대, 3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문화적 자산을 유지해 와 세계 어느 공동체에서도 유례가 없는 매우 특별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시화와 세대 변화, 새로운 교육 환경 속에서 조선어를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는 조선동포 사회가 마주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권준희 교수의 강연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조선동포 사회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에 가까웠다.

강연장에서 소개된  '이주, 경계, 꿈'은 단순히 과거의 이주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었다. 한국 바람과 차이나 바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조선동포 공동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었다.

지난해 직접 둘러본 연변의 풍경은 강연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빈 집이 늘어난 용정과 인근 소도시들, 활기를 더 해가는 연길은 쇠퇴와 성장이라는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조선동포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책장을 덮고 강연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한 가지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수많은 바람을 지나온 조선동포 공동체는 앞으로 어떤 바람을 맞이하게 될까.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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