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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4 메콩강에서 흘린 오세영의 땀과 눈물의 서사 (3) - - 중고차 5대로 출발 연매출 2조4천억원 달성한 라오스 - - 국민 기업...“창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힘”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8-15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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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


오세영 회장은 베트남에서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겪은 뒤 라오스를 향했다. 특별한 목적도, 계획도 없이 발길이 닿은데로 떠난 것.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라오스 비엔티엔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소박하고 조용하다고 느꼈다.

맥주 한 켄을 들고 메콩강변으로 나갔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너머로 석양이 천천히 스며드는 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다. 지난해 오 회장이 출간한 『하이웨이에는 길이 없다』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태양이 메콩강 속으로 녹아들며 황금빛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라오스의 메콩강은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포근했다.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조용히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참 동안 울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정리되는 듯 했다. 그렇다. 메콩강은 실패를 꾸짖지 않고 오세영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심어주는 어머니의 강이었던 셈이다. 그의 눈에는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였다. 대부분 일본차였다. 베트남에서 중고차왕이라고 불리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기아 스포티지 중고차 5대를 들여왔다.

비엔티엔서 태국을 향해 촬영한 메콩강.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라오스는 항구가 없기 때문에 태국에서 트럭으로 차량을 운송해야 했고, 혹시라도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나거나 차량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우 컸다. 그는 직접 맨 앞 트럭 조수석에 올라 15시간 동안 뒤따르는 차량을 지켜보며 국경을 넘었다.

라오스에 도착한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차량을 보관할 장소조차 없었다. 그는 세관 마당에 차를 세워두고 직원들에게 "구매자를 소개해주면 사례하겠다"고 능청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일본 SUV는 태국에서 왼쪽 핸들로 개조해 들어와 가격이 비싸고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반면 스포티지는 가격이 도요타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결국 첫 차량을 1만5000 달러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고, 그 돈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중한 종잣돈이 됐다.

이 작은 성공은 유통과 금융, 물류, 병원, 재래시장 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연매출 2조4000억 원 규모의 코라오그룹으로 성장했다. 라오스에서 독보적인 민간기업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오래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광고 카피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을 인용,  "현재 중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자동차 부품과 금융 등 다양한 업종에다 분산 투자를 했다"며 "라오스를 제외하고 그룹 전체 매출의 4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대한자동차‘는 베트남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다는 그의 설명이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행복한 남자, 오세영

기자는 라오스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코라오의 브랜드 가치를 묻자 그는 "정확히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라오스에서는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 중 하나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현재도 그는 하루 서너 시간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경영에 쏟고 있다. 골프는 물론, 거의 외부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 초 중국에서 찾아온 20~30대 청년 30여 명과의 만남만큼은 예외였다. 그 자리에서 한 청년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의 비즈니스는 지금까지 창의적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오 회장은 당시 "중고차를 팔면서 할부금융이 필요해 은행을 세웠고, 재래시장을 운영하다 보니 슈퍼마켓과 창고형 마켓에 이어 메가몰을 만들었고, 또 건설업으로 확장했다"며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하는 꼰대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회고했다.

이날 이후 며칠간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거울 만치 개운치 않았다고 한다.  그의 비즈니스 경력은 자그만치 40여년, 그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기면서 코라오 국민기업을 만들었다고 자부해 왔는데  "왜 그때 이런 말을 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코라오그룹의 라오스 사반나켓 공장 전경.


오 회장은 "'지금 라오스에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참아야 하고, 절제할 정도로 행복한 사람이다"며 "더군다나 레드오션이 다름없는 이 나라에서 라오스 국민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2009년 한국무역협회 '기업가정신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코라오 10계명의 첫 번째 원칙에서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을 찾아내 그것과 다르게 하라"였는데 미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웃었다. 중고차 5대에서 시작된 오세영의 기적은 ‘모든 것을 다르게 보는 힘'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코라오의 직원들의 희생과 헌신 또한 잊혀져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 코로나 당시 일화 한토막이다.

“저는 평생 비즈니스를 하면서 구조조정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 직원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코로나 당시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위원회를 만들었고 45%가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들의 눈물을 가슴에 새겨야죠.”

메콩강에 떨군 눈물 한 방울로 시작된 그의 기적과 성공은 단순히 숫자로 평가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성공은 고난을 딛고 직원 한사람 한사람의 땀방울들이 모여져 모두가 잘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코라오의 역사는 중국에서 발원한 메콩강을 따라 이미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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