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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4 눈물 젖은 빵으로 라오스 국민의 새벽을 깨우기까지 .(2).. - - 자동차 왕에서 국민의 삶을 지키는 '시장 문지기'로 - - 재래시장은 라오스 국민의 애환이 담긴 희망의 '곳간'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8-15 15:18:50
  • 수정 2026-08-15 15: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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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회장이 코라오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AI 이미지.


"돈을 버는 것보다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을 여는 것이 기업인의 역할입니다."

라오스는 내륙국가다. 농산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품과 생활용품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물가 부담이 크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도 쉽지 않다.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검토할 때마다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사업이 과연 국민들의 삶의 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

그의 경영 철학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더욱 분명해졌다. 도시의 기능은 멈췄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아야 했다.모든 먹거리가 유통되는 재래시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원래 재래시장 조성은 정부가 맡아야 할 영역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직접 시장 건립에 나섰다.

오 회장은 "수익만 생각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사업"이라고 말한다. 자동차 한 대를 팔아 얻는 이익이 슈퍼마켓 직원 250명이 하루 종일 일해 버는 수익과 비슷하지만, 시장은 돈보다 국민의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자였다는 것이다.

현재 이 재래시장에는 전국 각지의 농산물이 모여들어 도·소매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단순한 거래 공간을 넘어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마다 수많은 상인과 소비자들이 이곳을 찾으며 시장은 라오스 서민경제의 활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재래시장은 코라오의 사회적 책임

여기에 코라오는 50년 전통의 J마트 16개 매장을 인수, '문을 두드린다'의 의미의 '콕콕(Knock)마트'로 상호를 변경한 뒤 재래시장과의 시너지를 끌어올렸다. 현재 라오스의 인구 780만명에 9500여개의 동(洞)이 있다. 이가운데 코라오는 부자동네를 중심으로 1500여개 동에 하나씩 마트를 두겠다는 목표다.  즉 재래시장-마트-창고형마트-메가몰로 이어지는, 현대식 유통과 전통시장이 공존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는 선진 의료 시스템을 갖춘 병원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전국민이 불안에 떨던 모습을 지켜보며 의료 서비스 역시 기업이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가치라고 판단했다.

그는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딸랏라오 재래시장.


오세영 회장의 삶은 성공보다 실패가 먼저였다. 강원도 출신인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코오롱그룹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지만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베트남으로 건너가 봉제공장을 설립하며 창업에 나섰다. 그러나 동업자의 배신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

당시 그의 손에 쥔 돈은 달랑 1만달러. 한국인 직원들의 귀국 항공료와 한 달치 급여를 지급하니 수중에는 300달러가 전부였다. 하루 세끼는 그에게 사치였다. 오후 2시~4시 베트남 쌀국수 한그릇으로 버티면서  중고 오토바이와 중고 자동차에 이어 건설장비 판매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수년만에 연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며 '중고차 왕'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각종 견제와 협박을 받는 일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침을 먹고 필리핀에서 저녁을 먹은 뒤 다음 날 또 다른 나라에서 아침을 맞을 정도로 세계를 누비며 시장을 연구했다.

페루와 인도, 카자흐스탄 등을 돌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고, 이를 토대로 필리핀 수빅만을 세계 최대 중고차 허브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도 품었다. 그러나 운명은 다시 그를 시험했다.

1996년 베트남 법인으로부터 "베트남이 ASEAN에 가입하면 중고품 수입이 전면 금지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는 일시적인 조치일 것으로 판단했다. 오히려 은행 대출을 늘리며 사업을 더욱 확대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인 관리 직원이 콕콕마트를 설명하고 있는 장면


베트남 정부는 ASEAN 가입 이후 중고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그 정책은 장기간 유지됐다. 그간 피와 땀으로 일군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 기반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토록 꿈꾸던 수빅만 프로젝트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오세영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서른둘이라는 나이는 충분히 젊고, 포기할 수 없는 나이였잖아요."

그리고 그는 다시 일어섰다. 자동차를 파는 기업인을 넘어, 라오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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