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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4 韓商 1호 기업 주인공 오세영은 이렇게 일어섰다 (1) - - 베트남서 두 번의 실패 딛고 라오스에서 재기 성공 - - 코로나가 바꾼 코라오의 기업가 정신은 ‘국민 행복’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8-15 15:12:04
  • 수정 2026-08-15 15: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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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반도에서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 


2010년 12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자는 코라오홀딩스(현 LVMC)가 한상(韓商)기업 최초로 한국거래소에 상장되던 당시 서울 남대문에서 오세영 회장과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다. 이후 오 회장과의 만남은 2016년 세계한상대회장을 맡았을 당시 행사장에서 두세 차례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오 회장과는 지나간 인연으로 생각해왔던 터다.

그로부터 15년 6개월이 지난 7월 2일, 라오스 코라오홀딩스 본사에서 다시 오세영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본지는 앞으로 5회에 걸쳐 오세영 회장이 걸어온 삶과 기업가 정신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날 동행한 왕길환 본지 부사장은 여러 차례 라오스를 방문하며 오 회장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사이라고 했다. 2010년 코라오홀딩스 상장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코라오홀딩스의 공모가는 주당 4800원이었다. 증권사들은 7500원 안팎을 적정 공모가로 제시했지만, 오 회장은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4000원대 중후반의 가격을 끝까지 고수했다. 단기적으로는 조달 자금이 줄어드는 선택이었지만, 상장 이후 기업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겠다는 신념이 더 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청약 경쟁률은 380대 1을 기록했고, 4조 원이 넘는 청약 자금이 몰리면서 코라오홀딩스의 기업가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상장 직후 가진 술자리에서 기자들은 “오 회장, 그렇게 돈이 많습니까? 시장에서는 더 받을 수 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오히려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하기도 했다.

돈보다 투자자와의 약속이 더 중요

이에 오 회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자본시장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고, 기자들 말대로 바보였는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배추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며 “상장 당시의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코라오(KOLAO)'라는 이름은 Korea와 Laos를 합쳐 만든 브랜드다. 이를 한국 증시에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후 사명을 LVMC로 변경한 데에는 인도차이나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다. Laos, Vietnam, Myanmar, Cambodia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이름이며, 최근에는 China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라오 이미지.


이날 오세영 회장을 만나기 전 기자는 약 5000여평 부지에 조성된 2000여 평 규모의 딸랏라오 재래시장을 먼저 둘러봤다. 오전 시간을 넘긴 터라 시장은 다소 한산했다. 매대는 대략 2000여개. 한국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과 비슷한 규모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 회장은 라오스 정부로부터 수년 전부터 재래시장 건립을 요청받았지만, 코라오그룹의 사업 DNA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줄곧 고사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시장은 곧 전국민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삶의 현장으로 결코 국민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감쌌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코라오그룹은 이미 라오스를 비롯해 베트남·중국·캄보디아·미얀마 등에 7억~8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였다. 그룹의 미래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서 있었다. 코라오그룹의 매출 역시 평소의 10~20% 수준까지 급감했다.

코로나 2년 더 길어졌다면 ?

그는 “베트남에서 두 번째 실패를 겪은 뒤 라오스로 왔는데 코로나로 '여기서 또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청났다”며 “국제선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생애 처음 전세기를 이용해 1년 6개월 동안 태국과 미얀마,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현장을 챙겼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자신이 창업한 은행에는 예금이 넘쳐났다. 기업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자금이 은행으로 몰린 것. 문제는 대출수요가 없어 은행에 돈을 들고 찾아오는 고객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 회장은 “코로나가 2년 정도만 더 이어졌더라면 오늘의 오세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나고 보니 코로나 위기는 오히려 전환점이 됐다는 오 회장의 생각이다.

라오스 비엔티엔의 밤을  밝히고 있는 코라오 빌딩.


당시 그는 생존을 위해 기존 자동차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과감히 재정비하고, 현지 유통과 금융, 인프라 분야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재편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어떤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이후 시장이 회복 국면에 접어들자 LVMC는 다시 성장의 속도를 높였다. 억눌려 있던 소비가 빠르게 살아나면서 자동차 수요도 회복됐고, 그룹은 동남아 전역에서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오 회장은 “결국 위기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며 “코로나는 끝이 아니라 기업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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