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료기관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국내 병원들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서비스 체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국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이 AI를 활용한 질환 예측과 정밀검진, 스마트병실, 원격협진 플랫폼 등을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설정하고 관련 기업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건국대병원은 최근 헬스케어센터 개인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뇌·치매 분야를 강화했다. 기존 종합·스타암·정밀·프리미엄·플래티넘 등 5단계 검진 체계에 뇌·치매 분야를 신설하고, 선택형 특화 검진으로 치매와 알츠하이머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이번 개편은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조기검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건국대병원이 새롭게 도입한 치매 특화 프로그램은 치매 MRI·MRA를 비롯해 정밀 혈액검사, 인지기능검사 3종, 동맥경화도 검사로 구성됐다. 뇌 MRI를 통해 퇴행성 뇌 질환에서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위축이 나타날 수 있는 해마와 주요 대뇌피질을 고해상도로 촬영하고, 해마 위축과 전두측두엽 위축, 뇌 백질 변성 등의 변화를 확인한다.
알츠하이머 특화 프로그램에는 아밀로이드 뇌 PET-CT와 정밀 혈액검사, 동맥경화도 검사가 포함된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뇌에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밀로이드 뇌 PET-CT를 활용하면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단계에서도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 여부를 확인하고 향후 발병 위험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프로그램에 공통으로 포함된 정밀 혈액검사에서는 알츠하이머병 위험과 관련된 ApoE 유전자를 확인한다. 이와 함께 비타민 B12·엽산 결핍, 철결핍성 빈혈 등 치매와 유사한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도 감별한다. 동맥경화도 검사를 통해서는 뇌혈관 손상과 관련된 혈관성 치매 위험을 함께 평가한다.
검사 항목뿐 아니라 검진 절차도 개선했다. 기존에는 치매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신경과 외래 진료를 별도로 예약하거나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건국대병원 헬스케어센터는 종합검진 일정 안에서 치매 관련 정밀검사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도록 원스톱 검진 체계를 마련했다.
검진 결과 인지기능 저하나 뇌 영상 이상 등 추가 진료가 필요한 소견이 확인되면 신경과 치매 전문 교수 진료로 연계한다. 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 진료와 치료, 추적 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김정환 건국대병원 헬스케어센터장은 "그동안 치매가 걱정돼도 검사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며 "원스톱 검진 체계를 통해 하루 만에 정밀검사를 마치고, 이상 소견이 있으면 신경과 전문 진료까지 연계함으로써 수검자의 시간적 부담과 불안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은 이번 개편과 함께 AI 기반 뇌 정량 분석 검사도 도입했다. 프리미엄 뇌 프로그램과 플래티넘 프로그램에는 AI 뇌 정량 분석 솔루션 '뉴로핏 아쿠아'가 기본 항목으로 포함된다.
뉴로핏 아쿠아는 뇌 MRI 영상을 AI로 분석해 대뇌피질 위축 정도와 뇌 백질 변성 수준을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수검자의 뇌 나이와 뇌 노화도를 제시하는 보고서도 제공한다.
의료진의 육안 판독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한 구조 변화도 수치화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상태를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검진 결과와 비교해 뇌 위축이나 백질 변성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건국대병원은 뇌 정량 분석뿐 아니라 기본 건강검진에도 AI 분석 리포트를 도입한다. AI가 검진 데이터를 종합해 뇌혈관질환과 심혈관질환의 현재 위험도, 향후 발병 가능성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수검자는 동일 연령대와 비교한 자신의 건강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 검진 이력이 있는 경우에는 검사 수치의 장기적인 변화 추이도 제공된다. 현재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 다음 검진 시점에 예상되는 질환 위험까지 분석해 생활 습관 개선과 예방적 건강관리에 활용하도록 했다.
건국대병원은 2026년을 '디지털 혁신, AI로 미래를 여는 해'로 정하고 AI 융합형 병원 환경 구축에 나서고 있다. 검진 분야를 시작으로 진료와 환자 안전, 병원 행정 전반에 AI 기술을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황대용 건국대병원 의료원장은 "AI를 활용해 의료진의 업무 효율성과 환자 안전,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세라젬과 삼성서울병원은 미래형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병원과 가정을 연결하는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두 기관은 삼성서울병원의 임상 전문성과 의료현장 경험에 세라젬의 헬스케어 기술을 결합해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주요 협력 분야는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공동 개발,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예방의료 체계 구축, 시니어 헬스케어 서비스 고도화, 고령친화 서비스 개발 등이다.
고령사회에서는 환자가 질병이 생긴 뒤 병원을 방문해 치료받는 방식만으로 건강을 관리하기 어렵다. 만성질환과 노인성 질환은 생활 습관과 수면, 신체활동, 회복 상태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위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병원에서 축적된 진료 경험과 연구 결과를 가정용 헬스케어 기기 및 서비스와 연계해 일상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AI를 활용해 개인별 건강상태를 분석하고, 사용자의 생활환경에 맞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웰니스 홈' 모델 개발에도 협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협력은 삼성서울병원이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병실 사업과도 연결된다. 삼성서울병원은 여러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협력해 AI와 사물인터넷 기반의 스마트병실을 구축하고 미래병원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세라젬의 연구기관인 세라젬클리니컬도 지난해부터 삼성서울병원의 스마트병실 구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스마트병실에는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세라젬 클리니컬 원 메디컬 베드’가 적용됐다.
스마트병실은 단순히 병상에 첨단 기기를 설치하는 개념을 넘어선다. 환자의 움직임과 수면, 회복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관련 데이터를 의료진에게 제공해 환자 안전과 간호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환자 상태의 변화를 조기에 파악하면 낙상이나 욕창 등 입원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두 기관은 세라젬이 제공한 제품을 기반으로 환자 모니터링과 수면·회복 지원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와 사용성 평가를 진행한다. 병원에서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한 뒤 이를 가정으로 확장해 퇴원 후에도 환자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향후에는 임상 연구와 정부 연구개발 과제 참여, 스마트병동 고도화 등 의료·헬스케어 분야의 공동 연구도 추진한다.
세라젬 관계자는 "차세대 AI 기반 헬스케어 기술을 고도화해 병원과 가정을 연결하는 통합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국민의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세라젬의 협력은 의료기기 기업과 병원의 관계가 제품 공급자와 수요자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 파트너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업은 실제 의료환경에서 제품의 효과와 사용성을 검증할 수 있고, 병원은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기업과 함께 개발해 의료서비스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대구시와 경북대학교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지역의료혁신 연구개발사업 공모에서 '광역 원격협진 플랫폼을 통한 협진 및 디지털 의료제품 실증 체계 구축' 과제가 선정됐다.
사업의 핵심은 대구권 거점병원과 경북지역 1·2차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광역 원격협진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역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판단이나 추가적인 자문이 필요한 경우 거점병원 의료진과 협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원격협진 플랫폼이 구축되면 환자가 거주지 인근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서도 거점병원의 전문적인 의료 자문을 활용할 수 있다. 1·2차 의료기관과 상급병원이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진료 방향을 함께 결정함으로써 지역 안에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사업은 원격협진 체계 구축과 함께 지역 디지털 의료제품의 실증도 추진한다. 협진 과정에서 지역 기업이 개발한 디지털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실제 의료현장에 적용하고 실사용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의료제품은 기술을 개발한 뒤에도 임상적 효과와 안전성, 의료진의 사용 편의성 등을 입증해야 실제 의료현장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 바이오헬스 기업은 제품을 실증할 의료기관을 확보하거나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구시와 경북대학교병원은 광역 원격협진 플랫폼을 지역 기업의 실증 기반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기업은 여러 의료기관에서 제품을 사용하며 실사용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후속 인허가와 제품 개선, 사업화에 활용할 수 있다.
사업에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국비 32억 원을 포함해 총 45억 원이 투입된다. 경북대학교병원이 사업을 주관하고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과 지역 바이오헬스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다.
대구시는 실증을 통해 성능과 활용 가능성이 확인된 디지털 의료제품이 인허가와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개별 기업의 기술개발 지원을 넘어 병원과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 의료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김태운 대구시 미래혁신성장실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에 광역권 기반의 실증환경을 제공해 대구 바이오헬스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을 강화해 지역완결형 필수의료체계 구축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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