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뷰티 업계에서 ‘역사 의식 부재’ 마케팅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SNS 전반에서는 아이소이(isoi)의 “잊지 말자 625% 침투하자 더 깊게!”라는 문구가 역사적 감수성 부족 논란과 함께 확산됐다. 이후 메디큐브의 부스터 프로 제품 상세페이지에 기재된 ‘625% 흡수율’ 문구까지 도마 위에 오르며, 양사는 각각 사과문과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이소이는 지난해 10월 대표 제품인 잡티 세럼 등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 시내버스 등에 해당 문구를 활용한 광고를 집행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이 문구가 호국보훈 표어인 ‘잊지 말자 6·25’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북한군의 남침을 뜻하는 ‘침투’라는 표현을 화장품 흡수율에 빗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식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이진미 대표 사과문.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 이후 유통 업계 전반의 역사 인식에 대한 소비자 감시가 강화된 가운데, 과거 집행된 광고가 다시 발굴되며 논란이 확산된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아이소이는 공식 SNS를 통해 1차 사과문을 게시했으며, 이후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가 직접 2차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625%’라는 숫자는 공인된 피부임상연구센터의 인체 적용 시험 결과인 ‘피부 흡수도 측정 개선율’ 수치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며 “전쟁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유효 성분의 흡수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침투’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6·25 참전 유공자의 자녀임을 밝히며 “부끄러운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이어 7월 중 전 임직원이 근현대사 교육을 이수하고, 참전 용사 및 국가유공자 단체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소이 논란 이후 소비자들의 문제 제기는 메디큐브 부스터프로 미니플러스의 상세페이지로 이어졌다. 메디큐브는 지난 6일 저녁 공식 SNS를 통해 관련 입장문을 공개했다. 메디큐브 측은 “최근 논란에 대해 별도의 안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관련 문의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어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공개한다”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아이소이 논란 이후 SNS상에서는 메디큐브 관련 논란도 잇따라 제기됐다.
메디큐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수치는 특정 조건에서 진행된 시험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제품 상세페이지에 기재된 ‘625% 흡수율’ 역시 임의로 만들어낸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시험성적서상 데이터를 인용한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아이소이 사례와 마찬가지로 숫자 ‘625’가 먼저 논란의 대상으로 지목된 뒤, 해당 수치가 어떤 시험에서 도출됐는지, 어떤 제품 효능을 설명하기 위한 문구였는지는 뒤늦게 검토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상업적 표현의 우연과 역사의식 부재, 그 사이의 간극
‘625’라는 숫자 자체를 역사적 프레임 안에서만 해석할 경우, K-뷰티 업계가 강조해온 실증 기반 마케팅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브랜드의 광고와 상세페이지는 모두 6월 25일 당일에 맞춰 공개된 것이 아니며, 해당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환기하는 이미지나 서사를 동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품 효능을 설명하기 위한 수치와 표현이 사후적으로 특정 역사적 의미와 연결되며 논란의 대상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물론 기업은 사회적 상징성이 큰 숫자나 표현을 사용할 때 보다 정교한 리스크 점검을 거쳐야 한다. 특히 역사적 사건과 맞닿을 수 있는 표현은 의도와 무관하게 소비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만큼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업적 표현에 등장한 모든 수치적 우연을 곧바로 역사의식 부재로 단정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공식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메디큐브의 시험성적서 자료 및 입장문.
이 같은 ‘사후적 검열’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제품 커뮤니케이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뷰티 업계는 막연한 감성 마케팅에서 벗어나 흡수율, 개선율, 임상 데이터 등 정량적 근거를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비교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이는 제품 효능을 보다 투명하게 전달하려는 흐름이기도 하다.
역사 의식이 부족한 표현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다. 다만 문제 제기가 의도와 맥락에 대한 검토 없이 확대될 경우, 합리적 비판을 넘어 온라인 여론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 아이소이가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에도 일부 소비자들은 “해당 마케팅 문구가 한국에서만 사용된 이유를 설명하라”고 추가 문제를 제기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위·과대광고 및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로 신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논란은 기업의 표현 관리 문제와 소비자 감시의 적정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브랜드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문구 검토 체계를 강화해야 하며, 소비자 여론 역시 의도와 자료, 사용 맥락을 함께 살피는 방식으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후적 검열’이 이어질 경우 K뷰티 업계는 투명한 정보 제공이 아닌 방어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에 머무는 방향으로 후퇴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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