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서남권에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육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정부가 광주·전남을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초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정부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앰코는 총 896조원을 투자해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과 AI 데이터센터, 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을 조성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열고 기업별 투자계획과 정부의 서남권 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앰코를 비롯해 산업부, 과기부, 국토부 등 관계 부처와 지역기관이 참석해 투자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수도권에 집중된 국내 반도체 생산 기반을 남부권까지 확장하고, AI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첨단 제조, 정주 인프라를 연계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국가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가 반도체에 투자하는 이유…AI 시대 산업지도가 바뀐다
이번 서남권 프로젝트는 단순한 지방 투자사업이 아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반도체와 AI 인프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도체는 이제 전자제품의 핵심 부품을 넘어 국가 안보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AI 경쟁력이 반도체 생산능력과 AI 인프라 확보로 이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AI 모델만이 아니다. 고성능 메모리와 AI 데이터센터, 국가 AI 컴퓨팅센터, 첨단 패키징,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등 AI 산업을 뒷받침할 기반시설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생산능력과 AI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한 국가가 미래 산업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이 대규모 반도체 지원 정책을 통해 생산시설 유치 경쟁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도체는 AI뿐 아니라 첨단 제조업과 데이터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핵심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생산시설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정부가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과 AI 데이터센터,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 기능을 집적하는 서남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AI 시대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할 새로운 반도체·AI 산업 거점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메모리 팹 4기 구축…기업별 역할도 뚜렷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과 AI 인프라, 첨단 패키징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를, 앰코는 첨단 패키징 경쟁력 강화를 맡는 등 기업별 역할도 분명하게 나뉜다.
가장 큰 투자를 단행하는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약 470조원을 투입해 서남권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메모리 팹) 2기와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메모리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조성해 AI 시대 핵심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메모리 팹과 AI 데이터센터를 한 권역에 집적함으로써 AI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삼성은 총 425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메모리 반도체 팹 2기를 신설하고, 삼성SDS는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 21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이 데이터센터는 오는 2026년 하반기 착공해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이와함께 삼성전자는 광주에 디지털 트윈 기반 제조혁신 허브를 구축해 AI 기반 스마트 제조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북 고창에는 글로벌 첨단 물류센터를 설립해 반도체와 첨단산업 물류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무탄소 발전과 원전 기반 수소 생산, 그린수소 생산기술 실증 등 미래 에너지 분야 투자도 추진해 첨단산업에 필요한 에너지 기반 구축에 나선다.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는 앰코가 역할을 맡는다. 앰코는 1조원을 투자해 광주 첨단 패키징 공장을 증설한다. 첨단 패키징은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집적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AI 반도체 시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생성형 AI와 고성능 컴퓨팅(HPC) 확산으로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이번 투자는 국내 AI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메모리 팹) 4기 건설에 총 800조원, AI 데이터센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에 약 95조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메모리 생산, AI 컴퓨팅, 첨단 패키징을 한 권역에 집적해 수도권에 이은 제2 반도체 생산거점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정부와 기업의 MOU체결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왜 서남권인가…정부가 제시한 네 가지 이유
정부는 서남권이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으로 적합한 이유로 입지와 인프라, 연구역량, 정주환경을 제시했다.
첫째는 대규모 산업용지 확보다.
정부는 서남권이 기업형 첨단도시를 조성할 수 있는 충분한 입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업 맞춤형 입지를 공급하고 인허가와 설계, 보상 절차를 병행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조성 기간도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둘째는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이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발전설비와 송전망을 신속히 구축하고, 댐과 하수재이용수 등을 활용한 용수 공급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이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기반시설 조성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셋째는 산학연 혁신생태계 조성이다.
전남대 캠퍼스혁신파크, 광주 도심융합특구,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을 연계해 연구개발과 창업, 기업 투자가 함께 이뤄지는 혁신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넷째는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이다.
정부는 교통과 주거, 교육, 여가 등 정주여건을 함께 개선해 기업 투자와 우수 인력 정착을 동시에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을 넘어 생산과 연구, 생활 기능이 함께 어우러진 첨단도시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특별위 신설…정부, 기업 투자 실행력 높인다
정부는 이번 사업이 계획에 그치지 않도록 지원체계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반도체 특별위원회와 반도체 혁신성장지원단을 설치해 기업 투자 이행을 총괄 지원한다. 산업단지 조성 기간은 현재의 절반 수준인 5년 이내로 단축하고, 남부권 반도체 공대 등을 통해 전문인력도 양성한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특구법에 따라 서남권에 최소 1개 이상의 메가특구를 지정하고,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 비용은 최대 100%까지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업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지역별 차등세제 도입도 검토된다.
반도체 중심 산업지도 새로 그린다
이번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가장 큰 변화는 국내 산업축의 다변화다.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지만, 서남권에 메모리 생산과 AI 데이터센터,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 기능이 집적되면 수도권과 함께 국가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또 하나의 거점이 형성된다.
다만 이번 발표는 기업들의 투자계획과 정부 간 투자양해각서(MOU) 단계다. 실제 투자 규모와 착공 시기, 생산시설 구축 일정은 부지 확보와 인허가,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기업별 투자 결정 등에 따라 순차적으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번 896조원 투자 구상은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공동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가 밝힌 대로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서남권은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이자 첨단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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