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MR
검체검사 수탁기관과 전자차트(EMR) 업체 간 연동 계약 종료를 둘러싸고 개원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업체 간 계약 문제로 시작된 사안이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기관의 수탁기관 선택권 및 환자 진료정보 관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헬스케어와 씨젠의료재단 간 수탁검사 연동 서비스가 계약 만료를 이유로 오는 30일 밤 12시 이후 종료될 예정이다.
그동안 이지스 EMR을 사용하는 의료기관은 씨젠의료재단에 의뢰한 검사 결과를 전자차트 안에서 확인해 왔다. 그러나 연동이 중단될 경우 기존처럼 검사 결과를 EMR에서 바로 조회하거나 누적 관리하는 데 제한이 생길 수 있다.
◆ "수탁기관 선택 기준, 검사 품질 아닌 EMR 연동 여부로 바뀌나"
개원가가 주목하는 부분은 연동 중단 자체보다 그로 인해 의료기관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탁기관을 결정할 때 검사 신뢰도, 응대 체계, 기존 거래 관계, 환자 데이터의 연속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EMR 연동 여부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면 의료기관은 사실상 EMR 업체가 연결해 둔 기관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과처럼 만성질환 환자를 장기간 관리하는 진료과에서는 검사 결과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검사기관이 바뀌거나 결과 조회 방식이 달라지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 상태를 이어서 파악하는 과정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경기도의 한 내과 원장은 "수탁검사 결과는 진료 참고자료가 아니라 환자 상태 변화를 판단하는 핵심 정보"라며 "기존에 EMR 안에서 확인하던 검사 데이터가 다른 방식으로 분리되면 의료진과 직원 모두 업무 흐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EMR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EMR은 진료기록 작성, 처방, 청구, 검사 의뢰, 결과 확인 등 의원 운영 전반과 연결돼 있다. 시스템을 교체하려면 기존 환자 자료 이전, 청구 데이터 정리, 직원 교육, 업무 프로세스 재정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진료실과 원무 업무에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의 한 비뇨의학과 원장은 "EMR은 의원 전체 업무와 맞물려 돌아가는 기반 시스템"이라며 "연동 문제 때문에 EMR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큰데 결국 연동 가능한 수탁기관으로 이동하는 쪽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사안은 수탁기관과 EMR 업체 간 계약 종료가 의료기관의 거래 선택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계약 당사자가 아님에도 연동 중단의 영향을 직접 떠안게 되는 셈이다.
대구의 한 개원의는 "검사기관 선택은 의료기관이 환자 진료에 필요한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그런데 EMR 연동 가능 여부가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다면 의료기관의 자율성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민간 EMR, 사실상 의료 인프라"…연동 기준 제도화 요구 확산
이번 논란을 계기로 EMR의 공공성과 책임 범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MR은 민간기업이 공급하는 서비스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진료정보를 저장·관리하고 검사·청구 시스템과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내과의사회도 관련 민원을 대한의사협회에 접수하고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업체 간 계약 조건이나 비용 협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발생하는 불편과 위험이 의료기관과 환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부산의 한 내과 원장은 "EMR과 검사 시스템은 이미 의료기관 운영의 필수 기반이 됐다"며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환자 진료정보와 직접 연결되는 영역이라면 최소한의 공정성과 연속성 기준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일정한 기술적·보안적 요건을 갖춘 수탁기관에 대해 합리적인 연동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연동 중단이 불가피할 경우 충분한 사전 고지 기간을 두고 기존 검사 결과 조회와 데이터 이관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단순히 특정 업체 간 분쟁을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 향후 EMR 연동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진료 환경이 고도화될수록 의료기관은 특정 EMR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연동 권한을 가진 업체의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EMR은 이제 병·의원의 내부 행정 프로그램을 넘어 검사기관, 청구 시스템, 환자 데이터 관리와 연결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연동 여부가 의료기관의 선택권과 환자 진료 연속성에 영향을 준다면 이에 맞는 제도적 기준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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