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부회장
신입사원 한 명을 뽑고 나면 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어떻게 훈련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필자는 다양한 시도를 하며 지켜보았다. 먼저, 회사 안에서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을 지켜보며 따라가는 방식으로 업무를 익히며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점을 찾아 보고하게 한다. 두번째 방법은 당장 불편하고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것을 1일 1건씩 찾아 보고하게 하였으나 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문서를 정리해 둔 파일을 매일 들춰보고 거기서 새로 알게 된 것을 하루 세 가지씩 보고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 중에 회사의 과거 문서를 통해 배우게 한 것이 가장 효과가 컸다.
이런 발상에는 필자가 경험한 40년 전의 신입사원 때 일이다. 대우무역 인사부 1년 차 때 사무실에서 ‘창고 서류를 정리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인사부에서 비교적 신참이던 내가 손을 들었다. 창고는 서울역 앞 대우센터 7층, 창문 하나 없는 건물 코어의 방이었다. 그룹이 창업 20년을 지나 확장 일로에 있던 시기라 서류가 눈덩이처럼 쌓여 있었다. 간편복 차림으로 일주일을 매달렸다. 인사 서류라 생성 연도만 보고 폐기를 정할 수 없어 한 장씩 들여다봐야 했고, 질 낮은 종이에서는 먼지가 풀풀 날렸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서 괜히 자원했다는 후회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마친 다음 주부터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선배들의 대화가 비로소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외에 흩어진 인사 관리 대상 인원이 2,000명, 컴퓨터 조회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자료가 기억과 손과 타자기로 정리되던 때였다. 몇일전만 해도 가장 기본적인 직원 이름조차 낯설었는데 귀가 열리며 일 처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20년 역사가 빠른 속도로 머리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이후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 직원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보았다. 하나같이 과거 업무 파일을 끝까지 열어 본 사람들이었다. 비교적 단기간 거래가 많은 영업부서 조차도 과거 거래 서류를 찾아보며 업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것이었다. 덤으로 거래처와의 관계와 역사까지 읽어 냈으니 그만큼 대화가 깊어졌던 것이었다.
요즘 신입사원에게는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검색하면 무엇이든 나오는 시대에, 정작 검색되지 않는 것 앞에서는 막막해한다. 그러나 회사의 진짜 자산은 검색창에 없다. 특히 중소기업은 하루치 일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해 문서 정리도 공유도 쉽지 않다. 그렇게 쌓인 문서 더미가 곧 그 회사 업무의 정수(精髓)다. 그 문서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는 경영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과거 문서를 따라가다 보면 업무뿐 아니라 회사의 역사와 담당자의 손바뀜까지 보인다. 영업담당자라면 거래처의 내력이, 구매담당자라면 회사의 기술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이 이치는 해외에 법인을 세운 기업에서 더욱 절실하다. 인건비 경쟁력을 좇아 동남아로 나간 한국기업은 대개 한국인 직원을 극도로 줄여 운영한다. 현지 직원과 견주면 한국인 직원의 급여는 다섯 배, 열 배를 넘는 까닭이다. 그런데 같은 한국인이라도 처지가 다르다. 본사에서 나온 주재원은 5~6년 차의 숙련된 인력이지만, 4~5년이면 본사로 순환해 돌아간다. 반면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인 직원은 업무를 배울 통로가 더없이 좁다. 가르쳐 줄 선배도, 들춰 볼 과거 문서도 마땅치 않은 탓이다. 간부 입장에서 두 사람의 격차는 현격하고, 또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당연함을 잊고 같은 효율을 기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다그치게 된다는 점이다.
. 때가 차면 새끼가 안에서 껍질을 쪼고(啐), 어미가 밖에서 마주 쪼아(啄) 준다. 줄탁동시(啐啄同時)다. 안과 밖의 쪼음이 한순간에 만나야 비로소 새 생명이 껍질을 깬다. 신입의 적응도 다르지 않다. 본인이 안에서 부지런히 쪼아야 하고, 회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밖에서 함께 쪼아 주어야 한다.
많은 회사가 신입을 또래에게 맡기고 잘 가르치라 하지만 실패 확률이 높다. 적어도 3년 차 이상, 후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부화의 순간까지 조금만 더 지혜롭게 기다려 주자는 마음에서, 필자의 초년병 시절을 꺼내 보았다. 신입의 안간힘과 선배의 손길이 같은 순간에 만날 때, 한 사람의 인재가 비로소 껍질을 깨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