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사의 '베라 루빈' 플랫폼을 공개하고 있는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출처=엔비디아]
6월 첫날에도 한국증시는 불타 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LG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도 덩달아 랠리에 합세하며 8800을 돌파, ‘9000 시대’를 곧 현실화할 기세였다. 이날 랠리를 촉발한 것은 무엇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한 마디다. 하루 전 그는 “‘(베라) 루빈’에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마이크론의 HBM4를 탑재할 것”이라고 했다.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젠스 황 방한의 의미를 짚어본다.
젠슨 황 ‘방한 스케줄’에 대한 기대감
오는 5일 그는 다시 방한을 예정하고 있다. 절실하다고 할까, 야심차다고 할까. 그의 이번 방한은 그만의 필연적인 ‘서사’와 함께 한다.
이번에 국내 증시를 불태운 또 다른 모티브 역시 젠슨 황의 방한 스케줄이다. 한국을 찾는 그는 국내 주요 그룹이나 기업 대표들과 연쇄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과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경우에 따라선 지난해 10월의 ‘깐부’ 회동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만남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그의 구체적 동선이 알려지면서, 업계에선 이들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글로벌 생태계에 참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선 한국 기업들보다 오히려 더 절실하고 애가 타는 것은 젠슨 황, 자신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도 있다.
지난 해 이후 IT산업 동향은 그로선 매우 숨가쁘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지난 1월 6일 ‘CES 2026’ 개막연설에서 그는 ‘베라 루빈’ 칩을 앞당겨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AI개발, 컴퓨팅, 네트워킹, 메모리 등 ‘풀스택’을 지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가 내건 엔비디아의 키워드는 ‘블랙웰’을 뛰어넘는 ‘베라 루빈’(루빈) 플랫폼을 무기로 한 ‘풀스택’ 전략이었다. 쉽게 말해 최첨단의 가속기 성능과 연산능력을 구동하는 ‘루빈’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종합 디지털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21세기 지구촌 IT문명을 이끌고 가는 패권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도 읽힌다.
황 CEO 스스로도 “고도의 통합을 통해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네트워킹 하드웨어 기업이자, AI 컴퓨팅 분야 최고의 칩 제조업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다”고 했다.
젠슨 황이 공개한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GPU 플랫폼. [출처=엔비디아]
‘글로벌 IT·AI패권’ 야심에 ‘구글’ 등 ‘태클’
그러나 인생 만사가 그렇듯이 그 후 전개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는 엔비디아에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 엔비디아 칩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오던 오픈AI,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이젠 ‘앤비이아 락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자체 AI 칩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독립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나름의 칩을 개발하긴 했지만, 당장 상용화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구글은 예외였다. 일찌감치 IT혁명과 AI혁신을 창조했던 기업답게 구글은 야심작 TPU(텐서 프로세서 유닛)를 성공리에 개발, ‘엔비디아 갈아타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속도나 용량, 디바이스 호환 등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사 클라우드 서버 내부에서만 사용해 온 TPU를 외부 기업에 온프레미스 방식으로 직접 판매하고 나섰다.
특히 막강한 구글 클라우드가 플랫폼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칩을 임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사가 칩을 직접 구매해 자신들의 데이터센터나 기존 스택에 직접 설치·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클라우드 네이티브로선 보기 드물게 임대가 아닌 판매로 전환한 셈이다. 특히 보안이나 규제에 적응해야 하는 금융기관·공공기관 등에서 이를 선호했다. .
더욱이 엔비디아의 속을 쓰리게 한 점이 있다. 메타·앤트로픽 등 주요 AI들이 엔비디아 칩 대신 TPU로 갈아탄 것이다. 앤트로픽은 구글 클라우드와 계약을 맺고 최대 100만 개의 TPU를 활용하기로 했는데, 이는 수백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엔비디아의 ‘호퍼’시리즈인 H100·B200 GPU를 대량 구매하는 대표 고객인 메타도 마음이 변했다. 2027년부터 자사 데이터센터에 구글 TPU를 도입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논의 중이다. 업계에선 만약 “메타가 TPU를 실제로 채택할 경우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 처음으로 실질적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세일즈포스도 뒤를 따랐다. 클라우드 임차 방식, 즉 구글 클라우드 TPU를 통한 AI워크로드를 수용키로 한 것이다. 미드저니 역시 클라우드 임차 방식으로 이미지 생성 AI모델 구동에 TPU를 활용하고 있다. 오픈AI 공동창업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설립한 AI스타트업 SSI도 클라우드 임차 방식으로 TPU를 도입했다. 마침내 ‘TPU 생태계’가 구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은 최근엔 AI연산에 특화된 TPU 7세대까지 내놓으며 엔비디아 칩 영역을 갉아먹을 태세다. 엔비디아로선 위협이나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곤 하지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상대가 ‘구글’이란 막강한 기업이다.
애플이 도입한 구글 TPU-4 기반의 데이터센터. [출처=애플]
6개월 빨리 서둘러 꺼낸 비장의 무기 ‘루빈’
지난 CES 2026 연설에서 젠슨 황이 금년 여름으로 예상되었던 ‘루빈’을 공개하고, ‘풀스택’ 기업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공포한 것도 그 때문이란 분석이다. 자체 개발 AI칩 상용화를 밀어붙이는 구글에 대한 일말의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젠슨 황이 기조연설을 통해 소개한 ‘루빈’ 시스템은 날로 커지는 AI 모델에 대한 수요 증가에 발맞춰, 엔비디아가 경쟁 우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다짐으로 읽히기도 했다. ‘루빈’은 그 바람에 엔비디아의 전통적인 제품 출시 주기에 변화를 가져온 첫 번째 케이스다. 엔비디아는 보통 매년 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주요 칩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루빈’처럼 이번엔 출시 시점을 이례적으로 앞당긴 것이다. 황 CEO는 “AI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반도체 업계 전체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행간엔 분명 ‘구글 TPU’의 급부상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 만큼 사정이 급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새삼 ‘베라 루빈’의 기술적 함의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AI연산에 특화된 구글 TPU 5세대 이후 제품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엔비디아는 “루빈 GPU가 블랙웰(Blackwell)보다 약 5배 높은 학습 컴퓨팅 성능을 제공한다”면서 그 성능을 강조하며 차별화를 부각시켰다.
정작 주목되는 점은 ‘루빈’은 단일 칩이 아니란 점이다. 기존의 호퍼(H시리즈), 블랙웰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야심적인 서사’를 간직한 무기로 해석될 만하다. 실제로 이는 베라 CPU, 루빈 GPU, 6세대 NVLink 스위치, ConnectX-9 네트워킹, BlueField-4 데이터 처리 장치, 그리고 102.4테라비트/초 속도의 스펙트럼-X(Spectrum-X) 광 인터커넥트 등 6개의 구성 요소가 긴밀하게 통합된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그래서 “6개의 칩이 모여 하나의 AI 슈퍼컴퓨터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기존 H시리즈나 B(블랙웰)시리즈와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AI 연산에 특화, 자체 개발한 맞춤형 칩인 TPU와 차별화된 제품임을 부각시킨 기술”이란게 업계의 평가다.
엔비디아 블랙웰 기반의 RTX 시리즈. [출처=엔비디아]
“‘루빈’은 진화된 추론 기술의 상징” 주장
TPU가 AI연산에 특화된 기술인데 비해, 엔비디아 기술진은 “‘베라 루빈’ 아키텍처는 AI워크로드, 특히 추론 분야의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며 ‘추론’의 복합적 의미를 들어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즉, “추론은 더 이상 단순한 패턴 매칭 작업이 아니라, 긴 시퀀스, 다양한 데이터 유형, 그리고 실제 맥락을 기반으로 추론해야 하는 모델의 ‘사고 과정’”이란 얘기다. 이는 “가상 환경에서 시스템을 훈련시켜 물리적 세계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시뮬레이션 기반 AI’라는 엔비디아의 더 큰 비전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AI에이전트를 포함, 각종 AI네이티브에 적용되는 기반이 곧 ‘베라 루빈’ 플랫폼이란 얘기다. 나아가선 이를 활주로 삼아 장차 수직계열의 종합 IT·AI 기업으로 날아오른다는 전략이다. 다만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일각의 탈(脫)엔비디아 움직임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1일 개막한 ‘컴퓨텍스 2026’을 거쳐, ‘AI 3대 강국’을 목표할 만큼 강력한 AI스택과 인프라, AX기반을 갖춘 한국을 찾는 것도 그런 맥락의 일환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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