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제미나이(나노바나나) 생성
정부의 대표적 소공인 디지털 전환 정책인 ‘소공인 스마트제조 지원강화 사업(구 스마트공방)’이 2026년도 사업 지침 개편 이후 거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새롭게 도입된 ‘연 매출 2억 원 이상’ 요건이 영세 봉제업 현실과 괴리된 채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정작 정책 지원이 절실한 봉제 소공인들이 사업 대상에서 대거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은 시행 11년 차를 맞은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소공인법)’의 존재 이유까지 다시 꺼내 들게 만들고 있다. 애초 동대문·창신동·성수동 등 봉제 작업장을 기반으로 설계된 법이지만, 핵심 지원 사업에서 봉제 소공인을 밀어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비판이 현장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공고한 2026년도 ‘소공인 스마트제조 지원강화 사업’이다. 이번 공고에는 과거 없던 ‘연 매출 2억 원 이상’ 기준이 새롭게 포함됐다. 문제는 이 기준이 법의 출발점이었던 ‘영세 소공인 보호’라는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2014년 소공인법 발의 당시 전순옥 전 의원은 도시형 소공인을 “숙련 기술 기반의 노동집약적 영세 사업자”로 정의하며 법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영세성을 지원 대상의 핵심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 기준으로 전환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장 반발은 더욱 거세다.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년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상공인 평균 매출은 1억9,900만 원 수준으로, 새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의류 제조업체의 62.9%가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가 추산하는 봉제 소공인 매출 중위값은 약 1억5,0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업계 다수가 사업 신청 단계에서부터 탈락하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준이 결과적으로 봉제 소공인 하위 90%를 정책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자동 재단기, 패턴 설계 SW 등 디지털 설비 도입이 가장 절실한 영세 봉제업체일수록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형평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중기부는 이번 공고에서 ‘현안 문제 해결형’ 예외 조항을 별도로 마련해, 연 매출 2억 원 미만 기업도 일부 업종에 한해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해 화장품·식품 제조업과 화학섬유 방적·직조·염색 등 섬유소재 제조업은 예외 대상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봉제·의류 제조업은 제외됐다. 업계는 이를 두고 공급망 구조를 무시한 비현실적 기준이라고 반발한다. 봉제업은 원단 매입비 비중이 절대적인 업종으로, 소재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섬유소재 단계의 충격은 인정하면서 이를 완제품으로 가공하는 봉제 단계는 제외한 것은 정책 논리상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서울시봉제산업협회 노양호 회장은 “입법 정신을 무력화하는 과도한 기준”이라며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이유로 전체 영세 소공인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 과잉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부정수급 문제는 사후 적발과 환수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 지원 대상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와 협회는 오는 5월 18일 사업 신청 시작 전까지 수정 공고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핵심 요구 사항은 ▲봉제·의류 제조업의 ‘현안 해결형’ 예외 업종 포함 ▲업종별 현실을 반영한 매출 기준 재설정 등이다. 업계에서는 봉제업 특성을 고려할 경우 현실적인 기준은 연 매출 1억 원 수준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스마트공방 사업은 2020년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성수동 수제화 작업장을 방문한 이후 본격화된 정책이다. 숙련 제조 기술에 ICT를 접목해 ‘메이드 인 코리아’ 제조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며, 지난 5년간 생산성 향상과 불량률 감소 등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자동화 설비 도입은 열악한 봉제 작업 환경 개선과 청년 인력 유입 확대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현장에서는 정책의 엄격함이 입법 정신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패션 생산 생태계의 뿌리인 봉제 소공인의 디지털 전환 없이 제조 경쟁력 강화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정부가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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