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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한중 협력의 현장을 가다... ④ 동북아 협력의 심장이 뛰는‘시타거리’ - - 협력이 일상이 되는 공간...코리아타운을 넘어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 - 식당과 카페에서 시작되는 협력...밤이 되면 더 바빠지는 거리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4-27 00: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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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양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시타거리.


“매운 한국 떡볶이 있어요.”

3월 12일 오후 7시경. 선양 중심부에 위치한 시타(西塔) 거리에는 이동행상이 즐비하게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한국판 떢볶이’가 눈에 띄었다. 국자로 빨간 떡볶이를 휘저으며 한족으로 보이는 주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이같이 호객을 했다.

비슷한 가게들이 옆에도 이어졌지만, 완벽한 한국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동북3성에서 가장 잘 알려진 코리아타운이라고는 하지만 한식과 한류만 앞세웠을 뿐 대부분 중국인들이 노상을 정복하고 있었다.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 술집 등의 간판도 예전처럼 한글 표기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20여 곳의 달했다던 북한식당도 지금은 7곳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출입은 금지되고 있었다. 선양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북한식당에 가서 들쭉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한민족 이주 역사와 조선족 공동체의 삶, 그리고 한국과 중국을 잇는 경제·문화 교류의 흐름이 함께 쌓여 온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식 떡볶이와 오징어발을 팔고 있는 한족 상인


함께 시타거리를 걷던 김인국 흑룡강신문사 특약기자는 “오늘날 이 거리는 동북3성에서 한국 기업인과 조선족 사업가, 선양 시민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민간 교류의 현장이자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고 소개했다. 랴오닝성 조선족미술촬영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기자는 그동안 시타거리를 가장 많이 앵글에 담았다고 했다.

위키백과사전에따르면, 시타(西塔)라는 지명은 청나라 초기인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 태종 홍타이지는 수도였던 성경, 즉 오늘날의 선양의 안녕을 기원하며 도심 네 곳에 불탑을 세웠다. 그 가운데 서쪽에 세워진 연수탑이 바로 시타의 유래가 됐다.

세월이 흐르며 탑 자체는 철거와 복원을 거쳤지만, 그 이름은 도시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후 이 지역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온 한민족 이주민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했다.

일제강점기와 만주 이주 시기 선양역 인근에 정착한 조선인들은 냉면집과 떡집, 반찬가게를 열며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작은 음식점과 시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족 공동체의 중심지로 발전했고, 그 흔적은 오늘날 이 거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시라소니’로 알려진 이성순이 젊은 시절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동포들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다. 전설적 요소가 섞여 있지만 이러한 서사는 동북3성이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과 맞닿아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시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한인들은 이곳을 ‘북방의 작은 서울’이라고도 불러요. 지금은 중국인들로 많이 대체되긴했어도 거리 곳곳에서는 어눌하지만 한국어와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립니다.”

시타거리를 누비며 원 없이 돈을  만져봤다는 안성규 아산(선양)부동산개발 회장을 또 만났다.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면서 시타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동북3성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이곳은 현지 시장 정보를 얻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식당과 카페는 일반적인 식사 장소에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 상담과 정보 교환이 이뤄지는 일종의 ‘비즈니스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알려줬다.

한국 기업인과 조선족 사업가, 현지 파트너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 형성되면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비공식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본지가 수여하는 ‘제22회 발로뛰는 영사상’을 수상한 손창호 주선양총영사관 경제영사는 “한국 기업, 조선족 기업인들이 교류하는 이 거리는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며 “이러한 민간 네트워크는 공식 경제협력 못지않게 중요한 협력 기반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시타거리를 돌아보면서 눈에 띄는 간판은 ‘서탑 냉면’이다. 이 냉면을 먹지 않고 시타를 갔다 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될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당연히 선양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역 명물이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과는 다른 동북 지역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육수가 특징인데 그릇이 커서 ‘세숫대야 냉면’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처럼 고기를 구워 먹은뒤 입가심으로 냉면을 주문했다가는 배가 불러 낭패를 볼 수 있다.

김치와 반찬 가게 역시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부 선양 시민들은 이곳을 두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거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타상권의 발전은 한국 기업의 투자와 조선족 동포들의 현지 네트워크가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년 열리는 ‘선양한국주’ 기간이 되면 시타거리는 한중 교류의 중심 공간으로 변한다.

한국 기업과 조선족 공동체, 선양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면서 거리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된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조선족 청년 세대가 스마트 결제와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면서 시타는 중국 젊은 여행객들이 찾는 인기 관광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선양총영사관은 선양시와 함께 이러한 역사적·경제적 가치를 바탕으로 시타거리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손 영사는 “거리 환경과 간판, 상점 외관을 정비하고 관광 인프라를 개선해 국제적인 문화 거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상권의 상당수가 문을 닫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상점이 다시 영업을 시작하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선양시는 시타거리를 한국 문화와 지역 산업이 결합된 국제 교류 거리로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도시 정책 과제로 보고 있다.

시타거리에 있는 '한국 커피숍' 간판.


앞으로 시타거리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선양시는 이 지역을 차 없는 거리 중심의 문화 관광 지구로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K-팝 공연, 거리 버스킹, 한중 청년 문화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영완 전 민주평통 중국지역부의장(선양협의회장)은 “동북아 협력의 미래 역시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러한 도시의 일상적인 교류에서 시작될 수 있다”며 “선양 시타거리는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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