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중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무대를 한복으로 꾸민 로라 박 대표.
2026년 3월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 이곳에서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이 행사의 백미는 한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줄여서 ’케데헌‘)의 주제가 '골든’(Golden)의 축하 공연 무대였다. 노래가 나오기 전 딱 3분동안 펼쳐진 무대는 주최측 디자인팀이 엄청난 투자를 했을 정도다.
공연은 단청 문양과 전통 산수화를 배경으로, 판소리 가락과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무대로 꾸며졌다. 판소리 소리꾼은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길게 늘어진 노리개를 착용했다. 칼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최고급 실크 원단을 사용한 한복을 입고 무대를 누볐다. 수상을 위해 돌비극장을 가득 메운 할리우드 스타들과 전 세계 팬들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인 ‘한복’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원더풀’을 외쳤다.
바로 이 한복은 LA 한인타운에 있는 '이화 웨딩&한복'의 로라 박 대표가 시상식을 준비한 오스카 디자인팀과 협업해 제작한 것이었다.
박 대표는 시상식이 끝나고 열흘 뒤 한국을 찾았다. 시상식 공연에 쓰일 의상을 제작하는데 열정을 쏟아 머리도 식힐 겸 한복 원단 및 부자재 구매 등을 위해 방한했다. 그를 만난 건 하루종일 비가 오는 9일 오후 스산한 공기가 여의도 하늘을 가득 메운 날이었다.
기자는 박 대표의 얼굴을 보자마자 오스카 시상식 때 선보인 한복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오스카에서 한복을 입고, 창을 부르고 무용을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케데헌’이 뜨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니겠어요.”
당시 시상식에 참가했던 영화 예술인들에게 확실하게 한복을 각인시켰다고 그는 단언했다. 시상식 이야기가 나오면서 박 대표는 그때가 떠올랐는지 목소리를 한 단계 높였다.
“지금, 미국에서 한복의 인기는 제가 일을 시작한지 36년 만에 가장 핫해요. 오스카 시상식 때 한복이 빛나긴 했지만, 이미 한복 인기는 실감 정도가 아니라 체감할 정도로 높습니다.”
이어 박 대표는 이런 인기는 결국 한국의 위상이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동반 상승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한복은 결국 그래서 문화다. 우리나라 문화가 상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자신의 한복점 앞에 ‘Only for Reservations’(예약한 사람만 입장하세요)이라고 쓴 입간판을 세워야 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한복을 구경하겠다고 시도 때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통에 일을 할 수가 없어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복의 인기를 입증하는 사례라고 그는 말했다.
오스카 시상식후 출연진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로라 박 대표 제공]

2024년 MLB 서울 개막전때 김하성 선수(사진)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이 입었던 한복도 로라 박 대표가 제작한 것이었다.
오스카 시상식 무대를 꾸민 것으로 그의 인기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는 올해 가을 추석 행사 때 한복을 제공해달라고 벌써 요청을 했다. 3년째 이 박물관 추석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과도 추석 행사때 의상을 제작할지를 놓고 현재 조율중이다. 확정이 되면 한복 전시와 판매를 함께 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앞서 2024년 메이저리그(MLB) 서울 시리즈 공식 개막전 때 김하성 선수가 뛰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이 단체로 입었던 한복 40벌도 제작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복’하면 로라 박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이제 ‘한복의 대명사’가 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 하나 더. 미국인들은 왜 한복을 좋아할까?
“미국인들은 한복이 좋지만 결국 한국인을 좋아하는 겁니다. 한복을 입어야만 한국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한국 사람들은 ‘한복 체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진짜로 한국인이 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한국인이 되지 못하면 남자는 걸프렌드, 여자는 보이프렌드라도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는 과거에 미국에서 일본인이 인기가 있었을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한국인을 좋아하는 시대라고 부연했다.
이처럼 한복 인기에 한몫을 하고, 미국에서 한복 보급과 알리미로 36년간 활동해온 그는 어떻게 한복과 인연을 맺었을까?
서울 제기동에서 출생한 그는 부모님의 포목점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60년간 포목상을 운영했다. 아들 셋이 가업을 승계하려했지만, 셋째 고명딸이면서 고교 졸업 후 미국에 이민한 박 대표가 물려받은 것이다.
“원래 포목상은 남자가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제가 이어받게 된 것인데요. 결국은 ‘끼’가 있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한복과 양장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기술자인 그는 ‘절대 색감’을 가진 것이 끼이고, 다른 한복과의 차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 그는 부모에게 ‘LA에서 한복 원단을 한번 팔아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당연히 ‘미쳤냐?’라는 대답과 함께 ‘누가 한복을 사입겠느냐’는 질책이 돌아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러니까 외상으로 좀 주세요. 대신 겉감 말고 안감을 주세요”라고 졸라서 안감을 받아 LA에서 팔았다. 그런데 의외로 몇몇 한복집에서 그 안감을 사겠다고 했던 것.
그는 ‘그렇다면 원단을 내가 한국에서 구매해 팔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1990년 지금의 빌딩에 ‘이화 코리안 트레디셔널 한복’이라는 한복점을 차렸다. ‘이화’는 그의 한국에서의 이름 ‘李花’에서 따왔다고 한다.
LA 한인타운에서 36년째 '이화 웨딩&한복'을 운영하는 로라 박 대표.
그런데 그의 욕심처럼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무작정 한국에 와서 한복 원단과 부자재 등 10만 달러어치를 구매해 미국에 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수입에 필요한 ‘HS코드’가 없다며 미국 당국이 전량 폐기 처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그는 수소문을 통해 한국 정부가 발급하는 코드라는 것을 알고,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 ‘HS코드’를 발급받았다. 당연히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복에 대해 코드를 받은 1호가 됐다.
한복을 더 배우고, 비즈니스 기회도 잡아보기 위해 그는 2010년 귀국해 8년간 살기도 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로 한국에서의 인기도 꽤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미국에 다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이만기가 진행하는 KBS ‘동네한바퀴’, ‘6시 내고향’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사랑을 받았다. LA코리아타운에서 36년간 한 업종으로, 주인이 한번도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 그야말로 ‘터줏대감’이 된 그는 이제 스스로 이민 역사가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가게에 손님은 뚝 끊겨 막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온라인 시장에 눈을 뜨는 기회로 만들었다. 하루는 원단을 집으로 가져와서 색동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올렸는데, 이를 본 외국인이 이를 구매하겠다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그때부터 액세서리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판매를 했다. 한복 외에 토탈 비즈니스를 하게 된 계기다.
'절대 색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로라 박 대표.
“한국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한복을 해서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한복이 이렇게 뜰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고, 명예는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니 이정도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이제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픈 책임감 같은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LA 중앙도서관에서 1년 한번씩 스쿨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갈증을 시원하게 풀 수는 없다.
자신만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줘야한다’고 말하는 그는 다른 방법의 전수도 기획하고 있다.
박 대표는 36년간 겪었던 한복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를 묶은 책 ‘아리랑’(가제)을 펴내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