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옥타 통상위원회(부회장 김성학)가 지난 4월2~3일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영월을 방문했다. 사진은 영월의 명소 중 하나인 선돌 전망대에서 굽어본 풍경.

영월군과 영월산업진흥원(원장 엄광열) 초청으로 영월을 방문한 월드옥타 통상위원회 회원들이 4월2일 저녁 영월관광센터에 마련된 만찬 자리에서 최명서 영월군수(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보름달이 휘영청 밤하늘에 걸린 지난 4월2일 오후 9시30분경.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의 유일한 영화관에 10여명의 재외동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시각, 120석 규모의 작은 시골 영화관의 관객은 동포들이 거의 전부다시피 해 극장을 통째로 전세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뒤 스크린에 영상이 비춰지고, 특별한 영화관람이 시작됐다.
요즘 대한민국을 울리고 있는 화제작 ‘왕과 사는 남자’를 그렇게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 밤, 사후 569년 뒤 후세의 가슴을 애잔하게 적시고 있는 ‘왕’의 고장 영월에서 예상치못하게 마주했다.
영화를 보기 앞서 그날 오후 작은 배를 타고 건넜던 청령포(淸泠浦)를 배경으로 비운의 왕 단종과 그를 모신 이 고장 사람 엄흥도를 중심으로 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스크린을 타고 숨가쁘게 전개됐다. 어리고 나약했던 단종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왕(王)’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극적으로 그려졌고 그 과정에 유배지 마을촌장 엄흥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상영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날 오후 청령포를 휘감아돌던 서강(西江)이 펼쳐지며 스크린은 내려지고, 함께 영화를 관람한 모두는 말없이 영화관을 나섰다. 여전히 달은 밝고, 활짝 핀 벚꽃이 인적없는 영월의 밤을 애잔하게 비추고 있었다.
영월의 명소 선돌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월드옥타 통상위원회 회원들.

청령포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절한 사랑을 나타내는 동상.
월드옥타(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 통상위원회(부회장 김성학) 회원 28명이 영월군과 재단법인 영월산업진흥원(원장 엄광열)의 초청으로 4월2~3일 1박2일 일정으로 영월을 방문해 단종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영월은 물론 인근 평창·정선 관내 기업들이 참여한 가운데 수출상담회를 열었다.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서울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제27차 수출상담회 및 2026 코리아 비즈니스 엑스포 강서’ 행사에 참가했던 회원들 가운데 일부가 영월 방문에 함께 한 것.
2일 오전 10시경. 강서구 마곡 머큐어호텔 앞에 영월에서 보낸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하고, 방문객들을 안내하기 위해 그 날 새벽 영월을 출발한 박태균 영월산업진흥원 기업지원실장이 버스에서 내렸다. 옥타 바이어들과 일일이 통성명을 한뒤 곧바로 마곡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만에 영월에 당도했다. 점심식사 장소인 영월의 토속 맛집 ‘산속의 친구’로 들어가는 초입에 도착하자, 엄광열 영월산업진흥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월 엄 씨인 그는 단종의 마지막을 함께 한 역사 속 실존인물 엄흥도의 후손으로, 외조부가 단종의 능인 장릉의 마지막 능지기였다고 곁에 있던 박태균 실장이 귀뜸해주었다.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않은 푸짐한 시골밥상으로 첫 환대를 받은 동포들은 엄광열 원장의 안내로, 굽어보는 경치가 일품인 ‘선돌’ 전망대를 거쳐 어린 단종의 영원한 안식처인 ‘장릉’에 도착했다. 해발 270m 구릉에 위치한 장릉은 왕릉이라고 하기엔 소박했다.
월드옥타 통상위원회의 영월방문을 기획한 엄광열 재단법인 영월산업진흥원장이 4월2일 현지 토속식당에 마련된 점심식사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인공이자 역사 속 실존인물인 엄흥도의 후손이다. 엄 원장 왼쪽은 김성학 월드옥타 통상전시 부회장.

해발 270m에 모셔진 단종임금의 능인 '장릉'이 멀찍이 바라보인다.
“조선 왕조 중에 가장 슬픈 역사 단종임금이 바로 저 위에 누워계신다”로 시작된 지역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장릉이 위치한 곳은 영월 엄 씨의 선산으로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산을 오르던 중 노루가 앉아있다가 도망을 가는 것을 보고 잠시 지게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노루가 앉았던 그 자리만 눈이 녹아 있더라, 다시 길을 나서려고 지게를 메려 하니 지게발이 땅에서 안떨어지기에 여기에 모시라는 자리구나 해서 몰래 파묻어드린 곳이 지금의 장릉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41년만인 숙종 28년(1698년)에 이르러 왕릉으로 복위됐고, 당시 ‘신교’라는 이가 음력 9월30일(양력 11월2일) 단종의 복위를 상소했는데, 그날이 후일 ‘영월 군민의 날’로 정해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왕릉에는 으레 있는 병풍석도, 난간석도, 문인석, 무석인도 없었다. 원래는 네 마리씩 있어야하는 호랑이, 양, 말 모양의 석호(石虎), 석양(石羊), 석마(石馬)가 그나마 두 마리씩 있었다. 대신에 강원 내륙산간 영월의 첩첩 산들이 능을 향해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
해질녘이 다가오고..서둘러 청령포로 이동했다.
나룻배가 오가는 청령포. 삼면을 휘감아돌며 서강(西江)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수령이 족히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들 사이로 단종의 유배지가 자리하고 있다.
물돌이동 지형의 청령포는 뒤로는 절벽이 막아섰고 삼면은 강이 휘돌아 흘러, 보기에도 고립무원(孤立無援)인 육지 속 섬. 멀찍이 나룻배 한 척이 그날 마지막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강변에 닿았고, 해가 떨어지기 전 우리 일행은 서둘러 배에 올랐다.
5분도 채 되지않아 나룻배가 건너편에 도착했고, 첫 발을 디딘 강변은 어린 단종의 마음을 헤아리듯 작은 조약돌로 쌓아올린 돌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단종이 불과 2개월도 지내지 않았다는 유배지로 가는 길은 휘어지듯 굽은 키큰 소나무들이 도열한 가운데, 군데군데 분홍빛 진달래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강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왕의 유배지’는 초가집 한 채와 기와 집 한 채, 그리고 단종 사후 241년 뒤 숙종이 내린 ‘단종유배지비(端宗流配地碑)’가 세워져 있었다. 기와지붕 아래 한 평 남짓한 방에 단종으로 보이는 작은 인물상이 서책을 펴고 있었다. 대청마루를 마주하고 건너평 방엔 낡은 용포가 쓸쓸히 걸려있었다.
일본, 홍콩, 대만, 러시아, 캐나다, 미국, 영국, 호주, 멀리 아르헨티나 등지서 온 동포들은 드문드문 나뉘어 왕의 유배지를 돌아보았다. 신기하게도 굽은 노송(老松) 한 그루가 담장을 넘어 왕의 처소를 향해 예를 갖추듯 허리를 절반 이상 구부리고 있었다. 약 600년 수령의 소나무로 몸을 굽혀 마치 단종의 한(恨) 섞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이라, ‘누군가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소나무’라는 의미의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처소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유배 당시 ‘누구도 이곳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치 말라’는 경고로 세운 표시석인 ‘금표(禁標)’가 서 있었다. 쓸쓸했다. 수령이 수백년은 됨직한 키큰 소나무들도, 초가집도, 기와집도, 분홍빛 진달래꽃 마저도. 이 모든 걸 휘감아 흐르는 해질녘 서강(西江)도..
<하편>에서 계속
단종의 유배지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월드옥타 통상위원회 회원들.

숙소인 동강시스타에서 바라본 영월의 첩첩 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