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중심 공간이던 약국이, 고관여 소비를 설계하는 뷰티 채널로 재편되고 있다
약국은 더 이상 처방을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다. 이제 약국은 제품을 ‘설명’하고, 성분을 ‘증명’하며, 소비를 ‘완성’하는 새로운 리테일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 소비자의 유입, 성분 중심의 구매 방식, 그리고 제약사 기반 더마코스메틱의 확장이 맞물리면서, 약국은 K-뷰티 유통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성수 레디영 약국 사진=김지선 기자
이는 감각적 현상이 아닌 수치로 입증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의료 소비에서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38.24%에서 2025년 59.11%로 급증하며 피부과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또한 같은 기간 외국인 의료 관광 지출액은 약 10배 증가해 5,618억 원 규모에 도달했고, 이 낙수효과는 약국 뷰티 소비로 직결됐다. 특히 명동 상권에서는 최근 2개월 사이 9곳의 신규 약국이 개설되며, 2025년 이후 총 18곳이 새롭게 들어서는 등 유통 지형 자체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현재 명동 내 약국은 약 40곳 수준이며, 이 중 과반이 뷰티 특화 매장이다.
레디영 약국 인스타그램
외국인 수요와 입지 전략이 만든 약국 리테일의 재정의
약국의 매출 구조는 근본적으로 전환됐다. 전통적인 동네 약국이 처방 조제료 비중이 70~80%에 달했던 반면, 명동의 뷰티 특화 약국은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일반 판매 비중이 동일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월평균 매출은 약 9223만 원으로 의원급을 상회한다. 특히 고객 구성의 절반 이상이 ‘목적형 구매’를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들은 단순 유입이 아닌, 특정 제품을 사기 위해 약국을 방문한다. 이 같은 변화로 약국은 ‘의약품 조제 공간’에서 ‘고관여 소비가 이뤄지는 전문 리테일 채널’로 역할이 확장됐다.
특히 메인 상권과 지하철 인근에 위치해 자연스러운 유입을 유도하고, 쇼핑 리스트 기반의 ‘목적형 소비’를 흡수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와 함께 기존 오프라인 외국인 매장 가운데 높은 인기를 보유한 올리브영 인근에 입점하는 등 공격적인 확장세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명동레디영약국은 올리브영 명동거리점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수레디영 약국 역시 올리브영N 성수 맞은편에 위치해 접근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가 수직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일부 매장은 면세 기계를 도입했다.
올리브영이 담지 못한 수요, 약국으로 이동
성수레디영 약국을 방문한 한 외국인 소비자는 “올리브영에 애크논 크림을 사러 갔지만 제품이 입점되어 있지 않다고해 약국을 찾게 됐다”며 “SNS를 통해 한국 약사의 추천 제품 콘텐츠가 크게 확산되면서 이를 보고 방문했다”고 밝혔다. 일부 약국 채널은 직접 SNS 계정을 운영하며 외국인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발행하고, 이를 주요 유입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올리브영 매장 관계자는 “노스카나, 애크논, D-판데놀 크림 등을 찾는 외국인 고객이 많다”며 “해당 제품들은 매장에 입점되어 있지 않아 약국으로 안내하거나 대체 상품을 추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K-뷰티 확산과 함께 ‘약사 추천템’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으나, 약사법에 따라 올리브영과 같은 유통 채널에서는 해당 제품을 취급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올리브영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성분을 낮추거나 변경해 ‘화장품’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고성분·고기능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흐름을 고려할 때 이는 소비자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약국 매장 내부 구성
또한 약국은 약사 면허를 보유한 전문가가 상주하며 복약지도를 제공해야 하는 공간으로, 전문성을 기반으로 고성분·고기능 제품을 큐레이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이라는 점에서 외국인 소비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명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김 모씨 는 “주 고객층은 동남아 관광객이 중심이며, 이들은 브랜드 스토리
보다 성분과 작용 원리에 대한 질문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레티놀, PDRN과 같은 고기능 성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단순 탐색이 아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목적 구매’ 성향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수익 구조 역시 기존 약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 모씨는 “일반의약품의 마진율은 9~15% 수준에 불과하고, 조제료는 정부 수가에 묶여 있어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반면 약국 전용 더마코스메틱은 30~40% 이상의 마진 확보가 가능해 수익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약사의 상담이 결합된 큐레이션 판매 방식은 가격 저항을 낮추는 핵심 장치로 작용한다. 단순 진열 판매가 아닌 ‘설명 기반 소비’ 구조가 형성되면서, 소비자는 가격이 아닌 효능과 적합성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약국의 전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흐름은 제약사의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동국제약의 경우 화장품을 포함한 헬스케어 매출 비중이 30%를 돌파하며 기존 의약품 매출을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를 기록했다. 약국이 단순 판매 채널을 넘어 ‘수익 모델 혁신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유통 방식 역시 빠르게 드럭스토어화되고 있다. 기존의 카운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오픈형 매대와 테스터 존을 도입하고, ‘여드름’, ‘재생’, ‘미백’ 등 성분과 효능을 기준으로 한 큐레이션이 강화되는 흐름이다.
매대 구성 또한 전통적인 약품 진열 방식이 아닌 드럭스토어의 카테고리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비교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구조는, 약국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탐색과 선택’이 이루어지는 리테일 환경으로 재정의한다.
약국 매장 매대가 드럭스토어화로 변화했다.
전문성·희소성 결합된 고관여 유통 전략
제약사 기반 더마코스메틱의 신뢰는 마데카솔, 노스카나 등 기존 의약품 기술을 기반으로 한 화장품은 ‘효과가 검증됐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특히 약국 전용 유통 전략은 전문성과 희소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했다.
약국 채널의 성장은 특정 브랜드들의 전략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동국제약의 센텔리안24 관계자는 “동국제약의 피부과학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되는 더마 코스메틱의 신규 브랜드 론칭 및 유통채널 확장의 일환으로 약국 채널 입점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센텔리안24을 전개하는 동국제약은 작년 3월 약국 전용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인 ‘마데카파마시아’를 론칭했다.
메디큐브는 PDRN 기반 고기능 앰플과 뷰티 디바이스를 결합하며 약국의 ‘전문성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누적 판매 5,000만 개를 돌파한 PDRN 라인은 병원 시술 대체재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에이피알(APR)은 약국 전담 B2B 조직을 확충하며 유통망 확대에 나섰고, 이는 약국이 단순 판매 채널이 아닌 ‘고관여 소비자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센텔리안24의 관계자는 “약국이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처가 된 만큼, 약국이 단순 매약을 넘어 헬스케어 통합 존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지속적인 약국 뷰티 카테고리의 성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약국은 제품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상담과 체험이 결합된 고관여 소비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약국은 이제 전문성을 기반으로 신뢰와 소비를 동시에 설계하는 채널로 자리 잡으며, K-뷰티 유통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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