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동 사태에 따라 의료기기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공급 불안이 국내 의료기기 업계를 정면으로 흔들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기반 원료 가격 급등과 물류 차질, 환율 상승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산·유통·수출 전반에 걸쳐 의료기기 경영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일회용 주사기, 수액팩, 의료용 장갑 등 필수 소모품부터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영향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의료 현장과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일부 업체들은 의료기관에 공문을 발송하고 일회용 주사기와 주삿바늘 가격을 최대 20%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라텍스 및 니트릴 장갑 역시 30% 이상 인상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수액팩과 멸균 포장재 등 주요 품목에서도 가격 상승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구조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원재료다. 의료 소모품 대부분은 원유에서 추출되는 나프타 기반 합성수지로 제작되는데 중동 지역 긴장으로 원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원재료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나프타 도입 경로 자체가 흔들리고,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주요 소재 가격이 잇따라 인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원가 부담은 제조업체를 넘어 유통사와 의료기관까지 빠르게 전가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가 체계상 주사 행위 비용이 일정 수준으로 고정돼 있어 의료기관은 상승한 소모품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현장에서는 사재기 움직임도 감지된다. 일부 병원은 공급 불안에 대비해 두 달 이상 사용할 의료기기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료기기 전문 유통 채널에서는 주문 폭증으로 정상 출고가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의료기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요가 단기간에 몰리면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한 달 내 일부 품목에서 실제 품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생산 차질 가능성이다. 포장재 부족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생산 자체를 멈출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한다. 의료기기는 멸균 포장 없이는 유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름·멸균지 등 포장재 수급이 막히면 완제품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포장재 업체들은 재고가 한 달 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며 4월 이후를 고비로 보고 있다.
수출 기업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중동 지역은 최근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주요 성장 시장으로 부상했지만 이번 사태로 수출 계약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현지 바이어와의 계약이 보류되거나 대금 회수가 늦어지면서 기업 자금 흐름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현지 입찰 참여가 어려워지면서 향후 사업 기회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지자체와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기 수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매점매석과 같은 유통 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포장재 변경이나 제조소 추가와 관련된 허가·신고 절차를 신속 처리해 공급 차질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의료계 주요 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현장의 수급 상황과 대응 방향을 점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기기 기업을 대상으로 물류비 지원과 금융 지원을 병행하며 긴급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지원만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리스크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기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는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제조사와 유통사, 수출 기업 모두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며 "나프타 등 핵심 원료를 의료 분야에 우선 배정하는 등 보다 강도 높은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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