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 기업가 지준의 ㈜루텍스페이스 대표가 충북 음성 공장내 창호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황복희 기자]
너른 들판 사이로 오밀조밀 제조공장이 들어선, 충북 음성군 금왕읍 산업단지. 이곳에 중국 조선족 기업가가 공장을 세웠다고 하여 지난 2월27일 서울에서 차로 2시간반 걸려 주인공을 만나러 갔다.
지준의 ㈜루텍스페이스 대표가 그다. 산업단지 초입에서 막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이라는 지 대표의 안내로, 보기에 지은지 얼마안된 공장 부지내 사무동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 약간의 힘을 실었을 뿐인데 입구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이래봬도 자기부상 기술을 적용한 문입니다. 제조단가가 너무 높아 판매는 못하고 전시용으로 설치만 해두었습니다.”
지 대표의 설명에 무심코 지나온 문을 다시한번 훑어보았다. 로비에 지 대표가 생산하는 시스템창호 전시장이 마련돼 있었다. 원청인 현대L&C의 지원으로 조성됐다는 전시장은 버튼만 누르면 대형 유리 통창이 아래로 자동으로 내려오는 등 최신 인테리어 기술이 적용된 각종 시스템 창호들을 직접 작동해 볼 수가 있었다. 주부인 기자의 눈에 현재 살고있는 집에다 적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처음보는 창호 기술도 있었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준의 대표와 마주했다.
인터뷰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며 이어진 그의 인생 및 사업 이야기는 순탄하게 살아왔을 법한 겉모습과는 달리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한국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여정이었다. 1973년생, 쉰셋의 나이에 비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흔치않은 경험들로 가득했다.
연길 소년, 소련 해체의 현장에...
지준의 대표의 고향은 중국 지린성 연길이다. 부친은 1980년대 연길에서 사업을 하며 지역에서 ‘만원호(萬元戶)’로 불릴 만큼 성공한 인물이었다. 당시 농촌에서 만 위안을 가진 가정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을 의미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개인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압박을 받기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지 대표는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방황기를 지나 열아홉 나이에 큰 결심을 한다. 어머니를 설득해 1991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의 격변기였다.
그곳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나게 된다. 소련 붕괴 직후 중앙아시아 경제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화폐 체계도 불안정했다.
지 대표는 이 틈에서 구 화폐와 신 화폐 간 환율 차이를 이용해 돈을 교환하며 거래를 반복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판단해 당시 7만 루블을 가지고 화폐를 굴리기 시작했다. 알마티와 러시아를 오가며 환전 거래를 이어갔고, 갈수록 환율 차이가 커지면서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과 넉달 사이에 수백만 달러를 만지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환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서 돈이 커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큰 금액을 손에 쥐게 된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약 1년간 생활했다. 돈이 너무 많아지자 보디가드까지 고용해야 했다. 거기서 별장도 사고, 차도 샀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돈을 침대 위에 펼쳐놓고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돈을 지키는 것이 버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돈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두려워졌습니다.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지가 더 큰 고민이었죠.”
1990년대 후반, 중국으로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당시 번 돈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자금이 들려져 있었다. 남은 자금으로 고향 연길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연길에서 농산물 무역을 시작한 그는 이후 단둥으로 거점을 옮겨 한국으로 농산물을 수출했다. 하지만 수출 과정에서 거래 사고가 발생해 물량이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되자, 다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톈진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국 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다름아닌 창호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여기서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준의 대표가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시스템 창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000평 부지에 조성된 ㈜루텍스페이스 음성공장 모습.
프레스 두 대로 시작한 자동차 부품 공장
2004년 현대자동차가 베이징에 진출하면서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 수요가 급증하자, 지 대표는 창업을 결심했다. 프레스 기계 두 대로 시작한 사업은 빠르게 커나갔다. 프레스 설비가 늘고 컴퓨터로 금속을 정밀 가공하는 CNC 가공 설비도 추가됐다. 나중에 공장은 프레스 30대, CNC 설비 100대 규모로 성장했다. 당시 현대차 2~3차 벤더로 자동차 부품을 공급했다. 이 사업은 약 15년 동안 이어졌는데, 2014년은 현대차가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던 시기였다.
“그때 현대·기아차 중국 판매가 170만 대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 판매가 감소하면서 협력업체들도 영향을 받았다. 지 대표는 2018년 공장 지분을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을 고민했다. 그때 택한 분야가 창호 산업이었다. 창호 사업은 과거 직장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분야였고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는 동안에도 창호 하드웨어 납품은 계속 유지하고 있던 차였다.
그가 창호 산업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중국 건설·인테리어 시장의 빠른 성장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아파트 건설과 주거 인테리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지 대표는 이러한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창호와 건축자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다.
“중국에서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대부분 창호나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공사합니다. 인테리어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죠.”
대부분 기업들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던 시기에 그는 반대로 움직였다. 중국에서 제조업을 하던 기업가가 한국에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흔치않은 선택이었다. 배경에는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오랜 한국인 사업 파트너가 있었다.
최종 결정에 앞서 지 대표는 한국 창호 산업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자동화가 많이 안 돼 있었습니다. 중국 설비와 기술을 적용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2018년 그는 충북 음성에 공장 부지를 매입했고, 이후 코로나 시기 한국에 장기간 머물면서 사업 계획은 더욱 구체화됐다.
“출장 왔다가 하늘길이 막혀서 한국에 6~7개월 머물렀습니다. 그때 한국 시장을 자세히 보게 됐습니다.”
2021년 약 5000평 부지에 공장 건설이 시작돼 그 해 작은 동 2개가 완공됐고, 큰 공장은 2024년 준공됐다.
창호, AI·스마트홈 산업으로 진화
현재 ㈜루텍스페이스의 주요 납품처는 현대L&C다. 창호 제품을 생산해 건설 현장으로 직접 납품한다. 지 대표는 창호 산업이 앞으로 크게 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집은 하나의 시스템이 됩니다. 창호, 가전, 스마트홈이 모두 연결되는거죠.”
일본과 미국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카자흐스탄-중국-한국. 국경을 넘나들며 갖은 우여곡절 속에 사업 인생을 걸어온 그는 그 과정에서 터득한 철학이 있다.
“쉽게 번 돈은 결국 쉽게 나갑니다. 사업은 성실하게 차근차근 해야 합니다.”
연길 소년이었던 그는 동북아와 중앙아시아를 돌아 이제 한국에 공장을 세운 제조 기업가가 됐다.
“세상을 넓게 보면 기회도 많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새로운 제조업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 대표는 건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리모델링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기존 건설사 중심의 B2B 납품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시장으로 사업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연길 소년’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