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찾았다. 관광객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의 유선형 외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떠들썩하다. 그런데 그 떠들썩한 풍경 한구석에 조용한 공간이 있다. 화려한 건물들 사이를 조금만 걸어가면 돌로 쌓은 아치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수문인 이간수문이다.
조선시대 한양은 자연 지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에서 내려온 물은 모두 청계천으로 모였고, 다시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는 도성 안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한양도성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성문뿐 아니라 물이 빠져나가는 문, 즉 수문(水門)이 필요했다. 수문은 한양의 물길을 조절하는 시설로, 도성 안의 물이 자연스럽게 성 밖으로 흐르도록 만든 도시 배수 시스템의 핵심 구조였다. 한양도성에는 대표적으로 두 개의 수문이 있었다. 청계천 본류가 흐르던 다섯 칸짜리 오간수문(五間水門)과 남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지나던 두 칸짜리 이간수문(二間水門)이 그것이다.
이간수문은 남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지나던 이간수문은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다. 이곳에는 한때 동대문운동장이 자리했고, 수문은 지하 깊숙이 묻힌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다 2008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고 DDP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지하 약 3.7m 아래에서 이간수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아치형 물길과 돌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발견은 DDP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적 보존을 위해 설계 일부가 조정됐고, 그 결과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됐다.
이간수문 앞에 서면 돌로 쌓은 반원형 아치 두 개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하나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돌 구조는 조선시대 토목 기술의 수준을 보여준다. 발굴 당시의 모습과 구조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함께 설치돼 있어, 이간수문의 역사와 발굴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백 년 전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 수문을 지나 도성 밖으로 흘러갔을 모습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서울과는 또 다른 한양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묘한 대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한쪽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가 있고,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 돌 아치 구조물인 이간수문이 자리한다. 수백 년 전 유적과 현대 건축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DDP를 찾는 시민이라면 건물만 둘러보고 돌아가기보다 공원 한구석에 자리한 이간수문 앞에도 잠시 서보기를 권한다. 조용히 남아 있는 돌 아치 앞에서 서울의 또 다른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 도심과 함께 보이는 이간수문 ©장신자

두 개의 아치 구조가 남아 있는 이간수문 ©장신자

이간수문 성벽 돌에 남아 있는 흔적 ©장신자

이간수문 내부에서 바라본 돌 아치 구조 ©장신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발굴 유적 안내 조명 ©장신자

도심 속에 보존된 조선시대 수문, 이간수문 전경 ©장신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는 한쪽에는 DDP가, 다른 한쪽에는 이간수문이 자리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의 묘한 대비를 느낄 수 있다. ©장신자

DDP 내부 통로의 미래적인 공간 디자인 ©장신자

DDP 내부 곡선 계단 공간 ©장신자

DDP 야외 공간에서 시민들이 즐기는 거리 피아노 ©장신자

DDP 외부 광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신자
○ 위치 : 서울시 중구 을지로 281
○ 교통 :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에서 295m
○ 누리집
○ 위치 : 서울시 중구 을지로 281
○ 교통 :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에서 334m

시민기자 장신자
사진과 현장 취재로 서울의 정책과 일상을 쉽게 전하고, 생활정보를 친절히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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