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촉발된 이란 전쟁이 세계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마비시키면서 글로벌 섬유패션 산업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선사들의 항로 중단과 전쟁 할증료 부과, 항공 화물 차질, 럭셔리 브랜드 매장 폐쇄까지 이어지며 패션 산업의 공급망과 소비 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는 양상이다.
이란 전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글로벌 섬유패션산업에 타격이 예상된다. 사진=AI생성이미지(ChatGPT)
호르무즈 해협 봉쇄 현실화…글로벌 물류 병목 확산
현재 중동 해역의 긴장은 단순한 군사 충돌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해상 물류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 선박운행정보업체 케플러(Kpler)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과량은 88~100% 감소했고, 약 3000척의 선박이 대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선박 공격과 통항 위험이 커지면서 일부 선사들은 항로 자체를 중단하거나 우회하고 있다.
보험 시장도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주요 해상 보험사들이 걸프 해역에 대한 전쟁 위험 담보를 취소하거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면서 선박 운항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선박은 보험 조건 확보가 어려워 통과 자체를 포기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항공 화물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3월 5일 로이터(Reuters)는 두바이·도하 등 핵심 허브의 항공 차질로 인해 글로벌 항공화물 공급능력이 22% 감소했다고 전했다. 중동 항공사들이 세계 항공화물 시장의 13%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패션업계가 긴급 오더를 해상에서 항공으로 돌리는 전통적 우회전략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을 뜻한다.
호르무즈 해협. 사진=게티이미지
선사·물류기업, 예약 중단과 전쟁 할증료로 대응
글로벌 해운사들은 중동 항로에 대해 잇따라 비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 봉쇄되진 않았지만 부분 운영과 강력한 보안 제한이 걸린 상태다. 세계 2위 컨테이너 해운사 머스크(Maersk)의 3월 4일 항만 업데이트를 보면 바레인은 보안검색 하 제한 운영, 오만 두큼은 운영 중단, 소하르·살랄라는 운영 중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 메디터레이니언 쉬핑 컴퍼니(MSC)는 아라비아만 향 화물에 대해 종점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이미 선적된 화물이라도 기존 운송 조건으로 목적지까지 운송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단순 운임 인상을 넘어선 강력한 조치로 평가된다.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중동 지역 화물에 대해 약 2000~4000 달러 규모의 긴급 충돌 할증료를 적용하고 있다.
머스크 역시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와 걸프 지역 간 신규 화물 예약을 중단했으며, UAE·오만·카타르 등 중동 주요 항로에서는 리퍼 화물 예약을 전면 중단했다. 동시에 긴급 운임 인상 조치로 약 1800~3000 달러 수준의 추가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Hapag-Lloyd)도 상부 걸프 및 페르시아만 항로에 대해 컨테이너당 1500달러 전쟁위험 할증료를 적용했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글로벌 섬유패션 산업의 대표적인 공급망 구조인 아시아 생산·서방 소비 체계 전체가 비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글로벌 럭셔리 매출의 약 5~6%를 차지하는 중동 지역에서 매장 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럭셔리 브랜드도 매장 폐쇄…중동 소비시장 충격
패션·럭셔리업계에서는 중동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수준을 넘어 매장 폐쇄, 직원 최소 운영, 출장 중단, 이커머스 배송 중단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두바이 등 주요 쇼핑 허브에서 많은 매장이 문을 닫거나 최소 인력만 남긴 채 운영되고 있다.
럭셔리 그룹 케어링(Kering)은 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매장을 일시 폐쇄했고, 중동 출장도 중단했다. 중동 최대 럭셔리 유통기업인 샬룹 그룹(Chalhoub Group) 역시 바레인 매장을 닫고 UAE·사우디·요르단 등에서는 최소 인력 중심의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샬룹은 베르사체, 지미추, 세포라 등 브랜드를 포함해 지역 내 약 900개 매장을 운영하는 만큼, 이 조치는 단일 브랜드 대응이 아니라 중동 럭셔리 유통 생태계 전반의 방어모드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아마존도 아부다비 풀필먼트 운영을 닫고 역내 배송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동은 최근 럭셔리 업계의 몇 안 되는 성장 축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로이터는 중동이 글로벌 럭셔리 매출의 약 5~6%를 차지하고, UAE가 역내 매출의 절반가량을 담당한다고 전했다. 또 리치몬트와 제냐는 각각 전체 매출의 약 9%를 중동에서 올리는 것으로 분석돼, 이번 충격에 가장 취약한 기업군으로 지목됐다.
더 중요한 부분은 라마단 소비 시즌 차질이다. 로이터는 이번 충돌이 걸프 부유층의 해외 쇼핑 이동과 지역 내 소비를 동시에 흔들며, 원래 회복 기대를 걸었던 럭셔리 업계에 추가 부담을 준다고 짚었다. 즉 이번 위기는 단순한 중동 현지 매출 감소가 아니라, 중동 관광객의 유럽·아시아 쇼핑 수요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패션 공급망 전략, ‘저원가’에서 ‘리스크 관리’로 이동
현재 이란 전쟁이 글로벌 섬유패션 무역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전쟁 할증료와 물류 지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그 파급력은 단순한 운임 상승을 넘어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재편, 소비 가격 인상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패션 기업들의 공급망 전략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직송 물류 대신 분산 운송 전략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걸프 직항 대신 여러 항로를 활용한 분할 운송이나 환적 루트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변화는 특수 화물 관리 강화다. 현재 선사들이 리퍼 컨테이너나 특수 장비에 더 높은 할증료를 적용하면서 일부 기능성 소재나 화학 원료 조달 비용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남아시아 생산기지 역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파키스탄 등 주요 의류 생산국은 중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물류와 환적 네트워크 비중이 높은 만큼 납기 지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항공 화물도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항공 운송 능력이 약 20% 이상 감소하면서 긴급 물량을 항공으로 전환하는 기존 전략도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패션산업이 이미 겪고 있는 홍해 물류 위기 이후 두 번째 공급망 충격으로 평가된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브랜드들은 공급망 다변화, 생산기지 분산, 재고 확보 및 근거리 생산(nearshoring) 확대 같은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패션 기업들이 강조해온 ‘저비용 보다 안전한 공급망’ 전략이 다시 강화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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