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조선이 보이는 호르무즈 해협 해상 장면.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사망 이후 중동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위험 수역’으로 급랭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선박 운항 정보업체 자료를 인용해 2월 28일(현지시간) 밤 기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이 평시 대비 약 70%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군부는 같은 날 해당 해역이 “현재로서는 불안전하다”고 경고했다.
세계 석유 물동량 20~30% 통과…“에너지 동맥” 흔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30%, 액화천연가스(LNG)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LNG 수출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경유한다.
선박 경로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일부 유조선은 유턴하거나 오만만 인근 해상에 정지했고, 일부는 통과를 강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란 해역에는 유조선 55척이 머물고 있으며 이 중 18척은 원유를 적재한 상태로 전해졌다.
이란은 OPEC 내 네 번째 규모의 산유국으로, 국제 제재 속에서도 하루 약 33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150만 배럴을 수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의 상당 부분은 중국으로 향한다.
하르그 섬·걸프 인프라 ‘최대 변수’…최악 시나리오 거론
시장에서는 이란의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 섬 터미널의 안전 여부에도 주목하고 있다. 하르그 섬은 이란 해외 원유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물류 허브로, 하루 200만 배럴 이상을 선적해온 시설로 알려졌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만약 이란이 타 산유국의 유전이나 수출 터미널 등 기반 시설을 공격할 경우 걸프 지역의 비(非)이란산 원유 수출 물량 중 상당 부분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이는 국제 유가 급등으로 직결될 수 있는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주도의 공급 유지 노력과 산유국들의 증산 여력 등을 근거로 전면적 장기 봉쇄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은 최근 수출 물량을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호르무즈 해협 지리 지도. 이란과 오만 사이 주요 수송 경로 표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전략적 수송로로, 세계 원유 및 LNG 수출의 약 20~30%가 통과하는 에너지 공급의 핵심 ‘목줄’이다.
유가 12% 급등…환율·운임·보험료 동반 압박
미국의 이란 공격 직후 개인 투자자용 거래 상품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5달러 선까지 오르며 직전 종가 대비 약 12% 상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시장 추적 업체들은 단기적으로 유가가 5~10% 상승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원유 수송 차질 우려는 해상보험료와 운임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해운·정유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은 유가와 환율 동반 상승 시 비용 부담이 확대된다. 항공사는 유류비와 리스료 등 주요 비용을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여서 환율 상승 시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韓, 중동 의존도 69%…“단기 완충, 장기화는 리스크”
한국은 지난해 기준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69.1%에 달하고,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협이 장기간 봉쇄될 경우 원유 도입 안정성과 경제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와 민간을 합쳐 약 7개월 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어 단기 충격은 완충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원유 수입단가 상승→무역수지 악화→기업 원가 상승’의 연쇄 효과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2월 한국 수출은 674억5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9.0% 증가하며 역대 2월 최대치를 기록했고, 반도체 수출은 251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경우 연간 약 100억 달러의 수입 증가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어, 수출 ‘슈퍼사이클’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메네이 사망 이후 급랭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물류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기적 완충 장치가 작동하더라도, 사태의 확전·장기화 여부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