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연방대법원 전경.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전 세계 대상 관세 조치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면서, 미국발 통상 불확실성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301·122조 등 대체 법률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밝혀, 국내 산업계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전 세계 대상 관세 조치에 대해 6대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의회의 명확한 승인 없이 대통령이 무제한적으로 관세를 부과·변경할 수 있도록 IEEPA를 해석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관세 부과 권한이 헌법상 의회의 고유 권한(‘power of the purse’)임을 재확인했다.
이번 사건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성격의 조치와 ▲멕시코·캐나다·중국에 대해 펜타닐 유입 책임을 이유로 부과한 관세 등 두 유형이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1977년 제정된 IEEPA가 이 같은 광범위한 관세를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미 징수된 관세의 환급 여부에 대해서는 명시적 판단을 하지 않아, 하급심에서 추가 소송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무역법으로 계속 간다”…122조 ‘전 세계 10%’ 선언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대법원 결정은 틀렸다”며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301·122조, 관세법 338조 등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10% 관세 부과안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무역법 122조는 국제수지 악화 등 긴급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최대 150일간 관세 또는 수입할당 조치를 허용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기한 연장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해, 정치적 변수에 따라 실행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대체 법률을 활용하더라도 절차적 제약과 추가 소송 가능성이 커, 과거와 같은 광범위한 관세를 신속히 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관세 관련 기자회견. 트럼프 대통령이 판결 직후 무역법 대체 대응을 발표하는 모습.
韓 산업 영향…자동차·철강·배터리 ‘직간접 변수’
이번 판결은 단기적으로는 관세 리스크 완화 기대를 낳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체입법 카드로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존한다는 평가다.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업종별로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부품) 미국은 한국 자동차 최대 수출 시장이다. 트럼프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0% 임시 관세를 추진하면서, 한미 FTA 체계 아래에서도 실제 적용 범위와 예외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완성차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핵심 부품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철강·금속)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한국은 과거 쿼터(물량 제한) 적용을 받은 바 있어, 대체 법률이 재가동될 경우 업계 부담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배터리·반도체) 직접 관세 대상이 아니더라도, 미·중 통상 긴장이 재점화될 경우 공급망 재편 압박이 강화될 수 있다.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린 국내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으나, 한국 내 수출 물량에는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중소·중견 수출기업) 대기업 대비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 통관 지연, 관세 환급 소송 등 간접 리스크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다. 관세 부과와 철회가 반복될 경우 계약 단가와 납기 관리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금융시장 반응과 통상환경 장기 변수
판결 직후 뉴욕증시는 소폭 상승했고, 무역 관련 종목이 강세를 보였다. 달러는 약세를 보였고,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4%대를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나타났다. 금·은 가격은 일시 급락 후 반등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위헌 제동’이 시장 불확실성을 일부 완화했지만,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도 논란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대체 법률을 활용한 관세 재부과, 의회 승인 여부, 하급심 환급 소송 등 복합 변수가 얽히면서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동맹국까지 포함한 10%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교역 질서 전반이 다시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미국 행정부의 통상 권한 범위를 재정립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 법률을 통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이상, 통상 리스크가 즉각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산업계로선 ▲미 의회의 입법 동향 ▲대체 관세의 적용 범위와 기간 ▲관세 환급 소송 결과 등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은 관세 전면 철회가 아니라, 미국 통상정책의 법적·정치적 재조정의 출발점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 역시 가격 경쟁력 확보, 현지화 전략 강화, 공급망 다변화 등 중장기 대응 전략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