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라네즈·이니스프리 등 주요 브랜드들의 해외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뷰티 산업의 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 중심의 기존 확장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고, 글로벌 시장 다변화와 수익 구조 재설계가 주요 기업들의 공통 과제로 떠올랐다.
레거시 기업들이 체질 개선을 통한 방어 전략에 나서는 사이, 신흥 플레이어들은 공격적인 확장 전략으로 시장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 전반의 고성장 기조 속에서 ‘누가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경쟁의 기준으로 부상했다.
뷰티 업계 ‘빅2’의 지형이 바뀔 수 있을지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뷰티 왕조’의 사업구조 대전환...체질 개선 국면 진입
아모레퍼시픽은 실적 회복과 함께 전략적 전환을 가시화하고 있다. 2025년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50억 원, 영업이익 737억 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1.1%, 1673% 증가했다. 국내와 해외 시장이 동시에 성장했다.
특히 2024년 이후 기존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일본 중심으로 수출과 투자를 다변화하며 리스크 분산에 나섰다. 설화수·라네즈·이니스프리 등 주요 브랜드를 미국·유럽 이커머스에 입점시키고, 설화수는 2023년 상반기부터 글로벌 소비자를 겨냥한 리브랜딩을 단행하며 로고를 영어로 변경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은 전략적 투자자 역할을 수행하는 CVC 조직을 통해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에도 힘을 싣고 있다. 2021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코스알엑스 지분을 단계적으로 추가 인수했으며, 2023년에는 자회사로 편입했다. 해당 거래는 아모레퍼시픽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유럽 등으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일정 기간 일부 지분에 선투자한 뒤 성과를 검증하며 잔여 지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수 대상 기업의 성장성을 확인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접근법이었다. 2022년에는 미국 럭셔리 클린 뷰티 브랜드 타타하퍼를 인수하며 글로벌 프리미엄 뷰티 포트폴리오도 강화했다.
전통 기업들의 인디 브랜드 인수는 자체 브랜드 중심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성장 가능성과 해외 경쟁력이 검증된 외부 브랜드를 포트폴리오로 편입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온라인과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인디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흐름을 감안할 때, 인디 브랜드를 겨냥한 M&A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LG생활건강 뷰티사업부가 지난 1월 일부 브랜드에 대한 가격인상을 발표했다.
LG생활건강의 뷰티 사업부는 2025년 연간 영업손실 976억 원을 기록했으며, 4분기에는 매출 17% 감소와 함께 814억 원의 영업손실로 분기 기준 첫 적자를 냈다. 전사 연결 기준으로는 연간 1707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전년 대비 60% 이상의 감소율을 보였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기존의 시스템에서 빠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성장의 핵심이었던 중국 면세·단독 채널 수요 급감이 실적 악화로 직결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힌스를 운영하는 비바웨이브 지분 75%를 취득했다.
동시에 토리든 인수설도 부상했다. 토리든은 2015년 론칭 이후 2024년 매출 186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76% 성장했고, 지난 해 발표된 올리브영 연매출 1000억 원 브랜드 6곳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분 인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익성 개선을 위해 2026년 1월부터 오휘·숨37°·빌리프·CNP 등 중·프리미엄 라인을 중심으로 평균 5.6% 수준의 가격 인상도 단행했다. 브랜드 전면 인상이 아닌 고객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를 선별적으로 조정하여 판매량 확대보다는 수익성 방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원·부자재·인건비 상승이 이유로 꼽혔다. 동시에 희망퇴직과 조직 개편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면세점·백화점 판촉 인력 희망퇴직, 화장품 사업부 5개 축 재편, ‘네오 뷰티 사업부’ 신설 등 조직 전반의 슬림화와 책임 경영 강화도 병행하고 있다.
‘빅2’ 권력 교체 조짐...뷰티 신흥 강자의 빠른 부상
기존 ‘빅2’ 뷰티 기업이 업계 과도기를 맞이하며 여러 변화를 거치고 있는 가운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新 빅2’ 기업으로 에이피알(APR)과 구다이글로벌이 거론되고 있다.
에이피알 2025년 경영실적
에이피알은 2025년 8월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국내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2025년 연매출은 1조5000억 원을 돌파했고, 전년 대비 2배 성장하며 11년 동안 연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1조2000억 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미국은 얼타뷰티를 축으로 오프라인 확장을 이어가고 있고, 일본은 디바이스와 현지 특화 K-뷰티 전략을 기반으로 한 추가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유럽 역시 대형 리테일과의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의 공격적인 M&A보다는 안티에이징을 핵심 축으로 삼으며 꾸준한 확장세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병원용 EBD(Exosome-Based Delivery, 유효 성분을 엑소좀을 매개로 전달하는 기술) 제품 2종을 하반기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의 로레알 그룹’이라 불리는 구다이글로벌은 ‘확장형 M&A’의 대표 주자다. 중동·인도를 차세대 성장 지대로 설정하고, 지역별 전담 팀 체제를 도입해 시장 단위로 전략을 세분화했다. 인도·서남아 전담 인력을 채용해 유통 연계와 현지 캠페인 기획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플래그십과 B2B 강화를 위해 영업 조직을 확대했다.
특히 브랜드가 아닌 ‘유통’에 대한 M&A가 눈에 띈다. 최근 삼정KPMG 출신 최재호 대표가 설립한 K-뷰티 유통사 한성USA를 인수하며 미국 내 밸류 체인을 수직 확장했다. 한성USA는 1년 만에 매출이 약 900억 원 증가했으며, IPO를 앞둔 구다이글로벌의 기업가치 극대화 전략과 맞물린 행보로 보인다.
2025년에는 라운드랩을 전개하는 서린컴퍼니 지분을 약 6000억 원에 인수했으며, 2024년에는 크레이버(티르티르·스킨1004) 인수 등 공격적인 투자로 몸집을 크게 불렸다. 최근 ‘더함파트너스’와 구성한 컨소시엄이 스킨푸드 인수전에서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면서 1300~1500억 원 수준으로 인수했다. 인수자금 확보를 위해 전환사채 8000억 원을 발행했으며, 3년 내 IPO를 조건으로 자금 조달을 마쳤다.
구다이글로벌은 상장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을 선택하며 최근 IPO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번 선택에는 ‘구다이글로벌의 성장 스토리‘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 국내 최대 수준의 IPO 딜에 대한 소화 경험 그리고 미래에셋증권의 달바글로벌 상장의 성공적인 사례가 선택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주관사단에는 NH투자증권,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모건스탠리 등 국내•외 증건사가 합류했다.
카테고리 확장과 물류 확장…‘실적형 성장’에 속도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창립 30주년을 맞아 인수합병과 지분 투자를 통해 패션·코스메틱 전반의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화장품 부문에서는 신규 카테고리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설정했다.
2024년 8월 어뮤즈를 713억 원에 인수한 이후 관련 매출이 빠르게 증가했으며, 글로벌 사업 역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패션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뷰티를 차세대 핵심 성장 축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연작·비디비치 등 기존에 자체 운영해온 브랜드와 함께, 새롭게 인수한 어뮤즈를 중심으로 뷰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수·스킨케어·메이크업·헤어·바디 등 전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폭넓은 뷰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어뮤즈 인수 역시 이러한 포트폴리오 강화 전략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실리콘투는 유통·물류 역량을 앞세운 실적 중심의 확장을 선택했다. 국내 브랜드 제품을 해외 시장에 공급하는 구조로, 단순 중개를 넘어 물류·통관·재고 관리·현지 유통·마케팅까지 일괄 수행하는 K-뷰티 전문 유통사다. 현지 벤더 및 리테일사와 직접 거래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구축한 글로벌 유통 인프라는 실리콘투의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실리콘투는 2025년 4분기 매출 약 2800억 원을 기록하며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미국 시장 회복과 유럽 지역 성장에 이어 중동을 새로운 핵심 거점으로 설정하며 지역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 물류 정상화와 재고 확보가 마무리되면서, 2026년 1분기부터는 단순 진출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실적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실리콘투의 주요 매출원 중 하나인 스킨케어 브랜드 ‘조선미녀’의 북미 유통권이 구다이글로벌이 인수한 한성USA로 이전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변수가 부각되고 있다. 조선미녀는 실리콘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브랜드로, 해당 이슈는 미국 시장 내 영향력 변화와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우려 속에서 실리콘투 주가는 고객사 이탈 가능성과 미국 내 K-뷰티 유통 경쟁 심화 우려가 겹치며 지난 3일 11.8% 급락했다.
그러나 증권가는 우려가 과도하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KB증권은 실리콘투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며, 단기적인 고객사 변수보다 실리콘투가 보유한 유통·물류 기반의 구조적 경쟁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성, 즉 ‘기초 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고성장 국면의 수익성 한계...‘질적’ 성장 위한 공통 과제
이들 모두의 공통 과제는 분명하다. 이제 K-뷰티의 경쟁은 단순한 매출 확대를 넘어섰다. 주요 기업 대부분이 외형 성장은 이어가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원·부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환율 변동과 원가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고, 달러 결제 기반의 글로벌 마케팅 비용까지 겹치며 수익성은 구조적으로 압박받는 국면이다.
후발 K-뷰티 브랜드와 현지 로컬 브랜드의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가격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판매량 확대만으로는 마진을 방어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수출 확대와 함께 원료·공급망 내재화, 유통 구조 개선을 병행하지 못할 경우 고성장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K-뷰티는 얼마나 빨리 크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남기느냐가 기업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며 “질적 성장 전략을 구축하지 못한 기업은 고성장 국면 이후 빠르게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Tag#뷰티#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신세계인터내셔날#구다이글로벌#에이피알#A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