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 트랙터들이 '존 디어'가 장악한 미국 시장에서 시장 10% 시장 점유율을 넘어서며 크게 선전하고 있다. [AI 이미지]
188년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 농기계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군림해온 존 디어(John Deere)의 위상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 틈을 메우며 주목받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산 트랙터, 이른바 ‘K-트랙터’다.
가격은 절반 수준이면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갖추고, 미국 농부들이 선호하는 유지보수 편의성까지 제공하며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점차 입지를 넓히고 있다.
2025년 대미 수출 1조 원 시대… 드디어 '마의 10%' 시장 점유율 벽을 넘다
국내 1위 농기계 기업 대동은 미국 현지 브랜드인 키오티(KIOTI)를 앞세워 북미 시장에서만 약 6,7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8%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2025년 기준 미국의 농기계 시장은 약 350억 달러(약 47조 원) 규모로 추산되며, 이 중 트랙터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과거 변방에 머물던 한국 농기계 브랜드 기업들이 최근들어 당당히 메이저 브랜드를 위협하는 ‘톱 티어’로 올라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2025년 3분기 누적 실적에 따르면, 국내 1위 농기계 기업 대동 (김준식·원유현 공동대표이사)은 미국 현지 브랜드인 키오티(KIOTI)를 앞세워 북미 시장에서만 약 6,7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8%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100마력 이하 중소형 트랙터 시장에서 점유율이 9.2%까지 상승했고, 성수기에는 월간 기준 11%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며 그동안 업계가 넘기 어려웠던 ‘마의 10%’ 벽을 사실상 허물었다.
2004년 미국 법인 TYM‑USA를 설립하며 북미 시장에 진출한 TYM(구 동양물산기업, 회장 김희용) 역시 북미 매출 비중을 크게 확대하며 9%대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유지, 대동과 함께 한국 농기계의 북미 시장 진출을 이끄는 쌍두마차 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09년 미국 법인(LS Tractor USA, LLC)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LS엠트론(대표이사 신재호)은 북미 중소형 트랙터 시장에서 약 5~7%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
2025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4.3% 증가한 6,597억 원을 기록해 견조한 성장 흐름을 입증했다. 특히 글로벌 농기계 기업 CNH와의 OEM 공급 계약을 통해 2025년까지 약 2만 8천 대 규모의 물량을 확보했으며, 북미 현지에서 자체 브랜드로도 연간 1만 대 이상의 주문을 꾸준히 달성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S엠트론이 대동·TYM에 이어 한국 농기계의 ‘제3대 강자’로서 북미 시장 내 입지를 점차 공고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내 트랙터 왜 못 고치나” 미국 시장점유율 1등 기업 존 디어의 오만이 부른 화(禍)
최근 미국 농촌의 화두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다. 존 디어는 트랙터에 복잡한 소프트웨어 잠금장치를 걸어놓고 공식 딜러를 통해서만 수리가 가능하도록 강제해왔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대안을 찾는 사이, 대동과 TYM 등은 소프트웨어를 개방하고 자가 정비가 쉬운 설계를 채택해 농심을 파고들었다.
이러한 전략은 실적으로 증명됐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대동(8,014억 원), TYM(4,383억 원), LS엠트론(6,597억 원) 등 국내 3사의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며 K-반도체를 잇는 새로운 수출 효자 종목으로 우뚝 섰다.
‘메이드 인 USA’로 관세 장벽 정면 돌파
지난 2024년 미국에 진출한 TYM가 내놓은 트랙터 T494 [TYM]
K-트랙터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관세 리스크에 대응해 '현지 밀착형 생산(Localization)'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TYM은 현재 조지아와 펜실베이니아 등 4개 주에 구축한 생산 거점을 통해 20마력대 소형부터 130마력대 대형 트랙터까지 현지 조립·공급 체계를 완성, 물류비 절감과 신속한 수요 대응을 기반으로 9%대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대동과 함께 한국 농기계의 북미 쌍두마차 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다.
LS엠트론 또한 노스캐롤라이나 거점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메이드 인 USA’ 라벨을 달고 무역 장벽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지화는 단순한 규제 회피를 넘어, 미국 농민들에게 ‘우리 땅에서 만든 우리 기계’라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LS엠트론 신재호 대표가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서 자사 트랙터 MT9을 소개하고 있다. [LS엠트론]
자율주행 레벨 4, 농업판 ‘테슬라’ 꿈꾼다
K-트랙터의 시선은 이제 인공지능(AI)으로 향하고 있다. 대동은 2026년 상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GPS 없이 카메라만으로 논밭을 일구는 ‘레벨 4 완전 무인 자율주행 트랙터’를 준비 중이다. 사람이 타지 않아도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고 토양을 분석해 작업 효율을 30% 이상 높이는 혁신 기술이다.
업계 관계자는 “1970년대 일본 자동차가 연비로 미국을 점령했듯, 지금 K-트랙터는 ‘개방형 정비’와 ‘현지 생산’을 무기로 그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며 “K-농기계는 이제 단순한 기계를 넘어 농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