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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1 땀방울로 쓴 ‘스포츠 연대기’… 라오스에 뿌리내린 ‘K-스포츠’의 진심 - - 이만수·김현민·김수길·김태영 등 종목 넘어선 ‘K-지도자’들의 위대한 동행 - - 단순 기술 전수 넘어 ‘자생적 생태계’ 구축… 라오스 체육의 근간을 바꾸다 - - 대통령 훈장부터 국빈급 예우까지, 땀방울로 일궈낸 ‘민간 외교’의 경지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2-02 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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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등 동남아에 야구를 심고 있는 이만수 감독 [헐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섭씨 35도를 넘는 무더위와 숨 막히는 습도 속에서도 훈련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제 무대에서 ‘최약체’라 평가받으며 승점이 쉽게 새어나가는 ‘자판기 팀’으로 불리던 라오스 스포츠는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주목받는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변화 뒤에는 화려함보다 묵묵함을 택한 한국인 지도자들의 오랜 헌신이 있다. 그들이 뿌린 것은 단순한 승리 공식이 아니라, 선수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정신,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작은 불씨처럼 시작된 그 노력은 오늘날 라오스 스포츠의 기반이 되고 있다.

‘헐크’ 이만수가 설계하고 김현민이 꽃피운 ‘야구 불모지’의 기적

라오스 야구의 시계를 돌린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다. 2014년, 야구 방망이조차 구경하기 힘들던 이 땅에 야구를 처음 소개한 그는 단발성 이벤트나 일회성 용품 지원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야구가 라오스 청년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이만수 이사장의 헌신은 사재를 털어 야구장을 건립하고 현지 야구협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행정적·물리적 토대를 닦는 데서 빛을 발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야구를 통한 교육’이었다.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가 적은 라오스 아이들에게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협동심과 절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르쳤다. “야구는 내가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주는 통로”라는 그의 철학은 라오스 전역에 야구의 정신이 뿌리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만수 감독


이 거대한 설계를 현장에서 직접 실행하며 꽃피운 이는 김현민 라오스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김 감독은 과거 쌍방울, 롯데, LG 등 프로 구단에서 선수로 활약한 뒤, 군상상고와 진영고에서 17년 이상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그는 이만수 이사장의 요청으로 라오스행을 결심했고,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 이사장이 “기술보다 인성을 가르칠 지도자”를 찾을 때, 과거 삼성 라이온즈 동료였던 성준 코치가 김 감독을 강력 추천하며 ‘라오스 야구 형제’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김 감독은 이 이사장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 정교한 기술과 승부사 DNA를 덧입혔고, 그 결실은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싱가포르를 8-7로 꺾으며 사상 첫 국제대회 승리를 거두는 감격으로 이어졌다.

“무보수라도 좋다”… 김수길 감독이 일궈낸 레슬링의 위상

레슬링 종목에서는 김수길 감독의 ‘진정성’이 라오스 사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23년 라오스 레슬링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협회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마주한 뒤, 주저 없이 ‘무보수 감독’직을 수락했다. 조건 없는 헌신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 강화를 위해 사비를 털어 한국에서 최신 웨이트 장비를 공수했고, 낙후된 매트와 훈련 시설을 직접 보수하며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감독이 직접 매트를 닦고 장비를 나르는 모습에 선수들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다”는 현지의 평가는 김 감독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과는 놀라웠다. 부임 단 3개월 만에 출전한 동남아경기대회(SEA Games)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7개를 휩쓸며 라오스 레슬링 역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라오스 정부는 외국인 지도자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노동훈장 3급’을 수여하며 그의 공로를 국가적 수준에서 예우했다. 김감독은 올 3월 라오스 여자 선수 3명과 함께 5개월간 한국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올해 9월 일본 아이치현-나고야 공동 개최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최근 기자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태국에서 열린 동남아경기대회에선 아쉽게도 동메달 2개에 그쳤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라오스 첫 금메달 획득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수길 라오스 레슬링국가대표감독(왼쪽에서 3번째)이 지난해 개최된 태국 아세안게임을 앞두고 선수단과 함께 주라오스한국대사관을 방문, 정영수 대사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라오스대한민국대사관]


2002년의 DNA와 프로의 체질, 김태영 감독의 ‘참파삭 아브닐’

축구장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인 ‘타이거 마스크’ 김태영 감독이 라오스 프로 무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국가대표 수비수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를 경험했던 그는 지난 시즌 라오스 프로축구 1부 리그 구단인 ‘참파삭 아브닐 FC’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축구팬들 사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태영 감독 [디제이매니지먼트]


김 감독이 부임 후 가장 먼저 칼을 댄 것은 선수들의 ‘태도’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라오스 리그는 프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훈련 문화와 선수 관리 체계가 느슨했다. 김 감독은 전술 훈련에 앞서 시간 엄수, 식단 관리, 철저한 자기관리 등 프로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엄격히 요구했다. “기본이 안 된 선수는 실력이 좋아도 그라운드에 세우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은 팀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프로정신’의 이식은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나, 2024-25시즌 리그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은 2025-26시즌 현재 중위권 경쟁의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현장에서,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부상을 딛고 뛰었던 김태영 선수의 투지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나무위키]


스포츠가 닦은 신뢰의 길, ‘민간 외교’의 가장 강력한 기반

이 같은 한국인 지도자들의 헌신에 대해 라오스 정부는 그들을 단순한 코치가 아닌 국빈급 ‘민간 외교관’으로 대우하고 있다. 주요 국가 행사에 초청되는 것은 물론, 국가 체육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이들의 의견이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약 3,000명에 달하는 현지 한국 교민들 역시 스포츠 현장에서 쌓인 두터운 신뢰 덕분에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땀방울로 써 내려간 이들의 연대기는 이제 라오스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K-스포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국위선양이나 기술 전수를 넘어, 낮은 곳에서 함께 땀 흘리며 서로를 일으킨 사람 중심의 연대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그들이 남긴 훈련장의 열기는 오늘도 라오스 스포츠의 심장을 뛰게 하며, 내일을 밝히는 불빛으로 이어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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