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객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26’에 마련된 윈호텔 삼성전자 단독 전시관에서 대형 터널 형태의 ‘AI 갤러리’를 구경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이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올해 CES는 단순한 신기술 전시를 넘어,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의 무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자리였다. 그 중심에는 ‘피지컬 AI(Physical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었다.
AI가 더 이상 화면 속 챗봇이나 서버 속 알고리즘에 머물지 않고, 몸을 얻어 현실 세계로 진입한 첫 CES라는 점에서 CES 2026은 기술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이 변화는 국가와 기업 간 기술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했다.
CES는 오랫동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는 가전 전시회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CES 2026은 분명히 달랐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TV도, 스마트폰도 아니었다. AI, 그중에서도 ‘물리적 행동 능력을 갖춘 AI’가 전시회의 중심에 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피지컬 AI’는 이번 CES에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됐다.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용 자율로봇, 홈 로봇, 물류·주차 로봇 등이 대거 등장하며 AI의 진화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시한 기업은 38곳. 이 가운데 중국 기업이 21개로 과반을 차지했다는 점은, 이 분야가 이미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전략: ‘AI 두뇌’로 패권을 쥐다
미국은 이번 CES에서 여전히 AI 생태계의 최상위 지배자임을 입증했다. 핵심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장악한 구조적 우위다.
젠슨 황 CEO는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을 공개하며, AI 연산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베라 루빈은 CPU와 GPU를 사실상 하나의 몸체처럼 결합한 구조로, 대규모 데이터 이동 지연을 최소화했다. 이는 곧 피지컬 AI 시대를 겨냥한 설계다. 로봇과 자율 시스템은 실시간 판단이 생명인 만큼, 연산 지연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AMD 역시 ‘헬리오스’ 플랫폼을 공개하며 엔비디아 독주에 도전장을 냈다. AI 가속기 MI455X의 연산 성능을 전작 대비 10배 끌어올리며, 데이터센터 기반 AI 인프라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미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로봇을 만들기보다, 로봇의 두뇌를 장악하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시대에 운영체제와 반도체를 쥔 기업이 생태계를 지배했던 구조와 유사하다.
중국의 전략: ‘속도·물량·상용화’로 압박하다
CES 2026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단연 중국 로봇 기업들이었다. 유니트리로보틱스, 애지봇 등 중국 기업들은 단순한 콘셉트가 아닌 상용화 직전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거 선보였다. 유니트리의 G1은 고속 격투 동작과 복싱 시연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과시했고, H2는 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겨냥했다. 애지봇의 A2 시리즈는 이미 박물관과 전시장 등에서 ‘접객 로봇’으로 활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중국 로봇의 강점은 세 가지다. ▶가격 경쟁력과 ▶부품·제조 내재화 ▶빠른 상용화 속도로 정리된다. 이는 과거 전기차와 드론 산업에서 중국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온 방식과 닮아 있다. CES 2026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에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의 전략: ‘완성도와 생태계’로 맞서다
이러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은 분명한 차별성을 보였다. '속도나 물량 경쟁이 아닌, ‘기술 완성도와 통합 생태계’'였다. CES 2026의 최대 수혜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모빌리티를 넘어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아틀라스는 단순 시연용 로봇이 아니라, 산업·물류·서비스 영역으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임을 보여줬다. 특히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력은 상징적이다. 이는 현대차가 로봇 하드웨어에 머무르지 않고, AI 두뇌까지 포함한 생태계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정의선 회장이 직접 CES 현장을 찾은 것도, 피지컬 AI가 그룹의 미래 전략 핵심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행보였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 ‘AI 기반 혁신 선도’를 주제로 마련된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 부스에 관람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휴머노이드보다는 생활 밀착형 피지컬 AI에 집중했다.삼성전자는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라는 비전 아래, 모든 기기와 서비스를 AI로 연결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로봇 단품 경쟁이 아닌, 플랫폼과 경험 중심의 접근이다. LG전자는 홈 로봇 ‘클로이드’를 통해 피지컬 AI의 가정 내 활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클로이드는 단순 안내 로봇이 아니라, 실제 집안일을 수행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