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aceX 재사용 발사체 Falcon 9 [자료= SpaceX]
글로벌 우주경제가 재사용 발사체와 소형위성 확산을 계기로 빠르게 성장하며 ‘1조 달러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우주항공산업은 핵심 기술 역량을 확보했음에도 수출 산업화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기술 개발 중심 정책에서 시장 형성 중심으로 전환하고, 민간의 실증·사업실적 축적을 촉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15일 발간한 ‘미래를 여는 우주항공산업, 주요국 전략과 한국의 수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주도 ‘뉴스페이스(New Space)’ 산업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우주경제 규모는 2024년 6130억 달러에서 2040년대 1조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성통신·데이터·우주 기반 서비스가 본격화되며 우주가 차세대 산업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스페이스 경쟁, “정부가 시장을 만든다”로 압축
보고서는 주요국들이 우주를 단순 연구개발(R&D) 영역이 아닌 산업·수출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은 정부가 민간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상업 우주 생태계를 육성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글로벌 사우스 국가 중심 협력을 통해 독자적 우주 체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럽과 일본 역시 다국가 협력과 민관 협업을 통해 자국 산업 강점을 우주 공급망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우주산업이 ‘기술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발사체·위성·지상국 등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하고, 국제 인증과 수출통제 등 규제가 촘촘한 데다, 사업 실적(트랙레코드)이 수출의 핵심 신뢰 지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술은 확보했지만 수출은 초기 단계”
보고서는 한국 우주항공산업이 정부 주도로 단기간에 핵심 기술 역량을 확보하며 압축 성장을 이뤄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의 민간 주도 위성 발사로 언급된 누리호 4차 발사를 계기로, 민간 중심 생태계로의 전환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수출 측면에서는 구조적 제약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자본과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산업 특성상 민간 투자 유입이 제한적이고, 실증 인프라 부족, 국제 인증·수출통제 대응 부담, 글로벌 사업 실적 부족 등이 수출 산업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목됐다. 결과적으로 “기술은 있는데, 팔 수 있는 구조가 약하다”는 현실이 드러난 셈이다.
자료= 한국무역협회
“반도체·배터리·ICT와 묶어야 수출 산업이 된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 우주항공산업의 가장 현실적인 돌파구는 ‘주력 수출 산업과의 연계’다. 반도체, 배터리, ICT, 바이오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군을 우주 공급망에 편입시키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주 환경은 극한의 온도 변화와 방사선 등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되는 만큼, 전력반도체·배터리·첨단소재 등 고부가 부품·소재 경쟁력을 강화하면 우주 분야에서 수출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세중력과 우주방사선 환경을 활용한 의약품 실험 등 바이오 영역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의미가 크다. 발사체나 위성 ‘완제품’ 경쟁은 진입장벽이 높지만, 우주급 부품·소재·장비, 데이터 활용 서비스, 시험·인증 기반 산업은 상대적으로 참여 가능성이 넓기 때문이다. 우주산업을 단일 산업이 아니라 반도체·배터리·소재·바이오까지 포괄하는 ‘수출형 융합 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기술개발에서 ‘시장 형성’으로, 정책 전환이 핵심
보고서는 한국이 우주 수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책의 무게중심을 기술 개발 중심에서 시장 형성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의 반복적 실증과 사업실적 축적을 위한 정부의 초기 수요 창출 ▲민간 투자·회수 논리에 부합하는 투자 환경 조성 ▲우주급 실증 및 시험 인프라 확충 ▲국제 인증·수출 통제 대응을 위한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 등이 제언됐다.
특히 “초기 수요 창출”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요구받는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꼽힌다. 해외 시장에서 우주 사업은 성능과 가격만이 아니라, ‘실제 운용 실적’이 계약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초기 구매자 역할을 수행해 민간 기업이 반복 실증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은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최근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수출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산업 특성상 수출 장벽이 큰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의 초기 수요 창출과 해외 진출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수출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지금부터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수출 산업화”가 한국 우주항공의 다음 과제
우주경제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는 ‘기술을 확보하는 나라’보다 ‘시장을 만드는 나라’가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핵심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민간 중심 생태계로 전환하는 과정에 들어섰지만,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실증·인증·투자·수요가 연결되는 산업 구조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한국 우주항공산업의 방향은 “국가 프로젝트형 개발”에서 “수출 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이동해야 한다. 반도체·배터리·ICT 등 주력 산업과 우주산업을 전략적으로 연결하고, 정부가 초기 수요와 제도 기반을 마련해 민간이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전환이 이뤄질 때, 한국의 우주항공 수출도 ‘걸음마’를 넘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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