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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6-01-12 1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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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말의 조상은 약 5천만 년 전, 북아메리카의 숲속을 걷던 작은 동물 에오히푸스(Eohippus)였다. 그리스어 Eos(새벽)와 hippos(말)가 합쳐진 이름 그대로, ‘새벽의 말’이었다.

에오히푸스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말과는 전혀 달랐다. 앞발에는 네 개, 뒷발에는 세 개의 발가락을 가진 작고 빠르지도 않은 숲속 동물이었다. 그러나 점차 숲이 사라지고 숨을 곳이 없는 초원이 열리자 말은 선택해야 했다. 머무를 것인가, 달릴 것인가.

말이 택한 것은 속도였다. 측면 발가락은 점차 퇴화하고, 중앙 발가락 하나에 체중을 집중시키는 구조로 진화했다. 오늘날 말굽의 기원이다. 하나로 진화한 발굽은 내부에 충격 흡수 조직과 정교한 혈관 구조를 갖추며, 땅을 찍고 튀어 오르는 질주를 가능하게 했다. 대신 방향을 잘못 잡으면 멈추기 어렵고 넘어지면 치명적이다.

이에 비해 소는 갈라진 두 개의 발굽으로 체중을 분산시킨다. 안정적이지만 직선 고속 질주에는 불리하다. 말은 균형보다 속도를 택했고, 소는 속도보다 지속을 택했다. 생태의 차이이자, 선택의 차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언어의 겹침이 나타난다. ‘굽’이라는 말에는 굽다, 굽히다, 굽실거리다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말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굽혔고, 그 굽힘이 인간을 태웠다.

말과 관련해서는 말굽 외에도 채찍, 고삐, 재갈, 달리다, 멈추다, 이끌다처럼 순우리말이 유독 많다. 이는 말이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처음으로 속도를 경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채찍은 방향도 판단도 주지 않는다. 오직 속도만 요구한다. 그래서 채찍은 말을 망가뜨리기 가장 쉽고,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기 가장 쉬운 도구다.

훌륭한 기수는 채찍을 말의 몸에 함부로 대지 않는다. 말이 이미 방향을 알고 있을 때, 채찍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속도를 얻은 인간은 방향 없는 속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고삐다. 고삐는 당기는 도구가 아니다. 말에게 “이쪽이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장치다.

잘 달리는 말은 고삐를 느끼지 않는다. 고삐에는 ‘고르다’의 의미가 닿아 있다. 속도를 나누고, 리듬을 맞추고, 멈출 때를 정한다. 학술적으로는 현대 거버넌스 이론에서 말하는 조정(coordination)과 신호(signaling)의 정치다. 명령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 강제가 아니라 신뢰를 통해 시스템을 움직여야 한다. .

재갈은 가장 오해받는 도구다. 재갈은 말을 침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의 입에 닿아 미세한 압력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판단의 장치다. 순우리말 ‘갈다’에는 다듬고, 고르고, 분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재갈은 힘을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힘이 나올 순간을 고르는 기술이다.

서구 언어에서 말은 지배의 대상이지만, 한국어에서 말은 함께 움직이는 존재다. ‘몰다’보다 ‘이끌다’가 먼저 나오고, ‘때리다’보다 ‘다독이다’가 오래 남았다.

말을 길들였다는 것은 속도를 소유했다는 뜻이 아니다. 시간을 함께 건너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말굽은 땅을 치는 도구가 아니라 리듬이었고, 채찍은 명령이 아니라 속도를 뜻하는 요구였다. 고삐는 통제가 아니라 방향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재갈은 폭력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2026년 '적토마의 해' 병오년 새벽이 밝았다. 새해는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역사적인 해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지정 100주년, 한글점자 100주년, 영화 <아리랑>개봉 100주년, 헐버트박사의 아리랑 악보 채록 130주년, 주시경 선생 탄신 150주년 등 역동하는 해다.

새해는 더 빨리 달리라는 시간이 아니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다시 묻는 새벽이다. 말굽·고삐·재갈·채찍처럼 말의 몸과 호흡을 다루는 말들은 모두 순우리말로 남았다. 그러나 말 위에 올라타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필요한 안장(鞍裝)은 한자로 남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땅에서 함께 걷고 호흡을 맞추는 언어는 백성의 삶 속 말과 글로 살아남았고, 권력과 군사를 실어 올리는 장치는 통치의 언어와 문자로 관리되었다.

관우의 적토마는 채찍으로 달린 말이 아니었다. 고삐 하나로 뜻을 알아차리는 말이었다. 적토마가 하루 천 리를 달렸다는 전설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이나 수치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는 리듬이다.

또한 누구도 함부로 들 수 없었던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힘이 아니라 책임을 상징한다. 관우는 빠르되 가볍지 않았고, 무겁되 흔들리지 않았다. 균형이 있었기에 질주가 가능했다.

정치도, 국정도, 외교도 같다. 채찍은 속도를 만들지만, 고삐는 길을 만든다. 속도만 앞세운 채찍의 정치는 분열을 낳고, 방향을 공유하는 고삐의 국가는 신뢰를 쌓는다.

지금 대한민국 앞에는 남북관계의 긴장, 민생의 체감 온도, 급변하는 국제정세라는 무거운 안장이 얹혀 있다. 이럴수록 더 센 채찍이 아니라, 속도를 조율하고 멈출 줄 아는 고삐가 필요하다. 채찍의 정치에서 내려와 고삐의 국가로 올라야 한다.

말의 역사는 질주로 시작되지 않았다. 말의 시작은 새벽이었다. 2026 대한민국 새해가 밝았다. 전세계 한인들과 남북이 새벽의 말에 다시 오를 시간이다.

대한민국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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