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종순(전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모든 나주인들과 함께 경사를 다시 한번 축하한다. 나주라는 도시는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다른 의미로 나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분명하게 나주는 이런 도시이다. 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나주는 전환기에 시대적 책무를 다해온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나주 출신 체육인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에 대하여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2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계 최초 배드민턴 여자 단식 한 시즌 10승을 달성한 안세영 선수는 자신이 세운 기존 기록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나주시장 등 많은 사회 지도층들의 격려와 축하의 말들이 이어졌다. 나주의 역사 속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경쟁에서 나주를 빛낸 인물은 안세영이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사는 겹치듯이 오듯이 연이어 국책사업의 하나인 ‘인공태양연구시설’이 나주로 확정되어 또 한번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 2027년 착공하여 2037년 완공하는 1조 2천억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 나주로 왔다.
나주시에 따르면 이 시설이 들어서면 기업 300여개 입주와 일자리 최대 1만 개가 창출되어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첨단 궁극의 에너지원인 인공태양 에너지 시설을 유치하여 명실상부한 '에너지 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나주시는 마련하였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핵융합 발전은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삼아 태양 내부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지구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론적으로는 핵융합 연료인 수소 1g으로 석유 8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에너지 최첨단 기술인 것이다.
나주시는 윤병태 시장의 시정이 가져온 나주 천년의 획기적 전환기의 헤게모니를 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천여년 전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몰락 속에 지방의 세력들이 군웅할거 하였다. 당시에 나주는 사실상 견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예성강 해상세력의 중심인물 왕건과의 협력을 통해서 고대사회를 마감하고 중세사회를 나주가 열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주인들이 견훤의 편에서 궁예· 왕건과의 대척점을 만들었다면 또 다른 역사가 펼쳐졌을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가정이 없다. 나주인들은 가까운 무진주(광주)의 세력에 동참하지 않고 저 멀리 예성강 해상세력의 중심인물인 왕건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나주가 천년의 영화 속에 전라도의 웅도로서 전라우도로서 역사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당시 나주를 번영 속에 자리하도록 하였던 물적 토대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해양도시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이 나주가 고려·조선을 이어 오면서 남도의 중요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물적 토대였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영산강의 수로는 막혔다. 1980년 영산강 하구둑이 준공되면서 영산강은 일상적인 출구가 없는 강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을 받아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곳이 영산포였다. 일제 수탈의 전진기지 영산포는 시대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역사적 부침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공태양연구시설이 바로 영산포 인근 산단에 들어서면 또 다른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현 시대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 지방소멸이라는 시대적 당면과제가 눈 앞에 펼쳐지고 전지구적으로 기후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책을 강구하고 현실을 극복하려는 전 인류의 지혜가 총 동원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바닷물에서 에너지를 얻는 인공태양 연구시설 나주 유치는 나주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역사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천여 년 전 나주인들의 선택이 천년 나주의 부귀영화를 이루었듯이 오늘의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는 그에 버금가는 나주의 역사적 쾌거인 것이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나주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유구한 나주의 역사는 역사적 전환기에 새로운 길을 열었던 예지력의 에너지가 역사 문화적 유전자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1,500년 전 마한의 지도자는 협력 속에서 세상을 이끌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나란히 매장된 신촌리 9호분의 독널(옹관) 배치에서 찾을 수 있듯이, 신라말 고려초의 역사적 격동기에 나주인들의 판단과 결정이 남섬부주 고려국 나주를 만들었다. 이어지는 려말선초의 시기에 나주는 또다시 조선을 개국하는 삼봉 정도전이 나주에서 새로운 사회의 창조를 꿈꾸도록 하였다.
고려 개국의 성지 ‘어향나주’가 천백년이 흐르는 동안 역사적 책무를 다해온 나주는 수많은 나주인들의 예지력과 혼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 결과가 우리 앞에 온 것이다.
윤병태 시장의 ‘태양은 하루 시간 중에 지지만 인공태양은 영원히 지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며 1093년 나주인 나재견 등이 세운 보물 나주 서문안 석등에 새겨진 말씀을 기억하며 글을 맺는다. ‘임금(백성)의 목숨이 하늘처럼 길고 온갖 곡식이 풍성하며 나주가 크게 평안하며 부귀가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