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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26 [이집트 대박물관 견학기] 7천년 이집트문명 대박물관에서 본 문명의 역설 - - 김기찬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학 국제총장, 세계 중소기업학회 의장
  • 박병두 기자
  • 기사등록 2025-12-13 08: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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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대박물관 메인홀 전경.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 국제총장


“이집트에 가면 두 번 놀란다.”

카이로 공항에 내리기 전부터 되뇌었던 이 문장은 단순한 여행자의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문명의 역설(Paradox of Civilization)’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라 불리는 이집트 대박물관의 거대한 파사드 앞에 섰을 때, 나는 첫 번째 충격과 마주했다. 단군신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문명의 스케일. 그리고 박물관 문을 나서는 순간 마주한, 오늘날 이집트의 멈춰버린 시간을 보고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이 견학기는 그 두 가지 충격 사이, 찬란한 유물들 속에서 발견한 ‘절실함(Desperation)’과 ‘안일함(Complacency)’에 관한 생각이다.

첫 번째 충격: 람세스 2세 거상이 우리를 마주한다

람세스 2세는 3천 년 전 나일강과 싸우기 위해 백성을 유능화하고 자원을 집중해 위기를 이겨낸 문명의 창조자였다.

박물관 메인 홀(Atrium)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3200년 전의 람세스 2세 거상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이 약 11미터, 무게 약 83t. 단일 암석을 깎아 만든 이 거인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3천 년 전 문명 그 자체로 보였다.

이 거대한 돌덩이를 채석장에서 떼어내어 나일강을 건너 옮기고, 균형을 맞춰 세우기까지 필요한 것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폭력인 나일강의 범람에 맞서 인간이 치밀한 조직력과 공학, 물류, 측량 기술을 동원하여 응전(Response)한 결과였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체결한 외교의 달인이자 문명을 경영한 거버넌스의 상징이다. 그가 내려다보는 시선은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이 정도의 문명을 조직했다”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나르메르 팔레트와 로제타 스톤: 국가는 기록의 힘이다

전시 초입에서 마주한 것은 ‘나르메르 팔레트’였다. 기원전 3100년경,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 왕의 승리를 기록한 이 석판은 이집트라는 국가의 출생신고서와 같다. 파라오가 주도하는 국가가 약 5천여 년 전에 출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르메르 팔레트는 작은 돌판 위에 한 문명의 탄생, 곧 파라오 시스템의 시작이 새겨져 있다. 흩어진 부족과 지역 공동체를 하나의 중앙집권 체제로 통합한 힘의 배경에는 생존을 위해 문명을 조직해야 했던 절실함이 자리한다.

이어 마주한 로제타 스톤(진본 관련 자료와 복제 전시)은 인류 지성의 열쇠였다. 상형문자, 민중문자, 그리스어가 나란히 기록된 이 석비는 지배층만의 언어가 아닌, 서로 다른 집단과 세대를 이어주는 번역의 기술을 상징한다.

문명은 기록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그 지식을 후대와 나누며 영속성을 얻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일강 수위를 기록하고, 조세를 부과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생존 기술이자 정보기술(IT)의 시초였다. 지식을 제도화하고 문서화하지 않으면 문명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집트 대박물관의 투탕카멘 황금 가면.


투탕카멘의 황금: 절망에서 피어난 예술의 극치, 죽음을 희망으로 만들고자 한 흔적

이집트 대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투탕카멘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시공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9세에 왕이 되고 19세의 나이에 요절한 소년 왕. 그의 죽음이라는 절망(Despair)은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장례 예술을 탄생시켰다.

투탕카멘 황금 가면은 단순한 부의 과시가 아니다. 11kg에 달하는 순금 위에 청금석과 터키석으로 세밀하게 장식된 눈과 눈썹, 상징적 색채 대비는 그 자체로 기술과 정신의 융합체다. 금속 제련, 보석 세공, 상징체계, 종교적 상상력이 한 점에 응축되어 있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준비하고자 했던 이들의 절실함은 금속조차 부패하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현되었다. 투탕카멘의 유물 5천여 점은 “육신은 필멸이지만, 인간의 정신과 기술, 상상력은 불멸할 수 있다”는 문명의 신념을 시각화하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진실: 노예가 아닌, 유능화된 노동자들의 작업

유물 사이를 거닐다가 나는 피라미드 노동자들의 마을에 관한 고고학 자료 앞에서 오래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피라미드를 노예의 피와 땀으로 지은 착취의 결과물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여기 전시된 뼈, 무덤, 파피루스 문서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굴된 노동자들의 뼈에서는 부러진 팔과 다리가 정교하게 치료된 흔적이 발견된다. 노동자 명부에는 고기와 맥주가 정기적으로 배급되었고, 병이 나면 병가를 허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들의 무덤에는 장례 의식과 부장품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는 그들이 단순한 일회용 노예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한 정식 숙련 노동 계층이었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2600년 전후, 이미 이집트에는 석재 채석팀, 경사로 시공팀, 측량 전문팀이 분업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역량을 키워 성과를 만들었던 사람 중심의 조직 운영이 있었다는 뜻이다. 피라미드는 단지 돌을 쌓은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을 유능하게 만드는 유능화(Enablement) 시스템 위에 세워진 성과물이었다.

그 안에는 현대적 의미의 사람중심 기업가정신(Humane Entrepreneurship)이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이집트 대박물관 중앙 정원에서 바라본 피라미드 모습.


사색의 시간: 파테이 마토스와 아리가토

박물관 중앙 정원에 앉아 이 위대한 유물들을 관통하는 철학을 떠올리게 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은 고통에서 배운다(Pathei Mathos)”고 말한다. 파테이(pathei)는 고통, 감정, 마토스(mathos)는 배움, 지혜를 뜻한다. 나일강의 범람은 분명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그 고통에서 치수와 농업, 건축 기술이라는 배움을 길어 올렸다.

일본어 ‘아리가토(ありがとう)’의 어원이 떠오른 것도 이 지점이었다. ‘어려움(難)이 있다(有)’는 의미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쓰인다. 영어의 Appreciate 역시 어원을 따라가면 ad(향하다)+pretium(가치)로,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태도이다.

이집트인들은 범람이라는 재난을 단순한 불행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 어려움의 가치를 알아보고(Appreciate), 피하지 않고 응전했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의 정신이 이미 3천 년 전 사막 한가운데에서 다른 언어, 다른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충격: 안일함이 멈춰 세운 문명

황홀한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쾌적한 공조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박물관 내부와 달리, 바깥 카이로의 거리는 뜨겁고 혼란스러웠다.

꽉 막힌 도로, 무질서한 경적,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들의 얼굴들. 7천 년 전 인류 최고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었던 그 혁신의 DNA는 어디로 갔을까.

그 해답은 안일함(Complacency)에 있다. 문명이 일정 수준에 오르자 절실함은 서서히 사라졌다. 나일강은 더 이상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혜택이 되었고, 도전(Challenge)이 멈춘 자리를 기득권이 채웠다.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보다 현재의 안락함을 지키려는 태도가 지배할 때, 문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박물관 안의 유물은 혁신과 도전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지만, 박물관 밖의 현실은 정체와 관성의 시대를 보여준다. 이집트는 “인류가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어떻게 안일함이 거인을 잠들게 하는가”를 보여주는 거대한 반면교사였다.

이집트 대박물관 메인홀 모습.


맺음말: 피크 코리아에서 피벗팅 코리아로

카이로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라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 하나로,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나일강의 범람을 치수와 농업, 제도로 바꾸어 문명을 만든 고대 이집트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른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성장의 정점을 지난 뒤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우려가 들려온다. 해외 시장 진출을 귀찮아하고, 내부 경쟁에만 몰두하며, “이 정도면 됐다”는 안일함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된다.

이집트 대박물관의 유물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당신들은 지금 절실함 속에 있는가, 안일함 속에 있는가.”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보다 더 빛나는 것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이름도 남기지 않고 땀 흘렸던 장인들의 도전 정신이다. 문명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절실함을 조직한 집단의 결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을 지키려는 마음만이 아니라, 다시 한 번 고통을 혁신의 재료로 삼아 방향을 바꾸는 피벗팅(Pivoting)의 용기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pathei mathos), 그 어려움마저 가치로 인정하며(appreciate), 새로운 문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이집트 7천 년의 문명이 오늘의 우리 한국인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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