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선전에서 개최된 세계한인경제인대회 및 코리안비즈니스 엑스포 현장에서 지난 10일 김태우 월드옥타 중·동유럽지역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내년 10월 열리는 세계한인경제인대회 및 코리안비즈니스엑스포 개최지로 유럽의 중심 체코가 선정됐다.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는 지난 10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2026 세계한인경제인대회 및 코리아비즈니스엑스포 선전’ 이사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왜 체코인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영국 런던도 아닌 동유럽의 체코를 선택한 배경에는 어떤 전략이 숨어 있을까.
본지는 이날 중국 선전 행사장에서 김태우 월드옥타 중·동유럽지역회장을 만나 체코 대회 개최의 의미와 전망을 들어봤다. 아울러 30여 년 동안 동유럽 경제 현장을 누비며 숱한 성공과 좌절을 겪어온 그의 파란만장한 사업 인생도 함께 조명했다.
런던도 LA도 아닌 체코…원전이 바꾼 월드옥타의 선택
“체코가 세계한인경제인대회 및 코리안비즈니스엑스포 개최의 최적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45년 역사의 월드옥타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체코 대회 역시 그 도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김 회장은 체코가 차기 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초 개최 후보지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영국 런던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LA는 선거 일정과 맞물린 정치적 부담이 제기됐고, 런던은 중국 회원들의 비자 발급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적 지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도 개최지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체코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2024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대회의 성공 경험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유럽 시장은 한국 중소기업들에 쉽게 넘보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시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빈 대회에서는 연매출 7000만원 규모의 천안 소재 중소기업이 6300억원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유럽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사례였다. 하지만 체코를 선택한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 회장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한국의 원전산업의 체코 진출이다.
그는 “원전사업이 본격화되면 약 200개 협력업체와 3000명 규모의 기술인력 수요가 발생하는 등 한국 중소기업들에는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체코에는 넥센타이어와 현대자동차 관련 기업, 두산 계열 기업 등 한국 제조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여기에 원전산업까지 가세하면 자동차와 전자, 에너지, 첨단기술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가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체코의 지리적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과 폴란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 유럽 주요 시장과 인접해 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비용 구조도 갖추고 있다.
김 회장은 “체코를 거점으로 유럽 각국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즈니스 확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원전만의 잔치는 아니다…중소기업 수출 플랫폼으로
김 회장은 체코 대회가 원전 관련 대기업과 협력업체 중심의 행사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전은 중요한 계기입니다. 그러나 월드옥타의 본질은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체코 대회는 월드옥타와 코트라가 공동 개최해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트라가 보유한 지방자치단체와 테크노파크, 기업지원기관 등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원전뿐 아니라 K-푸드와 소비재, 첨단기술,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참여하는 종합 비즈니스 전시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체코 현지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평가가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 제품은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물론 K-푸드 등 소비재 분야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는 체코 대회가 과거 빈 대회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둘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원전이 들어서면 한인사회도 달라진다…새로운 한인 경제권의 탄생
한국수력원자력은 2025년 6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계약을 체결했다. 체코 측이 공개한 일정에 따르면 2030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원전사업이 본격화되면 체코 한인사회의 지형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원전 건설에는 기술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족과 기업 관계자, 협력업체 직원들이 장기간 체류하게 되면 주거와 교육, 의료, 유통, 외식, 물류 등 다양한 생활서비스 수요가 뒤따르게 된다. 한국 식당과 식품점, 숙박업소, 운송업체는 물론 통역과 회계, 법률, 행정서비스 분야까지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기존 한인 기업들이 한국에서 새롭게 진출하는 협력업체와 현지 기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회장은 원전사업이 체코 한인사회를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단순히 교민 수가 늘어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현지에 뿌리내린 한인 기업들이 새롭게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한국과 체코를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26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월드옥타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원전 건설이 끝난 이후에도 운영과 유지보수, 기술협력 등 장기적인 산업 수요가 이어진다면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 역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체코 원전은 한국의 새로운 수출산업인 동시에 현지 한인사회의 성장을 이끄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동유럽의 터줏대감이 되기까지
김 회장이 유럽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대우에 입사하면서부터다. 1995년 대우자동차 슬로바키아 판매법인으로 발령받은 그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법인 설립을 위한 실무를 담당하며 동유럽 시장을 익혔다.
그러나 대우그룹 사태로 본부 복귀 발령을 받으면서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생활 대신 사표를 던졌고, 200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첫 사업은 자동차 엔진오일이었다.
당시 대우자동차 생산공장이 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우모터오일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러시아까지 시장을 넓혔다.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외환통제였다.
돈을 벌고도 해외로 송금할 수 없었다. 환전 과정에서 20~30%의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막대한 사업자금이 현지에 묶였다. 장사는 잘됐지만 정작 자금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2003년 사업을 접고 체코로 비즈니스 무대를 옮겼다.
체코에서는 대우자동차 부품 유통사업에 뛰어 들었다. 한 달에 40피트 컨테이너 7~8개 분량의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현지에 공급했다. 취급하는 부품만 2만5000여 종.사업이 절정에 올랐을 때는 관련 사업을 포함해 연간 매출이 200억원 안팎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시장의 변화가 발목을 잡았다.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되고 유럽 자동차시장이 쉐보레와 오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존 부품 수요가 급감했다. 여기에 물류비 부담까지 커지자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2009년 또다시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두 차례의 좌절에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다음 무대로 선택한 곳은 슬로바키아였다.
삼성전자 공장의 창고 운영과 물류사업을 시작했고, 이어 인력 공급사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처음 50명으로 출발한 인력 공급 규모는 수백 명으로 확대됐다. 철저한 출근 관리와 생산성 개선으로 현지 기업들의 신뢰를 얻었고, 3년 동안 200만 유로 이상을 벌어들이는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현대·기아자동차 관련 물류와 부품 조립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사업 기반을 다졌다.그렇게 축적한 자금으로 새롭게 도전한 분야가 페인트 제조업이었다. 당시 노루페인트가 현지 업체와 갈등을 겪고 있던 터에 김 회장에게 직접 투자를 제안했다.
김 회장은 본사로부터 기술이전을 제공 받는 조건으로 약 450만 유로를 투자해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공장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의 까다로운 환경규제로 인허가를 받는 데만 1년 7개월가량이 소요됐다. 오랜 준비와 시행착오 끝에 공장을 가동했고, 현재는 38종의 페인트를 생산하며 연간 약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노루페인트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현대·기아자동차 관련 산업 수요에 대응하면서 유럽의 대형 도료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현재 김 회장의 사업은 페인트 제조업과 자동차 소모품 공급이라는 두 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동차 소모품 분야에서는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부직포를 비롯한 각종 소모성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폴란드 등 주변국의 자동차 협력업체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 부품 2만5000여 종을 취급하며 축적한 경험과 유럽 현지의 물류·제조 네트워크는 오늘날 사업을 지탱하는 든든한 경쟁력이 됐다.
김태우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체코에서 개최된다며 체코는 현지 한인사회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김 회장의 사업 인생은 한 편의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외환통제에 발목이 잡혔고, 체코에서는 자동차 부품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업종을 바꾸며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마다 그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시장이 바뀌면 사업구조를 바꿨고, 길이 막히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숱한 위기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는 동유럽 경제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한국 기업과 현지 산업을 연결하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김태우의 인생이 그랬다. 수없이 흔들렸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성공의 순간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고, 실패의 순간에는 다시 일어설 길을 찾았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세월을 견뎌낸 김태우는 이제 동유럽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가 30여 년 동안 일궈온 동유럽의 경제 현장은 내년 월드옥타 세계한인경제인대회와 코리안비즈니스엑스포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체코 대회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업가가 숱한 역경을 딛고 개척해 온 시장이 이제 한국 중소기업과 한인사회에 새로운 기회의 무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