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스마트글래스가 급성장하며 촬영 동의 등 사생활 리스크가 대두되고 있다. 사진=메타
스마트글래스가 패션과 AI를 결합한 차세대 웨어러블로 급성장한 가운데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변수로 떠올랐다. 노르웨이 정부가 공원·쇼핑센터·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AI 글래스 사용을 일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네덜란드에서는 안경 유통사가 메타 스마트글래스 판매를 중단했다. 반면 2026년 상반기 글로벌 스마트글래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12% 증가했다.
사용 제한에서 판매 중단까지 번지는 규제 논쟁
노르웨이 정부는 10월 5일 AI 글래스를 포함한 신체 착용형 기술의 사용을 일부 장소에서 일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검토 대상은 공원·해변·박물관·쇼핑센터·공공행사 등 일반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와 학교·유치원·놀이터·청소년시설이다. 의료시설이나 탈의실·샤워시설을 갖춘 체육시설 등 사생활 보호 필요성이 높은 공간도 포함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AI 글래스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타인을 동의 없이 촬영할 위험이 없는 사적 이용 등은 허용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의회에 법안을 제출하고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신체 착용형 기술에 대한 장기적인 규제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규제 논쟁은 이미 유통 단계로 번지고 있다. 네덜란드 안경 체인 한스 안데르스(Hans Anders)는 10월 2일 네덜란드와 벨기에 매장 및 온라인 채널에서 메타 스마트글래스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한스 안데르스는 유럽 전역에 776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와 사용 조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켜본 뒤 판매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네덜란드 개인정보보호 당국(AP)은 카메라 글래스로 식별 가능한 사람을 촬영한 영상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며, 소셜미디어 등에 공유하려면 일반적으로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탈의실·병원·법원 등에서는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메타는 촬영 시 프레임의 LED 표시등이 켜지고 이를 가릴 경우 촬영을 제한하는 기능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용자에게 촬영 전 주변 사람의 허락을 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소비자단체 콘수멘텐본드(Consumentenbond)는 자체 시험에서 LED를 가린 상태에서도 촬영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며 보다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 이는 소비자단체의 시험 결과로 메타의 공식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프랑스 개인정보 감독기관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도 스마트글래스를 개인정보 보호의 새로운 과제로 규정했고, 독일에서는 디지털 권리단체가 레이밴 메타 등을 둘러싸고 형사 고발에 나서는 등 유럽 각국에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규제와 반대로 시장은 폭발적 성장
규제 강화와 달리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글로벌 스마트글래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12%, 직전 반기 대비 22% 증가했다. 메타의 점유율은 약 84%에 달했다. AI 기능을 탑재한 제품만 별도로 집계하면 같은 기간 출하량 증가율은 263%였고, 디스플레이가 없는 AI 글래스가 이 시장의 96%를 차지했다. 해당 세부 시장에서 메타 점유율은 94%였다.
메타와 세계 최대 안경기업 에실로룩소티카의 협업이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레이밴 메타는 2024년 말까지 출시 이후 누적 약 200만대가 판매됐고, 2025년에는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를 합친 AI 글래스 판매량이 한 해 700만대를 넘어섰다. 양사는 레이밴에서 오클리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스마트글래스를 IT 기기가 아닌 일상적인 패션 아이웨어로 전환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경쟁도 확대되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XR을 기반으로 한국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미국 와비파커 등과 AI 안경을 개발하고 있다. AI 플랫폼 업체와 패션·아이웨어 브랜드 간 협업이 늘면서 스마트글래스 경쟁의 중심이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과 착용성, 브랜드 영향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한국도 이미 시장 진입…패션기업 ‘프라이버시 설계’ 필요
한국에서도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가 올해 5월 25일 공식 출시돼 백화점·면세점·안경원 등 유통망에 진입했다.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사람이 신체에 착용하거나 휴대하면서 영상을 촬영하는 장치를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포함한다. 업무 목적으로 이를 사용하는 경우 일정한 법적 근거 없이 공개된 장소에서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영상을 촬영할 수 없으며, 촬영 사실도 정보주체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목욕실·화장실·탈의실 등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는 원칙적으로 촬영이 금지된다. 다만 이 규정을 일반 소비자의 모든 스마트글래스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이용 목적과 장소, 저장·공유 방식에 따라 적용 법규가 달라질 수 있다.
AI 스마트글래스의 역설은 일반 안경과 비슷해질수록 상품성은 높아지지만 주변 사람이 촬영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향후 경쟁 기준은 카메라 성능이나 AI 기능, 디자인뿐 아니라 촬영 표시 방식과 데이터 처리 투명성, 사용 장소 제한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스 안데르스 사례처럼 정부의 판매금지 처분이 없어도 유통업체가 자체적으로 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패션·아이웨어 기업에 새로운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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