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을 건넌 난민 소년이 연해주의 거상이 되고, 자신이 일군 부를 동포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 추운 시베리아에서 한인들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준 ‘페치카(난로)’이자 오늘날 세계 한상이 기억해야 할 ‘한상의 원조’,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이다.
최재형 선생의 삶과 정신이 제24회 세계한상대회를 계기로 다시 조명됐다.
지난 27일 인천 송도 경인재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전야제 ‘2026 한상 동행의 밤’에서 문영숙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최초 한상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주제로 최재형 선생의 기업가정신과 동포애,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소개했다.
지난 27일 인천 송도 경인재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전야제 ‘2026 한상 동행의 밤’에서 ‘최초 한상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주제로 발표하는 문영숙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사진ㅣ인천=김준환 대기자]
최재형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후 러시아 상선을 타고 세계를 경험하며 러시아어와 서양문물을 익혔고, 통역관을 거쳐 도로 건설과 군수물자 납품 등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수완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연해주를 대표하는 한인 사업가로 성장했다. 당시 연간 10만 달러에 이르는 수입을 올리는 거상으로 성장하면서 ‘동양의 카네기’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재형에게 부의 축적은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사업으로 일군 재산을 동포 교육과 계몽, 언론,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했다. 연해주 한인사회의 미래를 위해 소학교 32곳을 세웠으며 우수한 청년들의 유학도 지원했다. 한인사회 지도자로서 교육과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1893년에는 한인 최초로 연추읍장에 선출됐고,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재러 한인 대표로 참석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맡아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반을 뒷받침했다.
그가 ‘페치카’로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독한 연해주의 추위 속에서 최재형은 동포들에게 교육과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한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존재가 됐다. 1920년 4월 7일 최재형은 일본군에 체포돼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총살됐다. 피신할 수 있었지만 가족과 동포,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복이 돌아갈 것을 우려해 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영숙 이사장은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빛나는 업적을 일궈낸 최재형 선생의 개척정신과 애국·동포 사랑을 오늘날의 한상이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형의 삶은 자신의 성공을 개인의 부에 머물게 하지 않고 동포사회와 모국의 발전으로 연결하는 것이 진정한 한상 정신이라는 것이다.
황병구 세계한상대회운영위원장은 “한상대회가 일회성 축제가 아니라 365일 한상과 모국, 한상과 한상이 교류하는 ‘글로벌 K-한상 네트워크’의 구심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경서 한상총회장도 “세계 각지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넓혀온 한상과 모국의 우수 중소기업이 만나 수출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외동포청(청장 김경협)과 인천광역시(시장 박찬대) 주관으로 올해 처음 지정된 '세계한인주간(9.27~10.1)'에는 세계한인회장대회(위원장 고상구)와 세계한상대회(위원장 황병구)가 국내 기업과 세계 한상 간 실질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동시에 개최되 이목을 끌고 있다.
인천 송도 컨벤시아 일원에서 5일간 진행되는 행사에는 세계한인주간 통합 개막식, 세계한상총회(한상대회 개막식), 세계한상포럼, 영비즈니스리더스포럼, 멤버십별 총회, 기업전시회, 1:1 비즈니스상담, 스타트업 경연대회, 산업시찰, 투자유치설명회 등이 이어진다.